禁酒 일기, 무알코올 데이트… ‘드라이 재뉴어리’를 아십니까?
경기불황, Z세대가 몰고온
금주 캠페인 인기인 까닭
“1월 한 달 금주, ‘드라이 재뉴어리’ 하실 분?”
연초 네이버의 한 커뮤니티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12월 연말 많이 달리신 분들, 1년에 딱 한 달만이라도 금주를 같이하자”는 글이었다. 커뮤니티 회원들은 앞다퉈 “저도 같이해요”라는 댓글을 달았다. 이들은 “1월 1일 금주 1일 차 성공”이라며 인증 글도 남겼다.
‘다이어트, 숙면, 건강 관리.’ 이 세 가지 새해 목표를 한 번에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금주(禁酒)’다. 영국 자선단체 ‘알코올 체인지 UK’는 1월 한 달간 술을 마시지 않는 ‘드라이 재뉴어리’를 제안한다. 12월 한 달간 크리스마스와 망년회, 연말 등으로 지친 간을 잠시나마 쉬게 해주자는 것이다. 2013년 4000명으로 시작한 이 캠페인은 10년째인 올해 가장 많은 인원인 900만명(영국)이 참여하고 있다.
◇생활비 부족으로 금주
‘드라이 재뉴어리’는 ‘알코올 체인지 UK’ 소속인 에밀리 로빈슨이 하프 마라톤 출전을 위해 한 달간 금주한 경험과 효과를 떠올려 제안한 캠페인이다. 한 달간의 금주는 혈압과 콜레스테롤, 당뇨병 위험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지난 10년간 이 운동은 전 세계로 확대됐다. 미국에서도 성인의 약 13%가 ‘드라이 재뉴어리’를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에서는 성인 7명 중 1명꼴이다. 최근 이렇게 참가 인원이 증가한 이유는 “코로나 팬데믹이 불러온 불경기로 인한 생활비 부족과 불안 증세 때문”이라고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분석했다.
알코올 체인지 UK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 성인 4명 중 1명이 이전보다 더 많은 술을 마셨고, 3명 중 1명이 음주 후 오는 불안 증세로 술을 끊기로 결심했다. 영국 성인 중 16%가 생활비 위기에 대한 걱정 때문에 술을 더 많이 마시고, 14%는 장을 볼 때 식료품 구매보다 술 구매를 우선시했다고 한다. 알코올 체인지 UK 임원 아일라 하셈자데는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의 상황이 엄청나게 힘들었고, 이로 인한 생활비 위기는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며 “이로 인해 점점 많은 사람들이 술을 더 마시게 됐고, 이들이 올해부터는 ‘드라이 재뉴어리’를 시작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지속되면서 혼술족이 크게 늘어난 것도 음주가 증가한 이유다. 매사추세츠 제너럴 호스피털 연구에 따르면, 팬데믹 기간 중 미국인들의 과음은 무려 21%나 증가했다. 연구진들은 “이는 장단기적으로 간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 증가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겨우 31일간의 금주. 이를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일까? 영국 성인 10명 중 3명은 바로 ‘사교 활동’이라고 말했다. 누군가를 만날 때 술을 마셔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8%가 음주를 피할 여러 가지 변명을 갖고 있고, 43%는 음주에 대한 압력을 피하기 위해 아예 약속 자체를 취소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드라이 재뉴어리’를 도와주는 금주앱도 많이 출시되고 있다. 애플 앱스토어에서는 ‘금주기록’, ‘맑은 정신’ 등이 인기다.
◇Z세대는 무알코올 데이트
최근 ‘드라이 재뉴어리’ 운동은 술을 무작정 참는 것에서 술 없이도 재미있게 노는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음주를 멀리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권장하는 것으로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술에 취하지 않고 남녀가 만나는 ‘소버 데이팅’이다.
이를 주도하는 것이 1996년 이후에 태어난 ‘Z세대’다. 글로벌 데이팅앱 ‘틴더’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젊은 싱글들의 25% 이상이 작년에 비해 데이트에서 술을 덜 마신다고 답했다. 틴더 회원의 72%는 프로필상에 자신의 음주 습관에 대해 술을 아예 마시지 않거나 가끔만 마신다고 적었으며, 맥주나 와인 이모지 사용도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0%, 25% 감소했다. 동영상 소셜미디어 ‘틱톡’에는 소버 데이팅 방법을 알려주는 영상이 4만개가 넘는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알코올 없이 즐기는 데이트는 상대방에게 덜 스트레스를 주고, 더 재미있게 만들며, 당신과 데이트 상대가 잘 어울리는지를 잘 측정할 수 있다”며 무알코올 맥주나 목테일(논알코올 칵테일)을 이용한 사회적 모임을 권장하기도 했다.
영국 시장조사 기관 ‘민텔’의 주류 업계 전문가 조니 포사이스는 “Z세대는 지금까지 우리가 본 세대 중 가장 건강한 세대”라며 “20년 전만 해도 건강에 신경을 쓰는 것이 이상한 것으로 비쳤지만, 이젠 멋있는 것이 됐다. 사회가 점점 더 건강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전처럼 술을 마시는 것을 합리화하기란 점점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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