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구장 만원 땐 팬티 입고 뛴다” 약속 지키자 여성팬 눈물

정영재 2023. 1. 14. 00:2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영재의 레전드를 찾아서] 원조 공격형 포수 ‘헐크’ 이만수
이만수 감독이 지난해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선정한 KBO 40년 레전드 유니폼을 입고 포즈를 취했다. 이 감독은 “포수는 잘 받고, 잘 던지고, 잘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SK 와이번스 감독 그만두자마자 2014년 11월 12일 라오스로 갔어요. 솔직히 ‘야구 불모지에서 재능기부 한다’는 얘기 좀 듣고 멋있게 현장에 복귀하려고 했죠. 한 달 뒤 작별인사 하고 돌아설 때 왜소한 체구의 아이가 ‘아짱(라오스어로 선생님), 저희들하고 같이 야구해요’ 하는데, 태어나서 천사를 처음 봤습니다. 그 순간 마음먹었죠. 남은 인생은 동남아에 야구를 보급하고, 이 아이들과 같이 야구하는 데 바치겠다고요.”

‘헐크’ 이만수 감독은 10년째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그는 ‘야구’라는 단어조차 없었던 라오스에 야구를 보급해 팀을 만들고 야구장을 지었다. 라오스야구협회를 결성해 2018년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베트남에도 같은 방식으로 야구를 보급하고 있다. 2월 24~26일 라오스에서 인도차이나반도 4개국(태국·베트남·라오스· 캄보디아)이 출전하는 첫 국제대회를 연다.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인 그는 국내에서도 전국을 돌며 재능기부를 하고, 장애인 야구단체도 돕고 있다.

이만수는 프로야구 1호 안타·타점·홈런 기록을 갖고 있는 ‘공격형 포수’의 원조다. 삼성 라이온즈에서만 16년을 뛰었고,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 코치로 월드시리즈 우승도 경험했다. 나눔과 베풂의 전도사로 변신한 이만수 감독을 서울 강서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야구 통해 꿈이 바뀐 아이들 보며 보람

Q : “야구 하면 밥이 나오나 떡이 나오나” 소리를 많이 들으셨죠.
A : “맞습니다. 사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월급은 안 받는데 쓰는 건 두 배 이상이니까요. 라오스 활동 시작하고 3년쯤 지나 아내한테 ‘그동안 퍼주기만 했는데 뭘 먹고 사냐’고 물었어요. 아내가 ‘진짜 숟가락 못 들 정도 되면 얘기 할 테니까 그 전까지는 마음껏 일하세요. 평생 야구로 받은 사랑을 되돌려줘야 하잖아요’ 하더라고요. 그래서 당시 TV 광고 두 편 찍고 받은 4억원을 기부하면서 재단을 만들었죠.”

Q : 아이들은 야구를 통해서 뭐가 바뀌었나요.
A : “라오스 온 초기에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어요. ‘하루 세 끼 먹는 게 꿈’이라고 해서 쇼크를 받았습니다. 그 뒤에 20여명을 부산에 데려가 바다 구경도 시켜주고 인천에 와서는 제가 다니는 교회 도움으로 홈스테이를 하게 했죠. 3박4일 일정을 마치고 안 가겠다며 우는 아이들을 데리고 라오스로 돌아왔는데, 몇 달 뒤 다시 물어보니 꿈이 다 바뀌었어요. ‘정치인이 돼서 군부가 장악한 나라를 바꿀래요’ ‘병원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고치는 의사가 될 겁니다’ ‘돈을 많이 벌어 우리나라를 잘 살게 하겠어요’ 라고요. ‘아, 야구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아이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구나’ 싶어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이만수는 또래보다 늦은 중1 때 야구를 시작해 1년을 유급했다. ‘호랑이 이상사’였던 직업군인 아버지는 운동을 제대로 안한다 싶으면 도끼로 배트를 찍어버렸다고 한다. 그는 하루 4시간만 자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연습하겠다고 다짐했다. 너무 힘들어서 코피를 자주 흘리는 바람에 그 시절 별명이 ‘쌍코피’였다고 한다. 이 감독은 “중-고-대 11년을 그렇게 하니까 습관이 돼서 지금도 하루 6시간 이상 안 잡니다”고 말했다.

Q : 또 다른 습관이 있었다면?
A : “단체운동 전에 미리 나와서 체조를 30분간 합니다. 제가 뻣뻣할 것 같은데 다리와 가슴이 붙을 정도로 유연해요. 그래서 은퇴할 때까지 큰 부상이 없었죠. 꿈나무들을 만나면 ‘일기를 쓰고, 야구 일지를 써라’고 말합니다. 기록을 해야 내 장단점과 보완할 점을 알게 되거든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알기 위해 베스트셀러나 유명인의 자서전을 읽으라고도 권합니다.”

Q : 테니스 선수인 동생의 서브를 받아치는 훈련을 했다죠.
A : “동생이 국가대표였는데 서브 시속이 200㎞ 넘어요. 원 바운드된 공을 배트로 치는 건데 며칠간은 맞히지도 못했죠. 한 달 정도 지나니까 제가 다 칩디다. 메이저리그 가 보니 테니스공을 쏴 주는 피칭머신이 있는데 시속 300㎞가 넘어요. 더 놀라운 건 그 공에 색칠을 해 놓는데 무슨 색인지 선수가 파악해야 하는 겁니다. 그렇게 동체시력(動體視力)을 강화하는 훈련을 멋모르고 제가 했던 겁니다. 하하.”

Q : 하도 연습을 많이 해서 굳은살이 터졌다면서요.
A : “저희 때만 해도 야구장갑이 없어서 맨손으로 타격 연습을 하다 보면 굳은살이 쌓입니다. 겨울에는 물집이 생기고 몇 번 더 까지고 나면 허연 뼈가 보여요. 일본 타격왕 출신 장훈 선배가 자전거 튜브를 감고 연습했다는 걸 책에서 보고 따라해 봤는데, 스윙 몇 번 하다보면 굳은살 터진 곳에서 피가 흘러 미끄럽더라고요. 그럴 땐 온기가 좀 남은 연탄재에 손을 쓱쓱 비빈 뒤 스윙을 계속 했죠.”

Q : 타자 약 올리는 데 최강이셨죠. 무슨 얘기를 했습니까.
A : “우리 때는 일본 야구 영향을 받아서 포수는 ‘이빨’을 잘 써야 한다고 했어요. 김봉연 선수에겐 ‘선배님, 어젯밤에 어떤 아가씨하고 데이트 하던데 형수한테 다 일러줍니다’ 하면 ‘뭐, 이 XX야?’ 하면서 흥분합니다. 김우열 선수한테는 ‘형님 뭐 합니까. 이 나이에 머리 다 빠져서’ 라고 하고, 감독 겸 선수였던 백인천 선배님께는 ‘감독님, 우리도 먹고 살아야지예. 한국까지 와서 와 이러십니까’라고 긁어 놓죠.”
친구 최동원 탓 통산 타율 3할 못 넘어

2007년 5월 26일 문학구장에서 ‘팬티 세리머니’를 하고 있는 이만수 SK 코치. [사진 이만수]

Q : 요란한 홈런 세리머니 때문에 보복도 많이 당하셨죠?
A : “최정(SSG) 선수가 몸 맞는 볼 세계신기록 세웠다고 하던데, 빈볼(위협구)은 제가 더 많이 맞았을 겁니다. 홈런 친 뒤에 만세 부르고 춤추면서 들어오면 바로 다음 타석에 빈볼이 날아옵니다. 그런데 이게 천성이에요. ‘좋은데 좋다고 표현을 해야지’ 하는 생각이거든요. 그런 천성 때문에 미국 생활도, 동남아 야구 보급도 잘할 수 있지 않았나 싶네요. 지금은 서로 자극하는 행동은 안 하는 게 맞죠.”

Q : 제일 치기 힘든 게 최동원 공이었다면서요?
A : “최동원은 제 친굽니다. 중학교 때 부산 토성중에 안경 낀 친구가 공을 던지는데 너무 빠른 겁니다. 동원이 커브는 좌우로 휘는 게 아니라 위에서 드롭성으로 뚝 떨어지니까 맞히기가 너무 힘들어요. 제 프로 통산 타율이 0.296인데 동원이 때문에 타율 다 까먹어서 3할을 못 넘긴 겁니다(웃음). 동원이가 암 투병할 때 마지막까지 제가 병상을 지켰는데 어머님이 ‘동원이가 이루지 못한 꿈을 네가 좀 이뤄줬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대성통곡했던 기억이 납니다.”
2007년 5월, 프로야구는 SK 수석코치 이만수의 ‘팬티 세리머니’로 들썩였다. 이 코치가 농담으로 “문학구장 만원 되면 팬티만 입고 운동장 돌겠다”고 한 말이 중계를 통해 전국에 알려졌다. 그는 “아내와 아들에게 ‘미쳤냐’는 소리를 들었는데 ‘10경기 안에 만원이 되면 한다고 했다.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다’고 했죠”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Q : 결국 팬티 세리머니를 하게 됐죠.
A : “D데이였던 5월 26일 KIA 타이거즈전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와 1회 끝나기도 전에 ‘오늘 경기 만원’이 떴어요. 5회 끝나고 라커에 걸어놨던 ‘원숭이 팬티’로 갈아입고 있는데 빨리 나오라고 난리가 났어요. 구단에서 ‘이만수 수호대’ 22명을 모집했는데 5분 만에 다 찼다는 겁니다. 그분들과 함께 3만 관중이 기립박수를 보내는 운동장을 도는데 여기저기서 여성 팬들이 울더라고요.”
이만수 프로필

Q : 무슨 의미의 눈물이었을까요.
A :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본 감동이겠죠. 자신이 한 말을 밥 먹듯이 뒤집는 세상에서, 농담처럼 한 말이라도 지키려는 한 남자의 우직함을 본 거죠. 당시 한국 사회가 반으로 딱 갈렸대요. ‘이만수는 무식하니 팬티 입고 뛸 거다’는 측과 ‘월드시리즈 우승팀 코치까지 한 스타가 뭐가 아쉬워서 그런 짓을 하겠나’는 쪽이었죠.”

Q : 고교 선수 대상으로 이만수 포수상-홈런상을 6년째 시상하고 계신데요.
A : “포수상 만든다고 했을 때 주위 분들이 말렸어요. 포수는 인기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강팀엔 좋은 포수가 있다’는 걸 팬들이 깨닫기 시작했고, 양의지가 2019년 FA 대박(4년 총액 125억원)을 터뜨렸죠. 올 시즌 4명(박동원·박세혁·양의지·유강남)이 총액 343억원의 FA 계약을 하면서 ‘포수 전성시대’가 열렸어요. 지난해 이만수 홈런상을 받은 포수 김범석(경남고→LG)은 저를 능가하는 엄청난 선수가 될 겁니다.”
좋은 포수의 조건이 뭔지 물었다. 이 감독의 대답은 ‘기본’을 벗어나지 않았다. “첫째, 잘 받아야 합니다. 프로야구에 패스트볼(포수가 공을 놓치는 것)이 너무 많아요. 둘째, 잘 던져야 합니다. 2루 송구든 1루 견제든 빠르고 정확해야죠. 셋째, 잘 막아야 합니다. 블로킹 동작이 잘못된 프로 선수가 의외로 많은데 꿈나무들이 그걸 따라 하더라고요. 앞사람의 발자국이 뒷사람의 길이 됩니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 jerry@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