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우울-낮은 자존감 탓 ‘버럭’… 주변사람 고통 인식이 치료 첫걸음[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최고야 기자 2023. 1. 14. 03:01
분노조절장애
화 못참고 폭언-폭행 등 위협 행동
‘힘든 감정 견디는 남성성’이 족쇄
스스로 문제점 깨달으면 조절 가능
화 못참고 폭언-폭행 등 위협 행동
‘힘든 감정 견디는 남성성’이 족쇄
스스로 문제점 깨달으면 조절 가능
직장인 김은하(가명·28) 씨는 직속 상사인 A 부장이 팀원들을 향해 고함을 지를 때면 심장이 벌렁벌렁 뛴다. 최근에는 직원 중 한 명이 자신에게 보고도 없이 외근을 나갔다며 전화로 소리를 지르다 스마트폰을 사무실 바닥에 집어 던져 액정이 깨졌다. A 부장은 “제까짓 게 왜 마음대로 행동을 하느냐”며 사무실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질렀다. A 부장은 평소엔 유머러스한 성격이지만 한번 욱하면 헐크로 돌변한다. 직원들 사이에서 그는 분노조절장애를 줄인 말인 ‘분조장’이라 불린다.
갑자기 폭발하듯 화를 내는 사람을 두고 “분노조절장애가 있다”라고 표현하곤 한다. 분노조절장애는 정식 진단명은 아니지만 화를 못 참고 폭언이나 폭행 등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을 통칭하는 말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분노조절장애가 일상 용어로 자리 잡은 것은 그만큼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분노조절장애 증상이 심각한 경우 정식 진단명인 ‘간헐적 폭발장애’로 진단 받을 수 있다. 충동조절장애 가운데 하나로 분노를 스스로 통제하지 못해 파괴적 행동을 반복적으로 나타내는 특징을 보인다. 이는 단지 감정 기복이 심하고 성격이 안 좋다고 말하는 수준과는 다른 차원이다.
○ 혹시 나도 분노조절장애?
갑자기 폭발하듯 화를 내는 사람을 두고 “분노조절장애가 있다”라고 표현하곤 한다. 분노조절장애는 정식 진단명은 아니지만 화를 못 참고 폭언이나 폭행 등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을 통칭하는 말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분노조절장애가 일상 용어로 자리 잡은 것은 그만큼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분노조절장애 증상이 심각한 경우 정식 진단명인 ‘간헐적 폭발장애’로 진단 받을 수 있다. 충동조절장애 가운데 하나로 분노를 스스로 통제하지 못해 파괴적 행동을 반복적으로 나타내는 특징을 보인다. 이는 단지 감정 기복이 심하고 성격이 안 좋다고 말하는 수준과는 다른 차원이다.
○ 혹시 나도 분노조절장애?
살면서 화가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화가 나는 원인에 비해 과도하게 화를 표출한다면 문제가 된다. 특히 평상시에는 조용하다가 갑자기 벼락같이 화를 낸 적이 많다면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화를 낸 뒤 후회하며 주변에 사과하는 일이 잦다면 더욱 그렇다.
삼성서울병원에서 제공하는 분노조절장애 자가진단 문항에 따르면 화가 날 때 △참지 못하고 표출하거나 △폭언·폭력을 가하며 △물건을 집어 던지고 △중요한 일을 망친 적이 있다면 감정 조절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로 본다.
증상이 만성적이고 빈도가 잦을 경우엔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진단 및 통계편람(DSM-5)에서는 간헐적 폭발장애를 ‘파괴적 충동 조절 및 품행 장애’로 분류하고 구체적 진단 기준을 제시했다. △최근 3개월간 1주일에 2회 이상 폭언을 했거나 △1년 내 3번 이상 재산상 손해를 입거나 신체에 해를 입을 정도의 폭력 사건이 발생했다면 간헐적 폭발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 충동성이 기준이므로 벼르다가 계획적으로 화를 낸 경우는 해당하지 않는다. 증상이 심한 경우 약물 치료가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다.
○‘버럭맨’ 남자의 분노가 위험하다
삼성서울병원에서 제공하는 분노조절장애 자가진단 문항에 따르면 화가 날 때 △참지 못하고 표출하거나 △폭언·폭력을 가하며 △물건을 집어 던지고 △중요한 일을 망친 적이 있다면 감정 조절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로 본다.
증상이 만성적이고 빈도가 잦을 경우엔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진단 및 통계편람(DSM-5)에서는 간헐적 폭발장애를 ‘파괴적 충동 조절 및 품행 장애’로 분류하고 구체적 진단 기준을 제시했다. △최근 3개월간 1주일에 2회 이상 폭언을 했거나 △1년 내 3번 이상 재산상 손해를 입거나 신체에 해를 입을 정도의 폭력 사건이 발생했다면 간헐적 폭발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 충동성이 기준이므로 벼르다가 계획적으로 화를 낸 경우는 해당하지 않는다. 증상이 심한 경우 약물 치료가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다.
○‘버럭맨’ 남자의 분노가 위험하다
간헐적 폭발장애는 폭언, 폭행 등 과격한 행동이 나오는 특성상 남성적 질병에 가깝다. 간헐적 폭발장애 환자의 남녀 성비를 보면 10명 중 9명이 남성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1년 간헐적 폭발장애 진단 환자는 2071명으로 남성은 1812명(87.5%), 여성은 259명(12.5%)이었다. 연령별로는 20대가 39.1%로 가장 많았고, 30대(18.4%), 10대(15.5%), 40대(13.1%) 순이었다.
20대 남성은 전체 35.2%로 가장 많았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10대에 감정 조절 능력을 키우지 못한 남성들이 성인이 돼 화를 참지 못하고 행동으로 표출하는 것”이라며 “군대 내 폭력 문제는 이런 연장선에서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이는 청소년기 남성들이 정서적 문제를 겪더라도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어렵게 느끼기 때문이다. 청소년 정신질환 예방을 위해 활동하는 영국 자선단체 ‘스템4(Stem4)’는 2021년 만 14∼21세 남성 1100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에 대한 경험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45%가 ‘상황이 더 나빠지더라도 자신을 분노하거나 우울하게 만드는 문제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유(복수응답)로는 △용기가 없어서(36%) △소란 피우고 싶지 않아서(32%) △약하거나 부끄럽게 느껴져서(30%) △비웃음당할까 봐(21%) △남성적이지 않아 보여서(14%) 등이 꼽혔다.
사회학과 심리학을 비롯한 젠더 연구에서는 이를 ‘유해한 남성성(toxic masculinity)’으로 규정한다. 사회적으로 강요받는 남성다움은 분노와 같은 강렬한 감정은 강화시키지만 힘든 감정을 말하는 것은 금기시하기 때문이다. ‘스템4’의 설립자인 니하라 크라우제 대표는 “남성의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하려면 침묵 속에서 고통을 견디는 남성의 문화적 맹점을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화 뒤에 숨은 불안·우울·외로움
이처럼 ‘버럭맨’들이 화를 내는 진짜 이유는 오랫동안 남에게 말 못 하고 쌓여 온 자신의 정서적 문제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사소한 일에도 남들이 자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하거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불안, 우울, 모멸감, 수치심, 좌절감, 열등감, 억울함 등이 건드려지면서 짜증이 폭발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해결되지 않은 마음의 상처가 분노라는 탈출구를 찾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권석만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화내는 사람은 사실은 약한 사람들이다. 지탱해줄 주변인도 없고, 불안하고 외롭고 자존감이 낮다”며 “누군가 자존감의 상처를 건드리면 불안감이 커지는데, 이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도 없고 위안해줄 사람도 없기 때문에 불안을 견디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화를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40여 년간 분노에 관한 연구를 해온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파괴적 분노 극복하기’의 저자 버나드 골든 박사는 “유년기에 느낀 부정적 경험이 성인의 분노와 공격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유년기에 경험한 소외감, 수치심 등이 성인기 분노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가 다수 있다. 폭발적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 정서 경험 같은 보다 근원적 원인까지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당장 화가 날 땐 어떻게?
일단 자신이 과도한 분노로 폭발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고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대부분 본인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긴 어렵고, 가족들이 ‘더 이상 같이 못 살겠다’며 치료를 강권하는 경우가 많다. 당사자가 자신 때문에 주변 사람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어느 정도 행동이 조절되기 때문이다.
화를 내는 공통된 상황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자극에 화가 나는지 맥락별로 정리해서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때 행동 계획을 세워두면 좋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자신을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화를 내는 패턴이 있다면, 이런 상황에서 10까지 세며 심호흡하기, 자리 피하기 등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이 밖에 상대방의 의도와 달리 부정적으로 해석해 무시나 모욕을 당했다고 받아들인 것은 아닌지 인지적 접근을 해보는 것도 효과적이다. 홍 교수는 “분노 폭발은 보통 30분 안에 진정되는데, 당사자도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며 “행동적, 인지적 교육을 통해 정서 조절의 어려움을 얼마든지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20대 남성은 전체 35.2%로 가장 많았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10대에 감정 조절 능력을 키우지 못한 남성들이 성인이 돼 화를 참지 못하고 행동으로 표출하는 것”이라며 “군대 내 폭력 문제는 이런 연장선에서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이는 청소년기 남성들이 정서적 문제를 겪더라도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어렵게 느끼기 때문이다. 청소년 정신질환 예방을 위해 활동하는 영국 자선단체 ‘스템4(Stem4)’는 2021년 만 14∼21세 남성 1100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에 대한 경험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45%가 ‘상황이 더 나빠지더라도 자신을 분노하거나 우울하게 만드는 문제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유(복수응답)로는 △용기가 없어서(36%) △소란 피우고 싶지 않아서(32%) △약하거나 부끄럽게 느껴져서(30%) △비웃음당할까 봐(21%) △남성적이지 않아 보여서(14%) 등이 꼽혔다.
사회학과 심리학을 비롯한 젠더 연구에서는 이를 ‘유해한 남성성(toxic masculinity)’으로 규정한다. 사회적으로 강요받는 남성다움은 분노와 같은 강렬한 감정은 강화시키지만 힘든 감정을 말하는 것은 금기시하기 때문이다. ‘스템4’의 설립자인 니하라 크라우제 대표는 “남성의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하려면 침묵 속에서 고통을 견디는 남성의 문화적 맹점을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화 뒤에 숨은 불안·우울·외로움
이처럼 ‘버럭맨’들이 화를 내는 진짜 이유는 오랫동안 남에게 말 못 하고 쌓여 온 자신의 정서적 문제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사소한 일에도 남들이 자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하거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불안, 우울, 모멸감, 수치심, 좌절감, 열등감, 억울함 등이 건드려지면서 짜증이 폭발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해결되지 않은 마음의 상처가 분노라는 탈출구를 찾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권석만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화내는 사람은 사실은 약한 사람들이다. 지탱해줄 주변인도 없고, 불안하고 외롭고 자존감이 낮다”며 “누군가 자존감의 상처를 건드리면 불안감이 커지는데, 이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도 없고 위안해줄 사람도 없기 때문에 불안을 견디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화를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40여 년간 분노에 관한 연구를 해온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파괴적 분노 극복하기’의 저자 버나드 골든 박사는 “유년기에 느낀 부정적 경험이 성인의 분노와 공격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유년기에 경험한 소외감, 수치심 등이 성인기 분노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가 다수 있다. 폭발적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 정서 경험 같은 보다 근원적 원인까지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당장 화가 날 땐 어떻게?
일단 자신이 과도한 분노로 폭발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고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대부분 본인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긴 어렵고, 가족들이 ‘더 이상 같이 못 살겠다’며 치료를 강권하는 경우가 많다. 당사자가 자신 때문에 주변 사람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어느 정도 행동이 조절되기 때문이다.
화를 내는 공통된 상황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자극에 화가 나는지 맥락별로 정리해서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때 행동 계획을 세워두면 좋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자신을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화를 내는 패턴이 있다면, 이런 상황에서 10까지 세며 심호흡하기, 자리 피하기 등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이 밖에 상대방의 의도와 달리 부정적으로 해석해 무시나 모욕을 당했다고 받아들인 것은 아닌지 인지적 접근을 해보는 것도 효과적이다. 홍 교수는 “분노 폭발은 보통 30분 안에 진정되는데, 당사자도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며 “행동적, 인지적 교육을 통해 정서 조절의 어려움을 얼마든지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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