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여왕’이 쓴 SF 소설집… 10년간 쓴 단편 8개 모아
안녕의 의식
미야베 미유키 지음 | 홍은주 옮김 | 비채 | 448쪽 | 1만6800원
한 여자아이가 머뭇거리며 상담 부스에 온다. 표제작의 배경은 고장 난 로봇을 회수하는 센터. 아이는 오래된 가정용 로봇 ‘하먼’과 이별하기 위해 센터에 왔다. 아이는 로봇을 “사용했다”고 표현하지 않고, “우리를 위해 일해줬다”고 말한다. ‘나’는 로봇에게 애정을 갖는 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로봇 만드는 일을 하다 가끔씩 상담 업무를 맡는데, 눈물바다가 될 때마다 불편하다.
가정에서 로봇이 일반화된 미래가 배경이나, 실상은 주변에 있을 법한 풍경들이다. 로봇이 일상적인 일들을 대신 해주면서, 사람들은 사소한 일들에 서툴러졌다. 화자처럼 고아로 태어난 이들은 어느 곳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다. ‘나’는 로봇과 면회를 하고 싶다는 아이의 부탁을 들어준다. 원칙상 안 되는 일이다. 아이는 자신의 로봇 ‘하먼’과 마지막 인사를 한다. 그런 로봇보다 소외된 세상을 살아온 ‘나’는 생각한다. “나는 로봇이 되고 싶다. … 로봇을 하나 조립할 때마다 나는 인간에게서 멀어져간다.”
‘미미 여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일본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SF 소설집이다. 그간 추리, 판타지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글을 써 온 작가지만 이번엔 “제대로 SF인 작품을 쓰겠다 마음먹었다”고 한다. 약 10년 동안 쓴 단편 8개를 묶은 것. 단편들은 로봇, 시간 여행, 회귀, 부활 등의 장치를 통해 상상의 폭을 확장한다. 동시에 아동 학대(단편 ‘엄마의 법률’), 감시 사회(단편 ‘전투원’) 등 우리의 일상 속 이야기들에 발을 담그고 있다. 작품들이 현재의 이야기가 아님에도 익숙하게 읽힌다면, 작가의 이런 시선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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