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더 글로리’와 ‘데미안’
“‘더 글로리’ 보고 ‘데미안’ 다시 읽고 있어요.”
인터넷 서핑하다 본 글의 제목입니다. ‘더 글로리’는 김은숙 각본의 넷플릭스 드라마. 10대 때 학교 폭력을 당한 주인공이 20년 후 가해자들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이지요. 송혜교가 주인공 ‘동은’ 역을 맡아 열연했는데 공개 2주째인 지난 11일 넷플릭스 비(非)영어 부문 글로벌 시청 시간 1위를 기록했습니다.
‘데미안’ 에피소드는 5화, 동은과 현남의 대화에서 나옵니다. 배우 염혜란이 연기하는 현남은 폭력 남편에 대한 복수를 부탁한 대가로 동은을 돕는 인물. “난 매 맞지만 명랑한 년이에요”라는 그의 대사가 요즘 화제입니다. 좀처럼 곁을 주지 않는 동은에게 사이다와 함께 달걀을 내밀며 현남은 말합니다. “이거는 그거예요, 의미 있는 거.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상이다.’ 래미안, 우리 선아(딸)가 읽더라고요.” 동은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 새는 알을 깨고 못 나와요. 삶아버리셔서. 그리고 ‘래미안’은 아파트고 그 책은 ‘데미안’이에요” 답하자 현남은 잠시 머쓱해하다 이렇게 대꾸하지요. “구운 거예요. 삶은 게 아니라. 아, 그리고 뭐 복수하는 여자는 낭만도 없어요?”
책 제목 좀 틀려도 뭐 어떻습니까. 구운 계란에서 신(神)에게로 향하는 새의 날갯짓을 떠올릴 수 있는 능력이 현남이 고통 속에서도 명랑함을 잃지 않을 수 있는 힘일 겁니다. 사람들이 현남과 같은 힘을 얻어 삶을 버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문학의 책무이고요. ‘데미안’을 꺼내 새와 알에 대한 구절을 다시 읽어봅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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