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고물가에 한·미 금리 차 여전, 긴축 페달 언제 뗄지 고심

하남현.배현정.정종훈 2023. 1. 14.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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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연속 기준금리 인상 배경
13일 한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하지만 경제 성장률 둔화와 수출 부진으로 추가 인상이 쉽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사진은 짙은 안개에 둘러쌓인 부산 남구 신선대부두. [뉴시스]
정부가 8개월 연속 경기 둔화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우려의 강도는 새해 들어 한층 세졌다. 고물가 속에 내수 회복은 더뎌지고, 수출 감소 등 악재가 이어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6월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에서 경기 둔화 우려를 처음 밝힌 뒤 계속해서 비슷한 진단을 내놨다. 기재부가 13일 내놓은 그린북 1월호에서는 우려의 강도가 더 올라갔다. 지난달 ‘경기 둔화 우려’에서 이달에는 ‘경기 둔화 우려 확대’로 표현을 바꿨다. 기재부는 “최근 우리 경제는 물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지속하는 가운데, 내수 회복 속도가 완만해지고 수출 감소, 경제 심리 부진이 이어지는 등 경기 둔화 우려가 확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경제 지표엔 먹구름이 끼어있다. 경제 버팀목으로 평가받는 수출은 최근 글로벌 경기 둔화와 반도체·중국 시장 부진 속에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역성장을 이어가는 가운데, 이달 1~10일 수출도 전년 동기 대비 0.9% 감소했다. 방기선 기재부 1차관은 이날 열린 비상경제차관회의에서 “지난해 10월부터 수출이 감소로 전환된 가운데, 올해 여건 또한 어느 때보다 녹록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1월 초반에도 반도체, 대(對) 중국 등의 수출 부진이 지속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산업활동동향을 들여다보면 서비스업 생산은 전월 대비 0.6% 감소했다. 11월 경기동행지수, 선행지수는 한 달 전과 비교해 각각 0.7포인트, 0.2포인트 하락했다. 주택 시장은 전세·매매가격 모두 빠르게 내려가는 양상이다. 12월 취업자는 전년 동월 대비 50만9000명 늘었지만, 취업자 수 증가 폭이 꾸준히 축소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통화 긴축 속도, 중국 방역 상황 등에 대한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다. 주요국 성장 둔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향방 등에 따른 세계 경제 하방 위험도 지속한다. 앞서 10일(현지 시간) 세계은행(WB)도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지난해 6월 내놓은 3%에서 하향 조정한 1.7%로 전망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는데도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상을 이어갔다. 5%대 상승률로 여전한 고물가가 주원인이 됐다. 한·미간 기준금리 차이도 추가 인상을 떠밀었다. 이날 금통위 회의 전까지의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 폭은 1.25%포인트로, 지난 2000년 10월(1.5%포인트) 이후 약 22년 만에 가장 컸다. 금리 역전 폭 확대는 자본유출 등으로 한국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실제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외국인 증권(주식·채권) 투자자금은 24억2000만 달러 순유출됐다.

한·미 기준금리 차만 보면 한은도 금리 인상 보폭을 넓혀야 한다. 하지만 한은은 0.25%포인트만 올렸다. ‘빅 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행보를 가로막은 건 악화한 경기 인식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올해 성장률을 지난해 11월에는 1.7%로 봤는데 그사이 여러 지표를 봤을 때 성장률이 그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원화가치 하락세가 잦아든 것도 한은의 금리 인상 폭 확대 부담을 덜었다. 이날 달러 당 원화가치는 전날보다 4.5원 오른 1241.3원에서 거래를 마쳤다. 달러 당 원화가치가 1400원 선까지 추락했던 지난해 9, 10월과 다른 상황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요즘과 같이 달러 당 원화가치가 오르고 있는 상황에선 자본 유출 우려가 적다”며 “현재 한미 금리 역전 폭은 큰 문제가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경기 침체 경고등이 깜빡이는 가운데 한미 금리 역전 폭에 대한 우려도 줄어들며 한은이 긴축 페달을 뗄 시기에 관심이 쏠린다. 이날 이 총재를 제외한 6명의 금통위원 중 2명은 금리 동결을 주장했다. 앞으로 3개월 내 기준금리 정점 수준에 대해서는 금통위원 3명이 연 3.5%, 나머지 3명은 연 3.75% 이상으로 봤다. 이날 기준금리가 이미 연 3.5%에 도달한 만큼 다음달 통화정책결정방향 회의에서는 금리 동결 조치가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형석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물가가 아직 높은 수준이고 미국의 금리 향방도 고려해야겠지만 현재 경기 상황을 보면 금리를 섣불리 더 올리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가계의 금리 부담에 따른 내수 부진 가능성, 글로벌 경기 부진 여파 등을 고려하면 현재 기준금리는 정점에 다다른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기대 덕인지 코스피는 이날 외국인과 기관의 동반 매수세가 유입되며 20.99포인트(0.89%) 오른 2386.09에 장을 마쳤다. 한 달여 만에 2380선을 회복한 것이다. 앞서 열린 12일 미국 증시에서도 다우·스탠더드앤푸어스(S&P)·나스닥 지수 역시 소폭 상승했다. 미 노동부가 내놓은 지난해 12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전년 대비 6.5%로 11월(7.1%)보다 0.6%포인트 낮아진 것이 상승을 이끌었다. CPI 상승률이 6개월 연속 둔화하면서 통화 완화 기대감이 커진 결과다.

하지만 소비자물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는 점이 한국의 금리 인하 종료 시기를 늦출 변수로 꼽힌다. 한·미 기준 금리 역전 현상도 여전히 안심할 상황만은 아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오는 31일~2월 1일(현지시각)로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만 올리면 한·미 기준금리 역전 폭은 다시 1.25%포인트로 돌아간다. 지난해 11월 24일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한 금통위원은 “미국과의 금리 역전 폭이 일정 수준을 넘어 커지면 외환 부문의 리스크가 재차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 물가가 뚜렷한 둔화세를 보였지만 통화 긴축의 고삐를 쥔 제롬 파월 Fed 의장이 주목하는 ‘서비스 물가’ 오름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서비스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고용 시장이 꺾이지 않는 한 Fed가 금리 인하 등 적극적인 완화 카드를 꺼내긴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다은 대신증권 연구원은 “미국 임금 증가세가 빠르게 둔화하지 않으면서 올해 물가 상방 압력이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아울러 시장이 바라는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과 미국의 중앙은행이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를 접기 전까지는 금리 인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하남현·배현정 기자, 세종=정종훈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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