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금리’의 역습, 70만명이 이자 연 200% 넘는 사채에 신음
대출 가뭄 부른 금리 규제
“저신용자들이 불법 가서 2배, 3배 내지 말고 합법적으로 빌리라고 올리는 겁니다.”
최근 금융당국이 ‘법정 최고금리’ 인상을 검토한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 반응이다. 금융당국이 현재 연 20%의 법정 최고금리를 최대 27.9%까지 다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반발이 커지자 금융당국은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지난 9일 금융위원회는 해명자료를 통해 “법정 최고금리는 서민들의 금융비용 부담과 금융 접근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매우 신중하게 접근할 사안으로, 제도 변경 등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결정된 바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논란은 쉽게 가라앉을 조짐이 아니다. 서민들의 이자 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20%의 법정 최고금리’가 외려 저신용자들을 제도권 밖으로 몰아내는 칼날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 맞선다. 실제 저축은행·캐피탈 등 2금융권과 러시앤캐시로 알려진 대부업체 아프로파이낸셜대부 등이 최근 대출을 잇달아 중단하거나 축소하면서 저신용자들의 돈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금리를 올리더라도 돈을 빌릴 수 있게 해주느냐, 아니면 이자 부담을 덜어주느냐.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자영업자 등 연체 우려 카드 한도 축소
금리가 오르고 금융권이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서민들이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나는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커졌다. 설을 앞두고 자영업자 김모(42)씨는 카드 한도 축소로 고민에 빠졌다. A카드의 한도가 20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크게 깎인 것은 물론, 다른 카드사에서도 잇달아 축소 통보를 받아서다. 그는 “연체를 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한도 축소 통보를 받아 당혹스럽다”며 “하루하루 대금 내고, 물품 사고 했는데 설날 연휴 장사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자금 흐름이 막히는 최악의 경우 불법 사채를 알아볼 수밖에 없다. 김씨는 “이자율 20%라고 내세우는 일수업자에게 1000만원을 빌릴 경우 선이자 200만원을 떼고 800만원을 받은 뒤 하루 10만원씩 100일간 갚아야 한다”고 전했다. 800만원을 받고 1000만원을 갚으니 단순히 계산하면 100일만에 25% 이자를 내는 셈이다. 선이자와 복리를 고려하면 실제 이자율은 연 100%를 넘나든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조달금리가 2%포인트 상승(2021년 말 기준)함에 따라 대출자 중 약 69만2000명이 2금융권 신용대출에서 밀려난다. 김미루 KDI 연구위원은 “1000만원을 빌린다고 할 때 금리가 1%포인트 오를 때마다 이자 부담이 월 1만원 정도 늘어나겠지만, 만약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나 불법 사채를 쓰게 된다면 매월 최소 수십만원에서 최고 수백만원까지 이자를 추가로 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들의 돈 가뭄은 현재진행형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박모(38)씨는 2000만원 짜리 카드론의 만기를 맞아 여기저기서 돈 구하기에 정신이 없다. 지난해 카드론이 총부채원리금상환(DSR) 규제에 포함되면서 카드론 신청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신용점수가 낮아 은행권에서 돈 빌리기는 어렵고, 현금서비스 한도도 반토막이 나 급전을 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박씨는 “주식도 팔고, 주변에도 도움을 청해 돈을 마련하려는데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전업 카드사 7곳(신한카드·삼성카드·KB국민카드·현대카드·롯데카드·우리카드·하나카드)의 카드론 이용금액은 39조7069억원으로 집계됐다. 2021년 연간 카드론 이용금액이 52조1000억원에 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용금액이 크게 감소했다. 금리 상승에 따른 연체 우려가 커지면서 카드사들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대출 한도를 줄였기 때문이다.
카드 한도도 크게 줄고 있다. 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우리카드 등 주요 카드사들은 최근 일부 회원에게 한도 하향 조정을 안내했다. 카드사들은 정기적으로 이용자의 이용 실적과 연체 여부 등을 살펴 한도를 조정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도 점검이 매우 보수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리볼빙(결제액 이월약정) 이용이나 자영업자 등 연체 우려가 있는 고객을 중심으로 선제적으로 한도 축소에 나선 것이다. 카드사들이 구체적인 수치는 밝히고 있지 않지만, 박씨처럼 카드 한도가 반토막이 났다는 하소연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제도권 금융서 밀리면 부정적 효과 증폭
카드사 외 제2·3 금융권도 대출 빗장을 닫고 있다. 아프로파이낸셜대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신규대출 취급을 중단했다. 대부업계 2위인 리드코프는 신규대출을 기존의 20% 수준으로 크게 줄였다. 캐피탈·저축은행 등 2금융권들은 지난달부터 토스, 핀다 등 대출비교 플랫폼에서 대출 상품 취급을 중단했다. 캐피탈 업계 1위인 현대캐피탈이 지난달 말부터 일부 플랫폼에서의 신규대출 영업을 중단했고, 저축은행 업계 1위인 SBI저축은행도 신용대출을 중단했다. 이는 연말 대출 총량 관리 차원에서 이뤄지기도 했으나, 새해에 들어서도 여전히 10개 넘는 금융사들은 플랫폼을 통한 대출을 재개하지 않고 ‘점검 중’이라고 안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행 법정 최고금리를 높여 저신용자 대출에 숨통을 틔워줘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준금리가 올라가면 그만큼 법정 최고금리도 올려 제2·3금융권이 저신용자에게 대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정 최고금리는 2002년 10월 대부업법이 제정되면서 연 66%로 정한 이후 2021년 7월 연 20%까지 7차례나 줄곧 인하됐다. 법정 최고금리 설정의 주된 목적은 고리대금업으로부터 소비자 보호였다. 하지만 ‘착한 금리’가 오히려 저신용자를 ‘사채 지옥’으로 내모는 역설이 벌어지는 셈이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은 “기준금리가 높아진 시기에는 상한도 높였다가, 금리가 낮아지면 상한도 낮아지는 시장연동형 금리 상한 방식을 도입해 취약계층이 제도권에서 금융 접근이 가능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취약계층을 위해 저금리 정책금융 공급을 확대하거나 대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김미루 연구원은 “금리 상승보다 대출이 막힐 때의 부정적 효과가 훨씬 큰 상황이어서, 법정 최고금리를 시장금리와 연동해 금리 인상기에도 취약계층에 대한 대출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와 함께 상환부담 증가로 생활고를 겪는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저금리 정책금융을 공급하거나 재정을 통한 보조를 지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금리 정책금융으로는 ‘햇살론’ 등이 대표적이다. 서민금융진흥원은 지난해 한시적으로 시행했던 햇살론 한도 확대 적용을 올해 말까지 1년 더 유지한다. 이에 따라 근로자햇살론은 2000만원, 햇살론15는 2000만원, 햇살론뱅크 2500만원까지 한도 확대가 유지된다. 근로자 햇살론은 최대 2000만원을 5년 만기로 빌릴 수 있는 상품으로, 금리 상한은 연 11.5%다. 연 소득 3500만원 이하이거나 신용점수 700점대 이하인 저신용자들이 이용할 수 있다.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카드론 규제 완화 의견도 나왔다. 지난해부터 카드론이 DSR에 포함되면서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이 ‘금융권 최후의 보루’로 카드사 현금서비스나 리볼빙 같은 단기 대출 상품에 몰리고 있어서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2020년과 2021년 55조원 안팎이던 현금서비스 이용액은 지난해 6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이런 단기 대출이 부채의 질을 악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장 5년에 걸쳐 상환이 가능한 카드론과 달리, 월 단위로 상환해야 하는 현금서비스는 당장 급한 불을 끌 수는 있지만 돌려막기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있다. 서 교수는 “금융당국이 저신용 대출자에 한해서는 DSR을 산정할 때 카드론을 반영하는 것을 한시적으로 유예해주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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