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성찰] 용맹정진과 도덕공학
과학기술을 통해서도 인간의 성품을 향상할 수 있을까. 향상할 수 있다면 그것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을까. 최근 뇌 신경생리학 분야를 비롯한 인공지능, 나노 테크놀로지, 빅데이터 등등의 혁신은 이것이 단순한 공상이 아니라 다가오는 미래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대표적으로 인공지능 분야의 대가인 마빈 민스키를 비롯해 <특이점이 온다>의 저자 레이 커즈와일, <마음의 아이들>의 저자 한스 모라벡, <슈퍼 인텔리전스>의 저자 닉 보스트롬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첨단 과학기술이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 사이의 융합을 촉진하고 그 과정에서 이른바 ‘마인드 업로딩(Mind uploading)’ 즉 일종의 ‘마음 전송’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레이 커즈와일에 따르면 2030년대쯤 되면 인간의 모든 기억을 클라우드 서버에 저장하는 기술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믿기 힘든 전망을 하기도 한다. 그 실현 여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정말 과학기술의 발전은 어디까지 가능한 것이고, 또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과학기술은 인간을 끊임없이 변화시켜가는데, 결국 지금의 인간은 미래에도 여전히 같은 인간일까. 최근 과학기술이 몰고 온 대변혁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인간에 대한 새로운 질문과 함께 낯선 철학과 마주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전통적인 휴머니즘(humanism)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간과 기계의 관계 설정에 대해 고민하는 트랜스·포스트 휴머니즘이 급부상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물리적, 신체적, 생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첨단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그 기술과 신체의 결합 혹은 융합까지도 시도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변화의 큰 흐름이 바로 과학기술을 통한 ‘인간 향상(Human Enhancement)’을 도모하는 트랜스휴머니즘과 그 향상된 인간의 모습을 지칭하는 ‘포스트휴머니즘’이다. 이를 지지하는 트랜스휴머니스트와 일군의 기술적 포스트휴머니스트들은 향후 ‘마인드 업로딩(Mind uploading)’ 기술을 통해 인간의 생각이나 기억, 감정 상태까지도 디지털 데이터 변환을 시도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 종교적, 영적 가치마저도 인위적, 기술적으로 복제 혹은 구현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비단 정치, 경제, 문화적 갈등뿐만 아니라 기성 종교의 윤리적 가치에 다양한 도전적인 문제들을 제기한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다양한 방식의 신경 향상 기술을 통해서 인간의 도덕성 혹은 덕성 함양을 추구할 수 있다는 “도덕 공학(Moral Engineering)”이 급부상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과학기술을 통한 인위적인 “도덕적 신경 향상”에 대해서도 찬반양론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찬성론자들은 기후변화나 핵 공격 등 대량파괴 무기 위협과 같은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에 의한 인간 도덕성 향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과학기술을 통한 정서적 또는 감정적 조작이 개인을 도덕적으로 만들 수 없다고 주장한다. 진정한 덕성은 감정과 인지 사이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향상되는 것이지 신경 조작을 통해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논의의 전개 양상이야 어쨌든 이전에는 고민해본 적도 없는 또는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던 문제들이 제기되고 윤리, 종교, 철학은 이에 대해서 대답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에 종교 수행은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지난 12월 마지막 주에는 동안거 ‘용맹정진(勇猛精進)’이 있었다. 총림의 스님들이 각자의 소임처에서 하던 일들을 일시 중지하고 선원에 모여서 집중적으로 참선 정진하는 수행이다. 일주일간 수면시간 없이 줄곧 화두를 참구하면서 좌선해야 한다. 이때가 되면 총림 전체에는 팽팽한 긴장감마저 흐른다. 이제 막 출가한 열일곱 살 사미승부터 수십년된 구참 수좌스님들까지 한 방에 모여서 자신과의 싸움을 벌인다.
옛 수행자들은 “기한발도심(飢寒發道心)”이라고 해서 추위와 배고픔을 참아가면서 치열하게 정진했다. 만약 다가오는 미래에 ‘도덕 공학’을 통해 깨달음이나 바라밀행과 같은 덕성도 디지털로 구현할 수 있다면, 그때에도 수행이라는 것이 여전히 의미를 가질수 있을까. 그리고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아 영적 혹은 정신적 능력의 향상을 성취한 수행자도 여전히 윤리적으로 존중받을 만할까. 아니면 이 모든 생각이 깊어져 가는 겨울밤에 홀로 앉은 산승의 번뇌망상에 불과한 것일까.
보일 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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