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은 농사가 아닌 종교로부터 태동”

이강은 2023. 1. 14.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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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화와 물질문명의 융합으로
1만여년 이르는 인류 역사 빚어와
전쟁으로 불안·파괴 거쳐 온 인간
과학 다루는 방식에 운명 갈릴 것

역사와 과학/한헌수·임종권/인문서원/3만8000원

과학자(한헌수)와 역사학자(임종권)인 저자가 우주와 인류 탄생부터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아우르며 오늘날까지 인류 문화와 문명의 전개 과정을 융합적 관점에서 살핀 문명 비평서다. 두 저자는 서문에서 “역사와 과학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면서 현대에 이르렀는가 밝히는 데 목적이 있고, 더 나아가 현대 과학이 인류 역사를 더 발전시킬 것인지, 아니면 파괴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역사와 과학을 함께 다룬 많은 책이 대부분 과학기술사에 머무른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튀르키예 남동부 지역에 있는 고대 신전 유적지 ‘괴베클리 테페’의 일부 모습. 수렵채집 시대인 1만2000년 전 세워져 ‘인류 최초의 신전’으로 불리는 괴베클리 테페가 발견되면서 농경시대가 인류 문명의 시작이란 통념이 깨졌다. 튀르키예관광청 홈페이지 캡처
책에 따르면, 인간의 호기심과 상상이 과학을 만들어냈고, 과학 덕분에 인류 역사는 진보해왔다. 저자들은 “최초 인류가 상상했던 우주는 무엇일까. 왜 우주가 생겨났으며 인간은 우주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이 본질적인 물음이 인간의 과학 탐구 시작이었다”고 얘기한다. 이어 “인간에게 우주의 탄생이 우연에 의한 것이라는 상상은 존재하지 않았고, 태초부터 우주 밖에 존재하는 초월적 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다”며 “창조 신화와 종교는 초월적 신을 설명해주면서 인간에게 우주 법칙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도록 해준 최초의 과학서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한다.
이와 관련, 튀르키예 남동부 지역에 있는 고대 유적지로 독일 출신 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가 1994년부터 2014년 숨지기 전까지 발굴 조사한 ‘괴베클리 테페’가 주요 사례로 언급된다. 괴베클리 테페는 1만2000년 전에 세워진 것으로 조사된 현존하는 ‘인류 최초의 신전’이다. 이 고대 도시 유적에서 엄청나게 많은 뼈가 발견됐는데, 신전에 제물로 바쳐진 동물들의 뼈였다. 이 유적은 그동안 통념이었던 인류 문명의 탄생 원인과 발달 이론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인류가 농경 생활을 위해 정착하면서 신전과 도시가 세워지고 문명의 역사가 시작된 게 아니라, 종교 생활을 위해 모여 살다 보니 농사를 짓게 됐고, 도시가 세워지면서 문명이 발전했다는 것이다.
한헌수·임종권/인문서원/3만8000원
거대한 신전을 건축하려면 고도의 과학기술이 필요하다. 이집트문명의 거대한 피라미드와 신상, 메소포타미아문명의 여러 도시 건축물, 인더스문명의 모헨조다로 도시 등은 신과 인간의 관계가 곧 자연과학으로서, 물질문명을 탄생하게 한 인문과학으로서 정신문화의 기초가 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처럼 처음부터 정신문화와 물질문명은 서로 분리되어 인류 역사를 만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 지식인들이 자연철학이라고 한 것처럼 과학과 철학은 분리된 게 아니라 융합된 영역이었다.

책은 서구 중심 문명론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근거도 상세하게 제시한다. 유럽이 근대 과학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동양의 우수한 문명을 수용하고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란 것이다.

예컨대, 15세기까지 중국은 자연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유럽보다 훨씬 발전한 선진국이었다. 중국의 자석나침반과 항해술, 종이, 인쇄술, 도자기, 화약 등이 전해져 유럽이 봉건제에서 벗어나 자본주의와 근대화를 이룩하는 데 결정적 도움이 됐다. 동서 문화권 교류의 중심이었던 이슬람 문명의 역할도 지대했다. 중세 유럽의 과학이 기독교의 영향으로 암흑에 싸여 있는 동안, 이슬람 세계는 그리스 과학과 자연철학을 받아들여 이를 더욱 발전시켰다.

다만 지리적 환경과 사회체제의 차이로 아시아는 유럽보다 근대화가 늦었다. 유럽은 토지가 척박해 식량 등 물자가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하지 못한 만큼 다른 나라와 끊임없이 무역이나 정복 전쟁을 하기 위해 바다와 육지로 멀리 나아가야 했다. 그러나 중국과 한국 등 아시아 지역은 필요한 물자를 모두 자급자족했기에 그런 모험을 하지 않아도 됐다. 나침반과 화약을 이용한 항해술과 총·대포 같은 무기 제작에 적극적일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종이와 인쇄술도 지배층의 지식 독점으로 발전에 걸림돌이 됐다.

또 서양 문명은 신·자연·우주의 섭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기초과학의 발전으로 이어졌으나, 중국과 이슬람 문명의 경우 주자학과 종교 원리주의 등이 발목을 잡았다.

책의 마지막 장 제목은 ‘불안과 파괴의 역사’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등 그 시대 첨단 무기들을 동원한 여러 참혹한 전쟁이 보여주듯 과학이 진보했다고 역사가 진보했다고 말할 수 없다. 과학이 인류에게 이로움을 주지만 멸망과 파괴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대 과학은 끊임없이 진화할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역사의 진보와 퇴보는 인간이 과학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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