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피해자 측, 제3자 변제 거부…해결은커녕 법률 분쟁 이어질 듯
미국을 방문 중인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이날 뉴욕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강제징용 해법과 관련해 “한국 국내 움직임이나 한국 측 발언 하나하나에 코멘트하는 것은 삼가겠다”며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쌓아온 우호 협력 관계의 기반을 바탕으로 한·일 관계를 건전한 형태로 되돌리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한국 정부와 긴밀히 소통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측에선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강제징용 해법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 교도통신은 지난 12일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한국 재단(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대신 배상금을 지급하고 이후 이 배상금의 반환을 일본 기업에 요구하는 구상권을 포기한다면 일본 기업이 재단에 기부하는 것을 용인하는 안이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강제징용 피해자 측의 거센 반대다. 이들은 지원재단이 기금을 모금해 배상금을 지급한다 해도 수령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하는 주체는 제3자인 재단이 아닌 일본 전범 기업이란 이유에서다. 피해자 측은 최소한 전범 기업의 기금 출연과 일본 측의 사죄가 전제돼야 정부의 해법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배상금을 대신 지급하려는 지원재단과 이를 거부하는 피해자 측의 충돌은 결국 법원 공탁 절차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지원재단은 배상금을 법원에 공탁해 법적으로 채무를 종결하려고 할 테고, 이에 맞서 강제징용 피해자 측은 공탁 무효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강제징용 문제가 해결은커녕 또 다른 형태의 법률 분쟁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외교 소식통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제3자 변제를 거부함에 따라 공탁 절차에 돌입하는 순간 정부 해법으로는 피해자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걸 공개 선언하는 셈이 된다”며 “나아가 피해자 측에서 또다시 소송을 제기하며 새로운 법률 다툼이 시작될 경우 정부의 해법 발표에도 불구하고 정작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갈등만 계속되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와 지원재단은 피해자 측과의 법률 분쟁 등을 감안해 일단 배상금은 마련해 놓되 실지급은 일본 기업의 출연이 확정된 이후로 미루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피해자 측에서 한국 기업의 출연금을 활용한 제3자 변제를 ‘굴욕적 해법’이라고 비판하는 상황을 의식한 조치다. 이 같은 방안이 성사되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지급되는 배상금의 성격은 ‘한국 기업 돈’에서 ‘한·일 기업이 뜻을 모아 함께 출연한 돈’으로 바뀌게 된다. 재단 측은 일본 기업이 기금 출연에 참여할 때까지 변제를 유예하는 이 같은 방안이 일본 측의 호응 조치를 촉구하는 효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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