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폭설 뚫고 온 귀한 손님 ‘우체부’
지금은 집배원으로 불리지만 1970년대 당시엔 우체부라고 불리던 아저씨에게 동행 촬영을 허락받고 뒤를 따르는 나의 카메라도 꽁꽁 얼어붙어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당시 사진학과 학생이었던 나는 겨울방학이 되어 고향으로 내려와 있던 중, 서울에서 온 편지를 전해 주는 우체부를 보면서 ‘우체부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하필 그날 기록적인 눈이 쏟아졌다. 얼마나 춥던지 나중엔 구부러지지 않는 손가락 대신 주먹으로 셔터를 눌러야 했다.
원래 내 고향 전북 고창은 눈이 많은 고장이다. 아마 처음엔 길동무가 생겼다고 여겼을 우체부는 오후로 접어들자 내가 귀찮아졌는지 잠깐 한눈팔면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러나 걱정 없었다. 자전거 바퀴자국을 따라가면 결국 다시 만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눈보라 속에 미끄러지면서 우리의 숨바꼭질은 계속되었다.
전화가 드물고 별다른 통신수단이 없던 70년대 외진 시골에서 외부로부터 소식을 받아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편지. 그 시절의 우체부는 관할 동네 주민들의 가정사까지 일일이 꿰뚫어 알고 있었고, 편지만이 아니라 이 동네 소식을 저 동네로 전해 주는 귀한 손님이었다. 모두들 눈에 갇힌 겨울날, 편지 한 장을 전하기 위해 눈보라를 뚫고 먼 길 찾아오는 우체부를 누가 반가워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저녁 무렵 우편행낭이 텅 비면 사람들과 나눈 온기로 마음을 채워 어느새 눈이 그친 길을 되짚어가던 우체부의 하루. 벌써 50년 전의 기억이다.
김녕만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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