“한국의 최대 위기는 ‘가속 노화’다”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정희원 지음|더퀘스트|288쪽|1만7800원
“신체 노화는 노년층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진료를 하다 보면 50대는 물론, ‘치매가 생긴 것 같다’는 30~40대 환자들도 많이 찾아와요. ‘가속 노화’가 진행돼 숫자 나이에 비해 생물학적 나이는 훨씬 높은 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정희원(39)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가 진료실에서 관찰하는 현상이다. 이전보다 노화의 결과로 나타나는 만성질환을 빨리 겪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 “만성질환의 씨앗이 되는 비만은 전체적인 사회의 가속 노화를 보여주는 수치예요. 20년 전 30% 초반에 머물렀던 3040 남성의 비만 비율은 현재 50% 가까이 올랐어요. 여성은 ‘마른 비만’인 분들이 많고요. 가속 노화로 인한 문제요? 부모님 세대가 50~60대에 경험했던 성인병을 10~20년 빨리 겪고,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나머지 노년을 보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작 ‘지속가능한 나이듦’(두리반)을 통해 가속 노화 현상이 초래하는 사회적 돌봄 부담을 지적한 정 교수가 신간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더퀘스트)를 냈다. 그는 주로 7080 노년 환자를 상대하는 노년내과 교수. “30대 의사가 노인의 몸을 이해할 수 있냐”며 종종 환자들이 의구심을 갖지만, 그는 2012년 전공의 시절 노인의학에 뛰어들어 분자생물학 연구로 이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전문가다. 13일 정 교수를 만나 한국 사회의 ‘가속 노화’ 현상과 건강한 노년을 위한 생활 습관을 물었다.
−책을 쓴 이유는.
“노년을 건강하게 맞이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서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데도 불구하고, 노인 환자에 대한 맞춤 치료 방식인 노인의학 분과에 대한 관심이 적다. 영국은 1940년대부터, 미국과 캐나다는 1970년대부터 노화 문제 및 노인의 신체적 특성에 근거한 의료 행위의 중요성에 주목했다.”
-가속 노화란 무엇인가.
“신체 기능의 노쇠화를 속도로 나타낸 생물학적 개념이다. 노화가 진행되는 정도는 한 사람의 신체 기능이 떨어지는 정도와 같은데, 숫자 나이와 생물학적 나이는 다를 수 있다. 90대가 되어도 중년 정도의 신체∙인지 기능을 갖는 사람이 있는 반면, 60대에 요양병원에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가속 노화가 한국 사회의 ‘최대 위기’라고 책에 썼다.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생활이 가능한 ‘노인장기요양보험 인정자’가 현재 100만명 수준이다. 요양보호사는 50만명 정도다. 그런데 지금의 고령화 속도와 가속 노화 정도를 계산했을 때는, 20~30년 뒤엔 요양보호사만 150만명이 필요하게 된다. 신체 기능이 떨어진 현재의 중년들이 조기에 돌봄을 필요로 하게 되면서 나중엔 온 나라가 이 일을 하는 데만 모든 역량을 써야 할지 모른다. 저출생·고령화는 절대 아이만 낳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미래의 노인들이 스스로 신체 기능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다. 돌봄이 덜 필요한 사회가 될 때 장수가 재앙이 아닌 축복이 되는 것이다.”
-가속 노화는 왜 생기나.
“부족한 신체 활동, 불균형한 식사, 술과 담배, 비만… 건강하지 못한 생활 습관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저에 있는 것이 어떤 즐거움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쾌락 중독’이다.”
-쾌락 중독?
“더 많은 자극을 좇을수록 뇌에선 주관적으로 느끼는 즐거움이 축소되는 작용이 일어난다. 특히 소셜미디어가 치명적이다. 남보다 내가 잘나가야 하는 소셜미디어 구조가 과시적인 소비와 욕심을 부추기고, 스트레스와 더 큰 쾌락에 대한 욕심을 부른다. 술과 담배 등 중독에도 취약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느리게 나이 드는 법’은 무엇인가.
“핵심은 네 가지 축이다. 신체적 활동(운동), 마음건강, 질병으로부터의 건강, 그리고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인지하는 것이다. 단순히 운동 열심히 하고, 잘 자고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사람이 즐길 수 있는 감각적 즐거움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욕심을 줄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자극이 줄어들더라도 즐거움의 크기는 늘어난다. 장수하는 사람을 연구한 자료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게 있다. 그들은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노쇠화가 진행된 노년은 어떻게 하나.
“노쇠화가 진행된 경우도 네 가지 축의 건강관리 방법을 꾸준히 따르면 큰 폭으로 좋아질 수 있다. 다만 연령대에 맞는 신체 관리가 필요하다. 잡곡밥 먹으면서 하루에 2만보를 걷는데, 건강이 더 나빠졌다고 찾아온 70대 환자가 있었다. 30~40대 때 해야 할 일을 지금 하고 있어 생긴 문제다. 생애주기별로 신체 건강을 위한 행동은 달라진다. 시간이나 유전은 어쩔 수 없지만, 내게 ‘무엇이 중요한가’를 되묻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은 노화 지연에 큰 효과가 있다. 실제로 마음건강이 좋아지면서 불안이나 불면에 쓰는 약도 줄이고, 아픈 부분도 줄었다는 환자들을 자주 만난다. 노화는 요행을 기대할 수 없다. 지금이 잘늙는 것을 대비하기 위한 가장 이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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