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날개 없는 추락, 계륵이 된 전세] 묵시적 갱신 땐 언제든 계약 해지…집주인, 전셋값 내릴 수 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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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5.23%.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지난해 1~11월 전국 아파트 전셋값 하락률이다. 최근 전세 시장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수치로, 2004년 통계 집계 이후 최대치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전세 시장의 체감 온도는 이 수치보다 더 차가울 것이라 입을 모은다.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 등 이른바 ‘임대차 2법’이 역전세난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2020년 8월부터 시행된 임대차 2법은 세입자의 계약갱신을 1회 보장하는 ‘계약갱신청구권’과, 재계약 때 인상률 상한을 5%로 제한하는 ‘전월세상한제’를 골자로 한다. 세입자들에게 최대 4년(2+2년)간 주거 안정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취지와는 달리 가격왜곡과 매물 실종 등 부작용이 더 부각되기도 했다. 최근엔 임차인이 임대인으로부터 언제든 통보할 수 있는 계약 해지권이 조명되며 전세 시장을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만들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더구나 세입자가 계약 해지를 빌미로 전셋값을 깎아 달라 요구하는 사례도 나타나면서 집주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요즘같이 전셋값이 하락하는 시기에 시장 침체를 더욱 부채질하는 셈이다. 서울 성동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서 근무하는 장성희 공인중개사는 “세입자의 중도 해지 요구에 집주인은 전셋값을 낮춰 주는 것 말고는 협상카드가 없다 보니 중간에서 난처한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며 “과거 어느 때보다 집주인이 불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문가들은 임대차 2법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좋은 취지를 가진 제도였더라도 시기와 환경, 여건이 달라지면 제도를 수정하거나 보완할 필요가 있다”며 “임대차 2법을 폐지하고 이전 제도로 돌아간다면 지금 벌어지는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소멸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실적으론 당장 전면 폐지는 어려울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국회 다수당인 야당 더불어민주당이 20대 총선에서 공약으로 내세웠던 제도였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당장은 큰 폭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7월 ‘주택임대차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던 국토교통부와 법무부도 올해 9월 나올 연구 용역 결과를 기다리며 속도조절에 들어갔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MD상품기획비즈니스학과 교수)는 “역전세난이 벌어지자 임대차 2법의 부작용이 더욱 부각되는 상황이지만, 민주당이 다수당인 상황에서 법안의 폐지나 전면적인 변화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전면 폐지가 어렵다면, 대안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일단 적용 범위를 좁힐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임대차 계약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렸던 1989년에도 시장이 요동치며 혼란을 겪은 바 있는데, 임대차 2법은 너무 급격하게 임대차 계약 기간을 사실상 4년으로 늘렸다는 것이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당장 폐지가 어렵다면 계약갱신청구권을 활용해 임대차 계약을 갱신할 때 계약 기간을 1년으로 줄이는 방안도 있다”며 “임대차 2법의 궁극적 목적은 세입자 보호에 있는 만큼 임대료 상한제 적용 대상을 전세금 일정액 이하로 제한하는 방식으로 적용 범위를 줄여 나가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선 실질적인 임차인 보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에 빠지자 세입자 보호보다는 시장을 왜곡하고 있는 임대차 2법 대신, 전세 사기를 막는 등 보호 장치 강화에 공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최근 ‘빌라왕’ 사건으로 허점이 부각된 전세보증보험 제도를 포함해 제도 전반에 보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전세사기범들은 임차보증금 반환 보증 보험 가입이 가능하다며 피해자들을 안심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임차보증금 반환 보증 보험이 전세사기범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세입자 입장에선 전세보증금을 떼일 우려 속에서도 집주인에게 관련 정보를 요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서진형 대표는 “임대차 2법이 시장을 왜곡하고 있는 가운데 정작 세입자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며 “집주인의 체납 정보를 등기부 등본에 표시하도록 하고, 임대차 현황 조사권을 공인중개사에게 부여하는 식으로 실질적인 세입자 보호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건강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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