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과속을 부추기는 사회
10·29 이태원 참사 발생 직후의 출근길은 평소와 달랐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기다리는 줄은 간격을 유지했고, 급하게 몸을 던지듯 전철에 탑승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평소처럼 사람 많은 전철에서 이상하게 ‘숨이 잘 쉬어지지 않더라’는 이들도 있었다. 참사는 시민들에게 일상 곳곳에 도사린 위험을 감지하도록 만들었다.
일상의 그 ‘위험’이란 무엇이었을까. 혹자는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과밀문화를 지적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시민의식 부족이 아닌 구조의 문제다. 일자리도, 문화행사도 서울에 집중되어 있으니 수도권 도심의 일상은 늘 과밀하다. 매일 한 시간이 넘는 출근길을 달려 지각하지 않으려면 몸을 던져 전철을 타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고된 업무와 야근으로 여유롭게 일어나는 아침 따위는 언감생심이다. 이런 조건에서 한국인의 문화나 시민의식만을 탓할 수 없다.
서울에 인구가 초집중된 지역불균형, 과로를 조장하는 노동관행 같은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항상 바쁘다. 인파가 몰리면 우회하거나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인파를 뚫고 목적지로 가려고 한다. 이로 인해 만들어진 일상의 ‘속도’는 유난하다 못해 위험한 수준이 됐다. 외국인들이 한국 사회의 특징으로 괜히 ‘빨리빨리’를 언급하는 게 아니다.
참사 발생 직후, “밀어 밀어”라며 선동한 남성이 있다는 유언비어가 돌았다. 이를 조사한 경찰은 혐의 없음으로 결론을 내렸지만, 한 가지 되짚어볼 문제가 있다. 왜 사람들은 그런 상황이 충분히 있음 직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것은 이동이 정체된 걸 답답해하며 누가 다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억지로 밀어붙여 속도를 내보려는 ‘빨리빨리’의 조급함이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참사는 ‘빨리빨리’의 속도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음을 말해주었다. 알려진 것처럼, 참사 희생자 159명 중 102명이 여성이었다. 참사 직후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인파가 밀집된 장소에서 군중 압착 사고를 당할까 걱정되느냐는 질문에 성별로는 여성이, 세대별로는 연령대가 높을수록 걱정된다는 응답이 많았다. 이는 한국 사회의 속도에 모두가 적응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게 아니라, 누군가는 그 속도에 위협을 느끼고 다치거나 뒤처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지금, 그 속도에 가장 절박하게 저항하는 것은 장애인운동이다. 휠체어 이용자가 전철에 타는 동안 잠깐 늦춰지는 속도를 참지 못해, 그동안 한국 사회는 장애인들을 집이나 시설에 가두고 리프트 사고로 죽게 만들었다. 서울교통공사는 장애인의 느린 속도를 탓하며 그들을 버려둔 채 전철을 아예 무정차 통과시켰다. 피곤하다 못해 위험한 일상의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결국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희생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인의 ‘이동권’ 주장이야말로 ‘모든 시민의 안전’에 대한 요구일 것이다.
이를 두고 장애인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 그들이야말로 유언비어가 아니라 실제로 ‘밀어 밀어’를 선동하는 사람들이다. 윤석열 정부와 오세훈 서울시장도 이를 부추겨 시민들을 위험으로 밀어넣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빨리빨리’ 달려 우리가 도달하는 곳은 어디일까. 나는 이태원 참사가 우리가 만나게 될 파국을 예고하는 것 같아 섬찟하다.
최성용 청년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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