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뒷날개]사생활 노출일까 무모한 용기일까
신새벽 민음사 편집부 인문사회팀장 2023. 1. 1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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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일을 하면서 저자들과의 관계가 늘어간다.
오래 알고 지냈던 두 사람 사이에서 일하기도 하고, 서로 견제하는 필자들을 연결해 주기도 한다.
공적인 지면과 사생활이 섞이면 어쩌나? '에르베리노'는 지면을 사생활로 모두 채운 책이다.
1980년대 후반, 프랑스 학술원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로마 기숙사에 머문 두 사람이 어느 식당에서 뭘 먹었고, 무슨 말장난을 했는지로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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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베리노:유대, 우정, 사랑의 이름/마티외 랭동 지음·신유진 옮김/176쪽·1만6500원·알마
출판 일을 하면서 저자들과의 관계가 늘어간다. 오래 알고 지냈던 두 사람 사이에서 일하기도 하고, 서로 견제하는 필자들을 연결해 주기도 한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우리가 내는 인문학 책의 폭도 넓어지리라고 믿지만 가끔 걱정된다. 공적인 지면과 사생활이 섞이면 어쩌나?
‘에르베리노…’는 지면을 사생활로 모두 채운 책이다. 에르베리노는 프랑스 작가 에르베 기베르(1955∼1991)의 이름을 이탈리아식으로 부르는 애칭이다. 편집자이자 작가인 마티외 랭동은 에르베 기베르와의 사적 만남을 기록한다.
한국 독자에게 낯선 두 작가의 공통된 지인은 철학자 미셸 푸코(1926∼1984)다. 저자는 푸코와 오랜 친구였고, 에르베 기베르는 푸코의 연인이었다. 저자는 푸코와의 우정을 쓴 에세이로 주목받았고, 에르베 기베르는 푸코와 자신이 에이즈 환자라고 밝힌 자전적 소설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다. 고백문학과 스캔들을 오가는 프랑스 문예장 그 자체다.
막상 책을 펼치면 자극적이기보다는 시시콜콜하다. 1980년대 후반, 프랑스 학술원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로마 기숙사에 머문 두 사람이 어느 식당에서 뭘 먹었고, 무슨 말장난을 했는지로 채워져 있다. 다만 동갑내기 두 남자의 “어린 시절의 방학 같은” 나날에는 그늘이 드리워 있다. 1991년 에르베는 36세의 나이로 죽었고, 마티외는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둘만의 이야기를 회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푸코는 공적 지면에서 사생활을 언급하지 않았다. 에르베는 에이즈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출판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마티외의 방식은 일상을 섬세하게 기록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에르베와 자신은 연인 관계가 아니었다고 밝힌다. 둘 사이에 오간 존경, 질투, 관용 등의 감정 묘사를 통해 깊은 우정이란 다정한 유대이기도 하고 진한 사랑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만든다. 문학비평도, 픽션도 아닌 비망록의 방식이다.
사생활 공개가 노출증이라는 세간의 비난은 반박한다. “좋은 감정만으로 문학을 할 수 없고, 용기 없이는 문학을 할 수 없다.” 좋은 감정으로 포장된 하찮은 용기에 익숙한 독자들은 진실을 드러내는 무모한 용기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이는 에르베 기베르가 에이즈를 ‘신중하게’ 다루지 않았다고 비난한 평단에 대한 반박이기도 하다.
저자는 문학 연구자들이 참고해주길 바란다며 에르베가 편지를 써서 증정한 13권의 사인본을 공개한다. 편지에 달린 주석은 두 사람이 나눈 그 모든 말장난과 농담을 설명하고 있다. 언어에 관한 사소한 사연들을 보면서 나는 공적 지면이 사생활과 대립한다는 생각을 고쳤다. 지면은 물론 공적인 자리이지만 지면을 채우는 재료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쓰는 말들이 아닐 수 없다. 이 말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갈고닦는 일이 관건인 것이다.
‘에르베리노…’는 지면을 사생활로 모두 채운 책이다. 에르베리노는 프랑스 작가 에르베 기베르(1955∼1991)의 이름을 이탈리아식으로 부르는 애칭이다. 편집자이자 작가인 마티외 랭동은 에르베 기베르와의 사적 만남을 기록한다.
한국 독자에게 낯선 두 작가의 공통된 지인은 철학자 미셸 푸코(1926∼1984)다. 저자는 푸코와 오랜 친구였고, 에르베 기베르는 푸코의 연인이었다. 저자는 푸코와의 우정을 쓴 에세이로 주목받았고, 에르베 기베르는 푸코와 자신이 에이즈 환자라고 밝힌 자전적 소설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다. 고백문학과 스캔들을 오가는 프랑스 문예장 그 자체다.
막상 책을 펼치면 자극적이기보다는 시시콜콜하다. 1980년대 후반, 프랑스 학술원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로마 기숙사에 머문 두 사람이 어느 식당에서 뭘 먹었고, 무슨 말장난을 했는지로 채워져 있다. 다만 동갑내기 두 남자의 “어린 시절의 방학 같은” 나날에는 그늘이 드리워 있다. 1991년 에르베는 36세의 나이로 죽었고, 마티외는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둘만의 이야기를 회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푸코는 공적 지면에서 사생활을 언급하지 않았다. 에르베는 에이즈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출판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마티외의 방식은 일상을 섬세하게 기록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에르베와 자신은 연인 관계가 아니었다고 밝힌다. 둘 사이에 오간 존경, 질투, 관용 등의 감정 묘사를 통해 깊은 우정이란 다정한 유대이기도 하고 진한 사랑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만든다. 문학비평도, 픽션도 아닌 비망록의 방식이다.
사생활 공개가 노출증이라는 세간의 비난은 반박한다. “좋은 감정만으로 문학을 할 수 없고, 용기 없이는 문학을 할 수 없다.” 좋은 감정으로 포장된 하찮은 용기에 익숙한 독자들은 진실을 드러내는 무모한 용기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이는 에르베 기베르가 에이즈를 ‘신중하게’ 다루지 않았다고 비난한 평단에 대한 반박이기도 하다.
저자는 문학 연구자들이 참고해주길 바란다며 에르베가 편지를 써서 증정한 13권의 사인본을 공개한다. 편지에 달린 주석은 두 사람이 나눈 그 모든 말장난과 농담을 설명하고 있다. 언어에 관한 사소한 사연들을 보면서 나는 공적 지면이 사생활과 대립한다는 생각을 고쳤다. 지면은 물론 공적인 자리이지만 지면을 채우는 재료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쓰는 말들이 아닐 수 없다. 이 말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갈고닦는 일이 관건인 것이다.
신새벽 민음사 편집부 인문사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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