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행복의 언덕’ 함께 오르는 소망 영화에 담다
나리카와 아야의 ‘일본 뚫어보기’
후쿠오카와 도쿄 극장에서 영화 상영 후 장률 감독이 관객과 대화를 나눌 때 나는 진행과 통역을 맡았다. 관객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왜 후쿠오카, 야나가와에서 찍었는가’였다. 장 감독의 영화는 제목이 지명인만큼 어디서 찍는지가 중요하다. 시나리오를 쓰고 어디서 찍을지 생각하는 게 아니라, 먼저 어디서 찍을지 생각하고 그 공간에서 얻은 영감으로 시나리오를 생각하는 식이다.
장 감독은 중국 연변 조선족 자치주 연길시 출신의 조선족이다. 즉, 장 감독 안에는 중국과 한국이 공존한다. 중국에서 영화를 몇 편 찍은 다음 한국에서 ‘경주’ ‘춘몽’ 등을 찍었다. 일본에서 찍은 ‘후쿠오카’는 박소담, 권해효, 윤제문이 주연한 한국 영화이고 ‘야나가와’는 니니, 장로일, 신바이칭이 주연한 중국 영화다. ‘후쿠오카’는 서울, ‘야나가와’는 베이징에서 일부를 촬영했다. 이렇게 한·중·일을 넘나들며 영화를 만들고 있는 감독은 장 감독이 유일하다.
장 감독, 영화 통해 조선족 알리는 역할
장 감독이 후쿠오카에서 영화를 찍은 이유 중 하나는 ‘아시아포커스·후쿠오카 국제 영화제’에 여러 번 초청받아 방문하면서 후쿠오카라는 공간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떤 매력인지 물어봤더니 장 감독은 ‘개방적인 도시’라고 답했다. 후쿠오카는 항구 도시로서 역사적으로 한국, 중국과 교류가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후쿠오카 사람들은 외국인에게 편하게 말을 거는 편이다. 장 감독은 후쿠오카의 한 스시 집에서 옆자리 할아버지가 먹고 있는 오징어 회가 먹음직스러워 보여 훔쳐보고 있다가 할아버지가 같이 먹자며 나눠준 일화를 ‘개방적인’ 예로 들며 “도쿄 같은 대도시에선 거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3부작의 공통점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가 자연스레 오가는 가운데 어떨 때는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하는 사람들끼리 뜻을 이해하는 장면들이 나온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관객이 질문하면 장 감독은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후쿠오카에 있으면 한·중·일 3개 국어가 자연스럽게 들려오고, 베이징에서도 서울에서도 도쿄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르는 언어지만 그 뜻이 이해되는 일도 종종 있다”고 답했다. 이는 내가 장 감독과 같이 다니면서 여러 번 경험한 일이기도 하다. 나는 중국어를 모르지만 가끔 장 감독이 중국어를 섞어서 이야기해도 이상하게 그 뜻을 이해할 때가 많다.
한편 야나가와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장 감독은 “아름다우면서 조용한 곳이기 때문”이라며 “중국에선 아름다운 곳이 관광지가 돼서 사람들로 붐비고 정신없다. 반면 야나가와 같은 아름답고 조용한 곳에선 감정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야나가와는 영화 속에서 ‘고스트 타운’이라고 불릴 만큼 생과 죽음의 경계선에 있는 듯 한산해 보였다. 나도 영화 속 환상적인 풍경을 보며 다음은 야나가와의 촬영지를 돌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야나가와’에는 일본의 인기 배우 이케마츠 소스케도 출연했다. 이케마츠는 한국에서 촬영하고 한국 배우들도 나오는 이시이 유야 감독의 영화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에 출연한 바 있다. 또 ‘야나가와’에 니니와 같이 출연한 것이 계기가 돼서 최근 또 다른 중국 영화에 출연했다. 한·중·일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배우로 앞으로가 기대된다.
지난해 연말에 후쿠오카와 도쿄에서 통역 일을 마치고, 연초에는 오사카에서 가족들과 지냈다. 오사카의 번화가 도톤보리에 가보니 후쿠오카 이상으로 한국어와 중국어가 많이 들렸다. 그 외 해외 여행객도 코로나19 이전처럼 많아 보였다.
오사카 ‘텟치리’ ‘복지리탕’과 발음 비슷
이번에 가본 곳은 복어집 ‘후구쿠지라’다. 오사카 사람들은 복어를 자주 먹는 편이라 일본 전국에서 복어 소비량은 오사카가 1위다. ‘후구쿠지라’는 쉽게 찾기 어려운 골목길에 있었는데 역시 ‘오사카에 사는 사람들 TV’를 보고 온 듯한 한국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우리 가족은 마츠다 부장이 추천한 코스를 주문하고 복어 껍질부터 회·튀김·구이·탕 등 다양한 복어 요리를 즐겼다. 특히 복어 구이는 마늘과 고추가 듬뿍 들어가서 한국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맛이었다.
한·중·일이 공유하고 있는 문화의 하나는 한자다. 장률 감독은 후쿠오카(福岡)라는 지명 한자에서 ‘행복의 언덕’이라는 영감을 얻어 영화 ‘후쿠오카’를 촬영하며 ‘인생 살다 보면 아픈 일, 힘든 일도 많지만, 그래도 행복의 언덕을 향해 조금씩 걸어갑시다’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코로나19에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쳐 살기 어려운 세상이지만, 그래도 이웃나라와의 교류를 소중히 생각하면서 함께 행복의 언덕을 향해 걸어가고 싶다. 장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며 2023년 연초에 그런 희망을 가져본다.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