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스타 권력 부상한 김여정 후계자인가? 예비용인가?

김용출 2023. 1. 14.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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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 등 국내외 행사 때
김정은 지근거리에서 그림자 보좌
정책 수립·주요국 외교 문제도 관장
韓 특파원 지낸 日 기자 집중 추적
건강 좋지 않은 金 ‘백두혈통’ 의지
남존여비로 女지도자는 쉽지 않아
만일 대비 소중한 ‘스페어’역 할듯

김정은과 김여정/마키노 요시히로/한기홍 옮김/글통/1만5000원

머리를 뒤로 넘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붉은 넥타이를 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나란히 긴 테이블에 앉아 있다. 첫 북·미 정상회담의 공동 합의문 서명식을 갖기 위해서다. 이때 김 위원장의 옆에서 가지고 있던 펜을 꺼내서 뚜껑을 열어주고 합의문을 펼치며 도와주는 여성이 있다. 검은 재킷의 그녀는 이날 업무 오찬에도 참석해 ‘세기의 담판’에 나서는 김정은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단연 돋보이는 인물은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었다.
북한 김여정 부부장은 지근거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보좌하는 한편, 주요국 외교와 관련한 문제에도 자주 모습을 보여 왔다. 김 부부장의 위상과 역할은 2020년 이후 세계적으로 가장 시선을 끄는 북한 이슈 가운데 하나가 돼 왔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김여정은 김정은이 외국 정상과의 행사에서 꽃다발을 받으면 그것을 보관하기도 했고, 2020년 5월 평안남도 순천 인산 비료공장 준공식에선 김정은에게 테이프 커팅 가위를 건네주기도 했다.
단순히 김 위원장의 의전만 한 건 아니었다. 2020년 6월13일 대남 담화를 발표하고 “나는 위원장 동지와 당과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나의 권한을 행사하여 대적사업 연관 부서들에 다음 단계 행동을 결행할 것을 지시하였다”며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의 폭파를 예고했다. 실제 사흘 뒤인 6월16일 개성공단 한쪽 구석에 있던 4층짜리 남북연락사무소 건물이 엄청난 폭발과 함께 연기를 내뿜으며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마키노 요시히로/한기홍 옮김/글통/1만5000원
김여정은 지근거리에서 김 위원장을 보좌하고, 북한 통치의 방향과 계획 수립 등 주요 결정에 관여했을 뿐 아니라, 한국과 미국 등 주요국 외교와 관련한 문제도 주도적으로 관장하고 있다.
김여정 부부장은 과연 김정은 위원장의 후계자인가, 아닌가. 김여정 부부장이 북한 사회 내부뿐 아니라 국제 관계 전면에 부상하면서 2020년 여름 이후 세계적으로 가장 관심을 가진 북한 관련 이슈 가운데 하나였다. 한국 특파원을 지낸 아사히신문 기자인 저자는 책에서 김여정 부부장의 성장 과정과 정치 참여 계기, 정치 스타일 등을 분석한 뒤 이 문제를 집중 검토한다.
다양한 역할을 소화 중인 김 부부장의 모습
책에 따르면, 김여정은 1988년 김정일과 재일교포인 고용희 사이에서 김정철과 김정은에 이어 막내로 태어났다. 그러면서 “삼 남매 중에서 ‘김여정이 가장 총명하고 지적’이라는 평판을 받았다”고 전했다. 김여정은 두 오빠와 함께 김정일 별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했다.

2014년 김정은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 투표할 때 동행하는 것으로 공식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애초 조선노동당 선전선동부에서 일을 시작했다. 선전선동부 소속으로 서양 문화의 개방에 앞장섰고, 휴대전화 서비스 사업을 적극 추진하도록 설득했다고 한다. 아울러 김정은이 얼마나 주민을 사랑하는 지도자인가를 알리는 정책인 ‘애민정치’를 추진하기도 했다.

책은 ‘총명하고 지적’이라고 평가받는 김여정이 정책에서 몇 차례 실패했다며, 그 이유로 북한 사회와 유리된 ‘붉은 귀족’이 된 것을 꼽았다. 즉, 두 오빠와 함께 김정일 별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을 정도로 북한 사회와 유리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건강 상태가 불안한 김 위원장에게 여동생 김여정은 매우 특별한 존재라고 진단한다. 김 위원장이 당·군·정 세 분야를 모두 챙길 수 없는 상황에서 그를 대신해 가장 많이 챙기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정보원도 2020년 8월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김여정 부부장이 권력 일부를 이양받아 북한을 위임통치하고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김여정에게 의지하는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책은 분석한다. 우선 고독한 남매로 태어난 강한 애정 때문에 김 위원장은 김여정을 의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회와 격리된 생활을 하면서 삼 남매가 강한 애정으로 맺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는 맥락이다. 두 번째로 김정은에게 신뢰할 부하가 없는 현실이 꼽혔다. 책은 김정은이 당과 군 인사를 수시로 자주 하고 있다며 “이는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것을 두려워한 결과로 보이지만, 반대로 그만큼 김정은에게는 신뢰할 만한 부하가 부족하다는 실상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세 번째로 김정은은 자신의 건강 상태 때문에 김여정을 의지하고 있다고, 책은 분석했다. 가계가 대대로 심장질환에 시달려 왔을 뿐 아니라, 김정은 스스로 고혈압과 당뇨병, 통풍 등에도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책은 김여정이 유력한 후계자 후보인 건 맞지만, 후계 지명은 받지 않았다고 봤다. 만약, 김여정이 후계자라면 오빠의 테이프 커팅용 가위를 건네준다든지, 오빠에게 건네진 꽃다발을 옆에서 받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면서 김여정 위상에 대해선 “김정은의 둘도 없는 말”이라고 평가했다. “지금의 김여정은 후계자도 아니고 북한이라는 독재국가를 지탱하는 장기판의 말에 불과하지만, 김정은에게는 둘도 없는 인물임은 틀림없다.”(61쪽)

그렇다면 김여정 부부장이 2019년에 이어 2021년 재차 당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물러난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책은 “김여정을 지키려 했던 김정은의 애정 표시”로 해석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과연 김여정은 김 위원장의 뒤를 이어서 최고 지도자가 될 것인가. 책은 북한 사회가 남존여비 사회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으로 바라봤다. 그럼에도 김정은의 건강에 문제가 있는 데다 아직 김정은과 리설주 사이의 자식인 김주애가 어리다는 점에서, 김여정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스페어’로 상당 기간 소중하게 다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은은 건강에 문제가 있다. 부인 이설주와는 2012년에 결혼해 아이(김주애)도 아직 어리다. 김여정은 김정은에게 만일의 사태가 일어났을 때의 스페어로 앞으로도 소중하게 취급될 것이다.”(67쪽)

책은 이 밖에도 김정남 암살의 내막과, 김정남과 고용희의 권력투쟁, 장성택과 고용희 세력 간의 암투 등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외무성 최선희와 서기실의 관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 내막 등도 소개한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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