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나경원 전격 해임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나경원 전 의원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에서 해임했다. 나 전 의원이 이날 저출산위 부위원장직에 대한 정식 사표를 제출하자, 사표를 내지 않은 기후환경대사 자리까지 묶어 해임한 것이다. 특히 사표 수리가 아닌 해임의 형식을 취한 것은 나 전 의원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직접적 불만 표현이란 해석이 나온다. 나 전 의원은 이에 “대통령의 뜻을 존중한다”고 했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1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오늘 나경원 전 의원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 직에서 해임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다양한 해임 사유를 종합적으로 검토했다”고만 했다. 신임 저출산위원회 부위원장에는 김영미 동서대 교수, 신임 기후환경대사에는 조홍식 서울대 로스쿨 교수를 내정했다.
나 전 의원은 지난주 ‘출산 시 대출 탕감’ 정책을 둘러싸고 대통령실과 갈등이 빚어지자, 지난 9일 대통령실에 저출산위 부위원장직을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문자와 전화로 전달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이 “정식 사직서가 제출되지 않았다”며 사의 수용 여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자 이날 오전 사직서를 제출했다. 당초 여권에선 윤 대통령이 14일부터 21일까지 예정된 아랍에미리트(UAE)·스위스 순방 후 나 전 의원의 사표 수리 여부를 고민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날 전격적으로 해임하며 자신의 뜻을 명확히 했다.
나 전 의원은 이날 오전 사직서를 제출한 뒤엔 이른바 ‘윤핵관’을 겨냥해 “나는 결코 당신들이 진정으로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날 밤 페이스북엔 “대통령의 뜻을 존중한다”며 “어느 자리에 있든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대한민국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나 전 의원 측 관계자는 “전당대회 출마 여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면서도 “출마할 명분이 더 커진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나경원 전 의원을 전격 해임한 것은 나 전 의원이 이날 오전 10시쯤 올린 페이스북 글이 촉매가 됐다는 평가다. 나 전 의원은 이날 “함부로 제 판단과 고민을 추측하고 곡해하는 이들에게 한 말씀 드린다”며 “나는 결코 당신들이 ‘진정으로’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때를 즈음해 나 전 의원 측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사직서를 제출했다”며 “이번 주 초 표명했던 부위원장직 사임 의사에 대해 여러 의견이 분분해 행정적 절차를 밟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후 처리 절차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했다. 사실상 ‘윤핵관’을 저격하면서 “처리 절차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며 공을 대통령실로 넘기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나 전 의원은 이후 “조용히 사색의 시간을 갖겠다”며 충북 단양에 있는 구인사를 방문했다. 구인사는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김건희 여사가 대선 이후에 방문한 곳이다. 이 자리에서 천태종 총무원장 무원 스님은 “무소의 뿔처럼 고고하게 부처님 진리를 새겨 고요히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면 가야 할 길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나 전 의원은 “스님의 말씀처럼 시간적 여유를 갖고 찬찬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실의 분위기는 달랐다. 나 전 의원이 대통령 순방 전날 윤핵관을 비판하는 글을 올리고 사표를 내자 ‘선을 넘었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자칫 이 논란이 계속될 경우 대통령의 순방 성과가 부각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요일 저녁 즈음에는 통상 대통령실 브리핑이 열리지 않는데 갑작스럽게 오후 5시 긴급 브리핑이 공지됐다. 그러면서 김은혜 수석은 ‘해촉’이나 ‘사의 수용’이란 표현 대신 ‘해임’이란 표현을 썼다. 해임(解任)은 그 직책을 ‘그만두게 한다’는 뜻으로 강경한 뉘앙스를 담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국가 과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맡긴 장관급 정부위원회 부위원장직이 당대표 출마를 위한 경력 쌓기용으로 희화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 것으로 안다”며 “대통령 인사권과 리더십을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해임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통령실은 나 전 대표에게 계속 일해 달라는 뜻을 언론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전달했지만, 정식 사표를 던지며 대통령과 정치적 게임을 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나 전 의원 측은 “처음에 정식 사표를 내지 않고 문자로 사의를 표명한 것은, 사퇴를 번복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대통령실과 더 조율하려 한 것이었다”며 “그런데 오히려 대통령실에서 언론 등을 통해 정식 사표를 내라고 재촉했고, 그래서 냈더니 해임을 한 것”이라고 했다. 또 친윤계에서 나 전 대표가 저출산위 부원장직을 시켜달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한 데 대해 “그런 적 없다”고 했다.
대통령실이 나 전 의원을 해임하자 친윤계는 “약자 코스프레” “제2의 유승민” 등의 용어를 쓰며 비판했다. 친윤 핵심인 장제원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마치 박해를 받아 직에서 쫓겨나는 것처럼 전형적인 약자 코스프레 하고 있다”며 “대통령을 위하는 척하며 반윤(反尹)의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을 가장 위하는 척하는 위선적 태도에 할 말을 잃는다”고 했다. 친윤계 박수영 의원도 페이스북에 “대통령의 성공이 대한민국의 성공. 그래서 제2의 유승민은 당원들이 거부할 것”이라고 했다.
나 전 의원은 이날 오후 8시쯤 페이스북에 “대통령의 뜻을 존중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나 전 의원 측 관계자는 “해임을 택한 대통령의 뜻을 존중한다는 뜻”이라며 “당대표든 어느 자리에서든 윤석열 정부를 위해서 일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해임당한 상태에서 출마하지 않으면 정치적으로 죽는 것 아닌가”라며 “지금은 출마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나 전 의원은 오는 16일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만찬 등이 잡혀 있지만, 이를 예정대로 할지는 미지수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충북 영동 농로서 50대 남녀 숨진 채 발견...경찰 수사 착수
- 與의총서 '당원 게시판 논란'... 친윤 "당무감사 필요" 친한 "경찰 수사 중" 갑론을박
- 의료사고 심의위 만든다... 필수의료는 중과실만 처벌토록
- 韓총리 “67학번인데도 입시 기억 생생… 수험생 여러분 고생 많으셨다”
- IT회사까지 차려 4조원대 도박 사이트 운영한 일당 적발
- 수능 영어, 작년보다 쉬워... EBS 교재서 많이 나왔다
- “마약 투약 자수” 김나정, 필로폰 양성 반응 나왔다
- “감사 전합니다”...총리실, 칠곡 할머니 래퍼들 부른 사연
- 도로석으로 쓴 돌덩이, 알고보니 현존 최고 ‘십계명 석판’
- “타인에 노출되는 것 두렵다”... 성인 5명 중 1명 심한 사회불안 느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