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다시 민주당을 지지하고 싶다
스무 살에 처음 선거권을 행사한 이래 지금껏 치른 선거를 헤아려보니 스무번쯤 되는 것 같다. 스스로 시민의식이 투철하다고 생각지는 않으나 해외에 살 때 기차 타고 3시간 걸리는 영사관까지 달려가 투표하고 돌아왔을 정도니 나름대로 국민의 본분은 다하려 노력해왔다. 그동안 어느 정당에 표를 던졌는지 고백하자면, 대학에 다닐 때는 줄곧 진보 정당을 지지했고 사회에 나와서는 민주당에 표를 주었다. 내가 가진 한 표를 내가 행사했을 뿐이니 구태여 이유를 설명할 필요까진 없겠다.
거창하게 감정적 유대까진 아니지만 민주당은 그렇게 20년 가까이 ‘묻지 마 지지’를 해왔던 정당이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민주당의 모습을 보면 내가 알던 그 민주당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따름이다. 과거에 민주당은 능력은 없어도 도덕은 있어 보였다. 품위는 조금 떨어져도 서민적인 풋풋함은 느껴졌다. 굳게 믿고 맡길 만한 정당은 아니어도 ‘한번 맡겨볼 만하다’는 믿음 정도는 있는 정당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이 또한 굳이 설명할 필요마저 없을 것 같다.
새해 벽두에 대통령이 포문을 연 이후로 ‘중대선거구’가 화제다. 선거구를 넓히고 여러 후보를 당선시켜 다양한 정당의 원내 진입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국회의원들이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니 실현 가능성은 뒤로하고라도,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의견을 밝히자면, 현행 대통령제하에서 중대선거구는 최악의 조합이 아닐까 싶다. 좋든 싫든 대통령중심제는 승자독식의 제도고 강한 추진력을 장점으로 하는 제도다. 여러 정당이 난립하는 의회가 강한 행정부와 공존할 수 있을까. 휘발유 차에 경유를 넣어달라는 주문처럼 위험하게 느껴진다.
대통령중심제는 양당제로 수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양당’의 두 바퀴를 이루는 보수 정당과 리버럴 정당이 각자 바퀴의 기본은 갖추고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특정 정당을 지지하더라도 상대 정당이 최소한 최악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은 우리가 자전거 페달을 굴리는 이치와 비슷하다. 그냥 한 바퀴로 달리면 된다고? 그게 어디 곡예사의 요물이지 보통의 사람이 탈 수 있는 자전거인가.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든 대통령 제도에서는 양당이 권력을 주고받게 되어있고, 공화(共和)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자전거의 앞바퀴와 뒷바퀴에 탄탄하게 바람을 채워 넣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이 어긋나버린 이유는 여럿일 텐데, 가장 큰 이유는 상대 진영을 ‘공존할 수 없는 세력’이라고 치부하는 데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 또한 여럿일 텐데, 역사관의 차이일 수 있고, 계급주의적 세계관의 잔재일 수 있으며, 상대를 악마화해야 자기 진영이 다듬어지는 양자택일의 제도가 빚은 결과일 수도 있다. 어쨌든 역시 분명한 점은, 좋든 싫든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의 어떤 원로가 “최소 20년 연속 집권”을 공언했던 발상 자체가 어수룩한 것이다. 결국 그들은 5년 만에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개인적으로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되었든 내각책임제가 되었든 제도 자체가 다양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기를 바란다. 그러나 개헌이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니기 때문에 지금은 차선을 택할 수밖에. 오늘의 현실 속에 양당이 정당다운 정당으로 자기 역할을 다하길 바랄 따름이다. 필자가 민주당이 비뚤어진 이유로 지적했던 부분은 현재 집권 여당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사안이기도 하다.
부디 다음 선거에는 민주당이 지지할 만한 정당이었으면 좋겠다. 아들딸 앞에 민주당을 지지할 이유를 당당하게 설득할 수 있는 민주당이었으면 좋겠다. 지금 민주당이 과연 그렇게 거듭날 의지는 있는 건가? 다시 민주당을 지지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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