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은 농사가 아닌 종교로부터 태동”
1만여년 이르는 인류 역사 빚어와
전쟁으로 불안·파괴 거쳐 온 인간
과학 다루는 방식에 운명 갈릴 것
역사와 과학/한헌수·임종권/인문서원/3만8000원
이처럼 처음부터 정신문화와 물질문명은 서로 분리되어 인류 역사를 만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 지식인들이 자연철학이라고 한 것처럼 과학과 철학은 분리된 게 아니라 융합된 영역이었다.
책은 서구 중심 문명론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근거도 상세하게 제시한다. 유럽이 근대 과학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동양의 우수한 문명을 수용하고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란 것이다.
예컨대, 15세기까지 중국은 자연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유럽보다 훨씬 발전한 선진국이었다. 중국의 자석나침반과 항해술, 종이, 인쇄술, 도자기, 화약 등이 전해져 유럽이 봉건제에서 벗어나 자본주의와 근대화를 이룩하는 데 결정적 도움이 됐다. 동서 문화권 교류의 중심이었던 이슬람 문명의 역할도 지대했다. 중세 유럽의 과학이 기독교의 영향으로 암흑에 싸여 있는 동안, 이슬람 세계는 그리스 과학과 자연철학을 받아들여 이를 더욱 발전시켰다.
다만 지리적 환경과 사회체제의 차이로 아시아는 유럽보다 근대화가 늦었다. 유럽은 토지가 척박해 식량 등 물자가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하지 못한 만큼 다른 나라와 끊임없이 무역이나 정복 전쟁을 하기 위해 바다와 육지로 멀리 나아가야 했다. 그러나 중국과 한국 등 아시아 지역은 필요한 물자를 모두 자급자족했기에 그런 모험을 하지 않아도 됐다. 나침반과 화약을 이용한 항해술과 총·대포 같은 무기 제작에 적극적일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종이와 인쇄술도 지배층의 지식 독점으로 발전에 걸림돌이 됐다.
또 서양 문명은 신·자연·우주의 섭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기초과학의 발전으로 이어졌으나, 중국과 이슬람 문명의 경우 주자학과 종교 원리주의 등이 발목을 잡았다.
책의 마지막 장 제목은 ‘불안과 파괴의 역사’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등 그 시대 첨단 무기들을 동원한 여러 참혹한 전쟁이 보여주듯 과학이 진보했다고 역사가 진보했다고 말할 수 없다. 과학이 인류에게 이로움을 주지만 멸망과 파괴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대 과학은 끊임없이 진화할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역사의 진보와 퇴보는 인간이 과학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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