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하는 중년 남자] 삼겹살 미세먼지 겁나도 단단히 껴입고 구워먹지
한국인들처럼 식탁에 불 올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싶다. 서양에서는 실외 바비큐 외엔 없는 것 같다. 한인 식당 말고는 손님이 직접 고기를 구워 먹는 곳을 본 적도 없다. 캐나다에서는 한인 타운에서도 숯불구이집을 볼 수가 없다. 가스 그릴 쓰는 집도 찾기 어려운데 식탁마다 개별 환풍기와 소화 장치를 구비해야 하고 그 비용이 엄청나게 비싸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일본에서는 식탁에 올라오는 화로를 본 적이 있다. 된장 뚝배기만 한 화로를 1인당 하나씩 주고 각자 자신의 고기를 구워 먹는 식이었다. 솥뚜껑 불판에 치렁치렁 삼겹살 굽는 우리로서는 성이 차지 않는다. 거의 모든 요리를 볶거나 튀기는 중국에서도 식탁에 불이 오르는 걸 보기 어렵다.
창문을 열기 어려운 겨울에는 집에서 고기 구워 먹기가 난감하다. 연기 때문에 온 집 안이 화생방 훈련 한 것처럼 뿌옇게 되기 십상이다. 식당에서처럼 연기를 빨아들이는 전기 그릴이 있다고 해서 궁리 끝에 장만했다. 전기 그릴치곤 비싼 축이었지만 삼겹살 몇 번 외식할 돈 아끼는 셈 쳤다.
연기는 확실히 덜 났지만 기름 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공기청정기 수치가 수직 상승하는 걸 보면 눈에 덜 띌 뿐 실제 미세 먼지 감소 효과가 얼마나 될지도 궁금했다. 연기를 그릴이 흡수하면서 안쪽 구석구석에 끼는 기름때를 청소하기도 쉽지 않았다. 기름때 흡수하는 필터가 있긴 한데 스펀지 조각으로 기름때를 흡착하는 단순한 방식이었다.
부엌뿐 아니라 식탁에서도 뭔가 굽고 끓이면 그만큼 유해 가스와 미세 먼지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주부들이 폐암에 걸리는 이유가 가스레인지 앞에서 미세 먼지를 많이 들이마시기 때문이라는 뉴스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나의 어머니도 평생 담배 한 모금 하지 않았는데 폐암을 얻어 돌아가셨다. 한평생 연탄불과 가스불 앞에서 식구들 먹을거리를 장만하시다가 그렇게 되신 것 같아 죄스럽다.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가 가스레인지에 대해 강력한 규제에 나설 것이라는 뉴스를 읽었다. 가스레인지가 조리할 때는 물론 불을 끈 상태에서도 유해물질을 방출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최악의 경우 미국 내 가스레인지 판매를 금지할 수도 있다고 한다. 물론 가스 업계에서는 가스레인지가 방출하는 유해물질이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가스든 전기든 미세 먼지 때문에 삼겹살 구이 같은 서민 음식을 식탁에서 치울 수는 없다. 겨울엔 단단히 갖춰 입고 창문 열고 구워야 할 판이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식탁 풍경이 하나 더 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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