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소재 쓰고 수작업 지휘…르네상스 빚은 책장수
로스 킹 지음
최파일 옮김
책과함께
영국의 역사저술가인 지은이는 이 책을 “모든 악은 무지에서 생겨난다. 하지만 작가들은 어둠을 몰아내고 세상을 밝게 비춰왔다”는 베스파시아노 다 비스티치(1422~1498)의 말로 시작한다. 베스파시아노는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도시국가 피렌체에서 활동한 서적상 겸 카르톨라이오(양피지 등을 파는 문구상)였다. 인문주의자라는 수식어가 함께 따라붙는다.
지은이는 피렌체에서 벌어진 르네상스의 시작과 인문주의의 부흥을 귀족이나 예술가·학자 대신 서적상인 베스파시아노를 중심으로 그린다. 서적상은 먼지 쌓인 서가를 뒤지며 희귀 필사본은 찾는 책 사냥꾼, 고대 그리스어를 라틴어로 옮기는 학자, 깃펜을 들고 이를 필사하는 필경사, 글자를 채우고 남은 빈 곳에 장식 그림을 넣고 금박을 붙이는 채식사 등을 지휘해 책을 만든 지휘자였다. 그가 이렇게 제작하고 판매한 책이 1000권이 넘었다.
필사본 제작은 사라져가던 고대 지식의 부활과 갱생을 이끌면서 르네상스의 원동력이 됐다. 베스파시아노의 집은 인문주의자들의 토론과 만남의 광장이 됐다. 책이 지식과 사유의 중심으로 자리 잡던 시기의 모습이다.
당시 메디치 가문을 일으킨 코시모 데 메디치(1389~1464)의 지원으로 1443년 피렌체에 도미니크회 산마르코 수도원의 도서관이 건설되자 베스파시아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도서관은 인문주의자 니콜로 니콜리(1364~1437)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수백 권의 양피지 코덱스 책을 기증받은 데 이어 베스파시아노의 기여로 장서를 늘렸다. 도서관은 피렌체를 고대 학문의 중심지이자 다른 도시들이 감히 따라갈 수 없는 지식의 보고로 만들었다. 책 제작은 모직과 금융업과 더불어 피렌체의 대표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도서관을 세운 용병대장은 아들과 함께 등장한 초상화에서 갑옷 차림으로 두툼한 양피지 책을 들고 있다. 왼쪽 무릎에는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4세가 수여한 가터 훈장이 걸려 있다. 무공과 책은 나란히 그의 표상이 됐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바티칸 도서관을 보유한 교황 식스투스 4세는 도서관과 가족 영달이라는 두 가지에 열중한 인물이었다. 그가 등장한 그림에는 나중에 자신의 사서가 되는 인물과 가족인 네 명의 조카가 함께 그려졌다.
고대 그리스 고전을 당대 공용어인 라틴어로 번역하는 일도 중요했다. 피렌체의 인문주의자 마르실리오 피치오(1433~1499)는 고대 그리스어로 된 플라톤의 모든 저서를 라틴어로 옮겼다. 피치오는 자신의 첫 플라톤 라틴어 번역본이 산 야코포 디 리폴리의 인쇄기에서 나왔을 때 “우리의 플라톤이 오늘 문턱을 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고 감격해 했다. 메디치 가문의 후원으로 플라톤 아카데미도 이끌면서 르네상스에 불꽃을 피웠다. 오늘날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을 알고 있는 것도 그 덕분일 것이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398?~1468)가 1440년쯤 사용하기 시작한 금속 활판 인쇄술 보급이 서구에서 인쇄물의 대량공급, 르네상스와 인문주의의 확산, 종교개혁에 기여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암흑 속으로 사라져가던 고대 지식을 수집하고 이를 보관성 좋은 양피지에 담아 도서관과 서재에 보존한 베스파시아노의 공도 함께 기억해야 마땅하다.
피렌체는 미켈란젤로와 마키아벨리의 무덤이 있는 산타 크로체 성당에 그의 사망 400주년이던 1898년 작은 명판을 별도로 세워 기리고 있다. 사족을 붙이자면, 피렌체 서적상 거리에 있던 그의 서점은 현재 피자가게로 변해있다. 원제 The Bookseller of Florence.
채인택 전 중앙일보 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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