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한국에 있었다면 망했을 것”
최근 실리콘밸리에는 세계 최대 IT 전시회인 CES를 마치고 방문한 한국인들이 많다. 스타트업 대표부터 투자자, 대기업 관계자, 국회의원, 정부 부처 장·차관들도 실리콘밸리를 찾았다. CES가 열린 라스베이거스에서 실리콘밸리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 반이 걸린다. 매년 CES가 끝난 후 실리콘밸리를 찍고 귀국하는 일정은 새롭지 않지만 올해는 특히 그 규모가 크고, 열기가 뜨거웠다. 지난 9일(현지 시각)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한인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커뮤니티인 ‘82스타트업’ 행사에 3년 전의 2배인 600여 명이 몰렸다.
글로벌 테크 업계에서 한국 업체들의 진격 속도가 매섭다. 새해 벽두에 열린 CES에서 한국 대기업과 스타트업들은 미·중 갈등으로 빠진 중국 업체의 빈자리를 차지했다. 미국에 이어 참가 기업 수가 두 번째로 많다. 주목할 만한 기술과 제품을 선보인 업체에 주는 CES 혁신상도 역대 최다인 111개 받았다. 실리콘밸리에서도 한국인들의 평판은 좋아지고 있다. 한 벤처투자사 대표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실리콘밸리 창업 열기가 예전만 못하고, 엔지니어들은 창업보다는 빅테크 직원의 삶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며 “밤늦게까지 독하게 일하는 사람은 한인뿐”이라고 했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특 A급 인재를 빼고 평균적인 수준으로 봤을 때 실리콘밸리 인력보다 한국 인력들이 더 뛰어나다고 느낀다”고 했다.
사실 한국 스타트업의 성장은 체계적인 지원보다는 창업자들과 엔지니어들의 개인적인 희생과 노력의 결과물이다. 해외 시장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한인 스타트업 대표들은 “한국에 남아있었다면 망했을 것”이라는 말을 종종 한다. 그때마다 언급되는 것이 좁은 시장과 규제, 대기업의 횡포다. 지금은 정부가 예전보다 스타트업 성장에 돈을 쓰며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대기업들도 상생을 외치지만 여전히 충분치 않다. CES 주최사인 CTA(미국소비자기술협회)가 지난 9일 발표한 ‘세계 혁신 순위’를 보면 한국은 26위다. 연구·개발 투자와 원격의료, 디지털 자산, 드론 등의 항목에선 A 이상의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의견의 다양성(D), 세금 우대(C), 환경(B), 사이버 보안(F) 항목에선 낮은 점수를 받았다. CTA는 “한국은 세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에 혁신 기업이 탄생해 머물 가능성은 낮다. 한국엔 오랜 연구 끝 제품을 개발해도 규제에 막혀 시장에 내놓지 못하는 스타트업이 부지기수다. 이들은 버티다 못해 생존을 위해 한국을 떠날 것이다. 떠난 이들이 세계 시장에서 성공하면 ‘한국인이 세계에 진출해 성공했다’는 실속 없는 자부심만 남는다. 혁신 기업이 탄생하고, 성장하고, 이를 국내 전 산업에 내재화하는 체계적 로드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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