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문제, 근거와 설득으로 합일점 찾아야[동아시론/양은배]

양은배 연세대 의과대학 의학교육학교실 교수 2023. 1. 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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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의사 부족 전망에 의대 증원 논의 본격화
미래 의료 수요와 공급 더욱 세밀히 살필 때
정부-의료-과학계 협의체로 이견 좁혀야 한다
양은배 연세대 의과대학 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높다. 지난해 1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35년 2만7000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는 전문과목별 의사 인력 수급 추계를 발표했고, 교육부는 의대 정원 확대를 보건복지부에 공식 요청했다. 정부는 바이오 산업 등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한 의사과학자 양성, 필수의료 접근성 향상,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 등을 위해 의대 정원 증원 필요성을 말한다. 의료계는 의사 증원 논의 이전에 필수 의료 인력 확충과 해당 분야 인력 유입 극대화를 위한 지원, 교육과 수련 환경 개선을 주장하며 의사 인력 증원이 가져올 의료비 상승을 우려한다.

입학정원 증원 주장이나 불합리한 제도 개선과 지원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 모두 경청할 만하다. 중요한 것은 근거와 설득에 기반한 이해 관계자 상호 간의 이해와 협력이다. 다음 몇 가지 사항은 합의된 정책 도출을 위한 출발점이다. 첫째는 정보의 충분성이다. 현 의대 입학정원은 3058명이다. 2035년에 부족할 것으로 추계한 2만7000명에 균형을 맞춘다면 당장 의대 정원을 2250명 증원해야 한다. 숫자만 보면 정원을 증원하지 않으면 머지않은 미래에 심각한 의사 인력난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이 추계는 현재 시점의 의사 업무량, 활동 의사 수를 가정한 것이다. 그러나 의료 수요와 공급은 의료 전달 체계, 건강보험, 의료 수가와 같은 제도적 요인, 인공지능, 새로운 약물과 치료법 등과 같은 기술 혁신, 평균 수명 증가에 따른 의사의 활동 기간 증가, 인구 감소 등 사회 문화적 요소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 고려돼야 한다. 더 충분한 정보가 추계에 포함되고 근거가 되어야 한다. 2022년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 통계는 우리나라 의료 접근성이 최고 수준이며, 기대수명은 83.5세로 높고, 회피가능사망률도 낮아 의료의 접근성과 질적 수준이 높은 국가로 분류한다. 가까운 시일에 이러한 지표가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낙관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큰 재난이 닥쳐올 것처럼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둘째는 의사 인력과 의료서비스는 다양한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시스템이라는 점이다. 종합병원 의료진 부족, 필수의료 인력 양성, 특정 전문과목 기피, 지역별 불균형, 통계로 예측되는 미래 의료 수요를 간과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의대 정원을 증원하는 단일 처방이나 선형적 사고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앞으로 이러한 쟁점에 대한 논의와 해법이 모색되겠지만, 의대 입학정원 증원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성급한 결론은 내리지 않아야 한다. 셋째는 의료인력 양성 비용과 의료비 부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의료인력 양성과 의료서비스 제공에는 비용이 따른다. 많은 국가에서 의료서비스의 질과 접근성을 높이려는 노력과 함께 경상 의료비를 줄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 의료비는 미국이 17.8%, 독일 12.9%, 영국 11.9%, 한국은 8.4%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경상 의료비 연간 증가율을 고려해 보면 2035년에는 13.0%에 이를 수 있다. 양질의 의료서비스와 접근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사회는 이러한 비용을 부담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

넷째는 관점의 전환이다.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에 신중한 접근을 하는 사람을 집단 이기주의로 바라본다. 이러한 관점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나라 의학과 의료를 이끌어 가고 국민의 건강과 환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일선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의사 인력 증원에 관한 문제를 포함해 지금의 의료 현실 너머에 있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고 관점을 전환해야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

마지막은 합의된 정책 수립을 위한 거버넌스이다. 코로나19 이후 뉴노멀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바이오헬스 분야 경쟁력 확보, 필수의료 분야 접근성과 인력 양성, 지역별 의료인력 분포, 의학교육과 전문의 수련 체계, 미래 의료 수요 대비, 의료서비스에 대한 사회의 요구 등 해결해야 하는 중요한 현안이 산적해 있다. 정부, 의료계, 과학계, 교육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함께하는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결론이 정해져 있는 협의체가 아니라 합일점을 만들어 가는 열려 있는 거버넌스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거버넌스는 의료서비스와 관련한 제반 문제를 진단하고 원인을 분석하며,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며, 그 결과를 모니터링하고 평가하는 상설 기구가 되기를 희망한다.

양은배 연세대 의과대학 의학교육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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