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까지 담겼다, 타임머신 같은 그림지도

한경환 2023. 1. 14.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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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만화경
도시의 만화경
손세관 지음
도서출판 집

“중국인이 있는 곳에는 꼭 이 그림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다. 폭 25㎝, 길이 5m 남짓의 한 폭 두루마리 그림으로 중국 북송(北宋) 말기인 1120년께 장택단(張擇端)이 수도 카이펑(開封)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중국제일화로 받들어지는 이 그림의 진본은 베이징 고궁박물관에 있지만 복제본이나 모방본들은 서울 서촌의 작은 중국집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하다. 청명상하도는 전 세계 중국인들과 함께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그림에는 550명이 넘는 사람이 등장하며 건물, 가구, 동식물, 일용품 등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이 등장한다. 100채 이상의 집과 누각, 25척의 선박, 15량의 수레, 8채의 가마 등 북송 당시에 존재하던 만물이 생생히 그려져 있다. 그래서 이 그림은 ‘송대의 백과사전’이라 불린다. 청명상하도를 통해 우리는 900년 전 중국으로 돌아가는 타임머신 여행을 즐길 수 있다.

‘확장된 빈의 파노라마’. 이 그림지도는 열기구에서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도서출판 집]
건축과 도시를 연구하는 손세관 중앙대 명예교수가 지은 『도시의 만화경』은 카이펑을 비롯해 전 세계 15개 도시를 그린 450여 장의 그림을 통해 보고, 느끼고, 상상하는 ‘환상적인 도시 탐험’ 가이드북이다. 로마·런던·파리·빈·피렌체·베네치아·시에나·암스테르담·뉴욕과 같은 서양의 도시들과 베이징·쑤저우·교토·한양 등 한·중·일의 도시들 그리고 이란의 이스파한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본다.

구스타프 파이트가 1873년 그린 ‘확장된 빈의 파노라마’는 600년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 빈의 황금시대를 그렸다. 19세기 말 빈의 모습을 높은 곳(아마도 열기구)에서 조망한 그림이다. 석판화로 인쇄된 이 그림은 그해 열린 빈 만국박람회 기념품으로 팔렸다. 벨베데레궁정 상공에서 본 슈테판대성당, 카를성당, 살레시오수도회교회 그리고 반지 모양의 넓은 길 링슈트라세와 주변 신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은이는 이 그림을 모티브로 빈의 역사와 문화, 건축 등을 소상하게 더듬어 본다.

‘베네치아 조망 그림’(1500년, 야코프 데바르바리)은 압권이다. 520여 년 전에 그려진 이 그림에는 만 개가 넘는 굴뚝, 114개의 교회, 47개의 수도원, 103개의 종탑 그리고 253개의 다리가 그려져 있다. 작은 주택의 창문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다. 화가는 지도의 정확성과 과학성보다는 예술성을 더 강조해 도시의 윤곽을 날렵하고 역동적으로 만들어서 베네치아의 상징인 돌고래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1796년 수도를 테헤란으로 옮기기 전까지 200년 가까이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이스파한은 이슬람권 도시 가운데 보기 드물게 그림지도가 남아 있는 곳이다. 테헤란 남쪽 400㎞에 위치한 이스파한은 실크로드의 중심지였으며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하고 큰 도시였다. 1657년 네덜란드 지도제작자 얀 얀소니우스가 그린 ‘이스파한 전경’은 독일인 아담 올레아리우스의 그림지도를 바탕으로 곳곳을 보강하고 채색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이맘광장과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큰 자메모스크, 페르시아 건축예술의 정점에 있는 로얄모스크 등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200년 전 한양 풍경을 제대로 보여 주는 대표적인 그림지도는 ‘경기감영도’(작자 미상, 19세기 초반)다. 한양 그림은 이 밖에도 많지만 경기감영도와 동궐도가 당시를 가장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서대문 일대를 그린 경기감영도는 12폭 병풍에 담겨 있다. 조선 후기 사람들의 다양한 삶과 저잣거리 풍경 등을 사진처럼 재현했다.

지금이야 도시를 찍은 사진들이 너무 흔해 빠졌지만 그림으로 보는 과거의 도시들은 색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도시의 만화경』을 통해 중세, 근현대의 세계 도시들을 돌아다니는 즐거움은 남다르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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