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가 그린 ‘세한도’ 속 집, ‘이것’ 덕분에 숨통 트였다
氣韻生動의 원리로 본 풍수로 그림 보는 법
‘아트 비즈니스’, ‘아트 테크’란 말이 유행이다. 예술품이 아닌 ‘상품으로서 미술품’을 전제한다. “2021년부터 뜨겁게 달아올랐던 한국 미술시장이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렇지만 “금년 하반기부터는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는데, 한국 경제 규모나 소비 트렌드(다양한 세대의 미술시장 유입과 유통 모델의 다양화 등)를 감안하면 수년에 걸쳐 3조~4조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아트 어드바이저 이승수 쿼드로지(QUADLOGY) 대표는 전망하기도 한다.
미술품은 이제 예술품이 아닌 상품이다. “진정한 예술은 진리를 드러낸다”라고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말했다. 그가 지금의 미술시장을 바라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는 반 고흐의 ‘구두’라는 그림을 보고 “구두라는 존재자가 자기 존재의 진리를 드러내고 있다”고 하였다. 무슨 말인가?
“너무 많이 신어서 넓어져 버린 구두의 안쪽 어두운 틈에서 들일을 나서는 발걸음의 힘겨움이 응시하고 있다… 구두 가죽에는 대지의 습기와 풍요로움이 깃들여 있다. 구두창 아래에는 해 저물 녘 들길의 고독이 스며 있다. 구두에는 대지의 소리 없는 부름과 무르익은 곡식을 조용히 선사하는 대지의 건네줌이 있다… 이 도구(구두)는 대지에 속해 있으면서 농촌 아낙네의 세계(Welt) 안에 보호되고 있다.” (박찬국,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 재인용)
하이데거는 “작품을 창작하는 것 못지않게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존재의 진리를 생기(生起)하게 하는 근본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유행했다. ‘지식도 교양도 축적해야 가능하다’는 자본주의 논리이다. ‘알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면 알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필자의 유학 시절 독문학 방법론(실은 독일 지도교수의 방법론)이기도 했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작품만 보았다. 그 방법론을 풍수와 접목하고 전용(轉用)하여 그림도 사전 지식 없이 감상하곤 한다. 어떤 그림을 바라본다.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전통적으로 그림과 풍수는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원대의 화가 황공망은 “그림에도 역시 풍수가 깃들어 있다[畫亦有風水存焉]”라고 하였다. 그의 호가 대치(大痴)이다. 조선 남종화의 대가 허련의 호가 소치(小痴)이다. 중국과 조선의 그림에서 풍수가 갖는 의미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풍수로 그림 보기의 핵심은 기운생동(氣韻生動) 여부이다. 기운생동한 그림이 되려면 기(氣)가 들어오는 입구[口], 즉 기구(氣口)가 있어야 한다. 추사의 ‘세한도’는 시인 백무산의 표현대로 “목수가 보면 웃을 그림”이고 “풍수가 보면 혀를 찰 집”이다. 만약에 기구가 표현되지 않았더라면 ‘재수 없는 그림’이 될 뻔했다. 그림 속의 기구는 무엇일까? 고목 끝의 새롭게 뻗은 어린 가지이다.
현대 화가 황주리의 작품 ‘식물학’을 본다. 바탕은 검은색이다. 한가운데 흰색 부분을 관통하는 철책이 보인다. 누군가 두 손으로 철책을 제친다. 비둘기 한 마리가 틈 사이로 날아든다. 고채도의 튤립 꽃들이 피어난다. 연인, 아이 업은 엄마, 토라진 아내를 따라가는 남자…. 모두가 꿈을 꾼다. 뉴욕으로, 파리로, 달나라로, 화성으로, 평화의 땅을 찾아서…. 철책을 제치고 비둘기가 들어오는 곳이 기구(氣口)이다.
그림도 인생도 기(氣)가 들어와야 산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초로의 필자에게도 기구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번에 모 사이버대학에 신입생(freshman)으로 지원하였다. 전혀 다른 공부를 하여 새로운 세상을 보고 만들고 싶어서이다. 필자의 새로운 기구(氣口)이다. 요즘 가족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I am a fresh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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