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에서 몰락한 코미디, 유튜브에서 물 만났네
‘엄근진’ 지상파서 잇단 퇴출
유튜브에서 대박 난 이유
“개그맨들 일상적인 욕만 할 수 있게 해줘도 세 곱절은 웃긴다더니, 진짜네요.”
지상파 공개 코미디가 사라지면서 설 자리를 잃었던 개그맨들이 최근 유튜브에서 맹활약 중이다. 유튜브라는 새로운 포맷에서 다양한 코미디 콘텐츠를 만들어내며 한국 코미디의 또 다른 전성기를 열고 있는 것이다.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코미디 채널은 ‘숏박스’다. KBS 공채 개그맨 출신인 김원훈(30기), 조진세(31기), 엄지윤(32기)이 이끌고 있다. 시청자들이 ‘하이퍼 리얼리즘(초현실주의)’이라 할 정도로 생활 밀착형 콩트 개그를 선보이며 채널 개설 4개월 만에 구독자 100만명을 넘기고 현재는 236만명에 이른다.
특히 김원훈과 엄지윤이 연기한 ‘장기 연애’ 시리즈는 장기간 교제한 연인의 소소한 특징을 현실감 있게 다뤄 영상 대부분이 조회 수 수백만을 넘겼다. 특히 오래 교제한 연인이 숙박 업소에 가서 별일(?) 없이 음식을 시켜 먹고 예능을 보다 낮잠을 자고 나오는 ‘대실’은 조회 수 1000만, 사귄 지 11주년 된 연인이 기념일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밥을 먹으면서 데이트 코스를 고민하는 ‘모텔이나 갈까’ 영상은 조회 수 1200만을 넘겼다. 시청자들은 “무관심하면서도 서로를 척척 배려하고 합을 맞추는 두 연인의 모습이 실제로 오래 사귄 연인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며 열광했다.
무명 개그맨들에게 유튜브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걸 각인한 채널은 ‘피식 대학’이다. 개그맨 김민수(SBS 16기), 이용주(SBS 16기), 정재형(KBS 29기)이 밉상 복학생, 산악회에 모인 중년 남성, 최근 신도시에 사는 젊은 부부의 일상을 익살스럽게 다룬 콩트 개그가 히트하면서 채널 구독자는 177만명에 이른다. 최근 선보인 ‘피식 쇼’라는 제목의 ‘토크 쇼 콩트’는 미국 유명 토크쇼인 지미 팰런 쇼, 코난 오브라이언 쇼와 같은 글로벌 토크쇼를 표방하지만, 정작 출연자들은 어설픈 콩글리시, 한국어를 뒤죽박죽 섞어가며 얘기한다. 지상파에서 다뤘다면 민망하거나 논란이 될 수 있는 성적 농담도 적잖이 나오지만 미국의 토크쇼 형식을 그대로 가져온 덕분에 거부감 없이 웃음을 자아내는 게 특징이다. 최근 BTS 멤버 RM까지 출연해 피식 대학의 광팬임을 입증하기도 했다.
유명 개그맨들도 ‘부캐’를 내세운 콩트 개그로 인기 몰이 중이다. KBS ‘개그콘서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김대희는 최근 ‘꼰대희’라는 부캐로 게스트와 밥을 먹으며 구수한 욕설과 입담을 주고받는 토크 코미디로 구독자를 80만명 이상 확보했다. SBS 공개 코미디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서 활약했던 3인조 남성 코미디 그룹 ‘나 몰라 패밀리’의 멤버 김경욱은 최근 일본 호스트 출신으로 어설프게 한국어를 하는 일본인 ‘다나카’라는 부캐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유튜브 코미디의 가장 큰 특징은 생활 밀착형 개그가 대세를 이룬다는 점이다. 지상파에선 보기 어려운 모텔 같은 배경과 비속어 등을 적절히 활용해 시청자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데 주력한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철학 전문위원은 “공개 코미디의 경우 관객이나 시청자에게 의미를 전달하려면 크고 과장된 표정과 제스처를 취해야 하는데, 유튜브는 배우나 개그맨의 얼굴과 모습을 밀착해서 찍을 수 있기 때문에 일상 생활에 있는 아주 섬세한 부분들을 쉽게 전달하는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피식쇼’나 부캐 ‘다나카’처럼 공중파에선 보기 힘든 기묘한 컨셉으로 의표를 찌르는 웃음을 끌어내기도 한다. 한 평론가는 “지상파에 존재하는 각종 규제로부터 자유롭고, TV처럼 시청자 층이 폭넓지 않아 윤리적 비난에 대한 부담 없이 자유로운 개그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헌식 문화 평론가는 “유튜브의 자유로운 코미디가 지상파와 OTT에서 방영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에 진일보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쿠팡 플레이’에서 방영하는 ‘SNL 코리아 시즌3′는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심지어 조 바이든 미 대통령까지 똑같이 묘사하는 정치 풍자 개그와, 신입 사원의 이른바 ‘무개념한’ 모습과 이를 덤덤한 척 받아넘기려 애쓰는 기성 회사원의 신경전을 재미나게 묘사한 ‘MZ 오피스’ 등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노정태 위원은 “지상파 코미디의 인기가 식은 건 정치적 외압을 받은 영향이 크다”며 “유튜브라는 포맷 덕분에 개그맨들이 정치적 외압에서 벗어나면서 여러 장점을 보여주기에 좋은 환경이 되어가는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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