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원하면 개를, 영감을 원하면 고양이를 키우라
‘냥이 예찬’베르나르 베르베르
‘지구에 출현한 최초의 고양이는 어떤 모습일까?’ ‘스파이로 활동한 고양이가 있었다고?’ 등 그의 기발한 상상력과 집요한 탐구력은 신비스러운 고양이의 세계로 독자를 인도한다. 사랑스러운 고양이의 모습을 담은 138장의 도판 역시 고양이의 매력에 빠지게 한다.
20대의 베르베르에게는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글을 쓰는 전업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번 책을 내면서 “『개미』를 통해 소설가로 데뷔하고, 얼마 전까지 ‘도미노’라는 이름의 암고양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30권이 넘는 책을 펴냈으니 나는 이미 꿈을 이뤘다”고 말했다. 고양이의 무엇이 이토록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중앙SUNDAY가 ‘고양이 집사’ 베르나르 베르베르에게 서면 인터뷰를 청했다. 인터뷰는 ‘고양이 3부작’을 그래픽노블로 옮긴 첫 번째 책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고양이 백과사전』을 오가며 진행됐다.
인쇄술, 인류의 전진 중 가장 가치 있어
Q : 유독 고양이를 사랑하게 된 계기는.
A : “많은 작가들이 고양이를 키운다. 기자로 활동할 때 동료 작가인 파트리크 코뱅을 인터뷰 하러 가보니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는 고양이 곁에서 글을 쓰는 삶 자체가 행복인가 싶을 정도로 행복해 보였다. 헤밍웨이 생가를 방문했을 때도 타자기 앞에 고양이 방석이 놓여 있는 걸 보았다. 이쯤 되니 고양이야말로 좋은 영감의 비밀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3마리의 고양이를 키워 봤는데, 그 자체로 흥미진진한 볼거리다. 인간과는 다른 자기만의 독특한 생각을 갖고 있는 듯 느껴지며, 내게 영감을 준다. 나와 함께 살았던 고양이들은 착하거나 애교가 많은 아이들은 아니었지만, 저마다 신비롭고 똑똑하고 묘한 구석이 있었다. 그런 특징들이 소설 『고양이』를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A : “‘도미노’는 최근까지 함께한 고양이다. 21년 전 동료 작가 스테파니 자니코가 선물해 준 고양이로 신경질적이고 무척 까탈스러운 아이라 소설의 주인공으로 제격이었다. 단순하고 애교 넘치는 성격과 거리가 멀다는 점이 오히려 훌륭했다. 도미노가 상냥한 순둥이였다면 할 이야기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소설 속 인물은 비범하고 복잡해야 재미있고, 도미노는 딱 그런 고양이였다.”
Q : 소설 『고양이』의 원제 ‘내일은 고양이’를 해석하면서 “지금까지 ‘개미의 작가’로 기억됐다면 이제 ‘고양이’가 트레이드마크가 되기를 바라는 유머러스한 표현”이라고 했다. 그토록 고양이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뭔가.
A : “고양이는 인간을 적절히 이용해 가며 행복하게 사는 법을 터득한 동물 같다. 서두르는 법이 없고, 장난치고 노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다. 인간은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이해하고 있는 듯 보인다. 다소 광적이고 예측 불가하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동물이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A : “미투 운동이 일어난 후로 역사가 균형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여성이 한때는 지나치게 지배당하고 억압받았다면, 지금은 설욕전을 펼치는 듯하다. 역사의 흐름이 가져온 필연이고, 우리는 이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모든 것에는 중용의 지점이 존재한다. 성 불평등 문제도 마찬가지. 하나의 불평등이 또 다른 불평등을 생산한다면 폭력이 되풀이 될 뿐이니, 한쪽에 치우침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Q : ‘인류는 세 걸음 전진을 이룩했다가 두 걸음 뒤로 물러난다’고 했다. 당신이 생각한 인류의 전진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뭔가.
A : “인쇄술이다. 책이 있었기에 지식이 보전될 수 있었다. 책이 없던 시대에는 수학자나 천문학자가 아무리 대단한 발견을 하더라도 모두 잊힐 수밖에 없었다. 책은 이 세상의 기억과 같으며, 그 지식에 인류가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이다. 책 없이는 어떤 발명도 유지되고 기억될 수 없다.”
A : “디지털은 훌륭한 도구다. 물론 의존이 생기긴 하지만, 그보다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우리가 디지털을 사용하는 의도다. 최근에 내 최면 수업을 녹화했는데, 관련된 커뮤니케이션을 오직 디지털로만 했다. 디지털은 나라는 개인의 미디어가 되어 줬다. 원래는 불가능했던 일이다. 이전에는 내 생각을 타인에게 전하고 싶을 때, 내 작업에 관심을 가진 기자가 운 좋게 찾아와서 내 말과 의도를 제대로 전달해 주길 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젠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를 직접 정할 수 있게 됐다. 디지털은 역기능보다 순기능이 많지만, 어디까지나 하나의 도구이기 때문에 일정한 사용 규칙을 정해서 남용을 방지해야 한다. 이 제도화 작업은 정치인들의 몫이다.”
Q : ‘쥐들의 창궐은 기후 온난화 때문’이라고 했다. 환경 위기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A : “내가 1991년에 집필한 소설 『개미』를 보면, 열대 기후에 서식하던 개미들이 북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처럼 나는 책을 통해 오래 전부터 기후 문제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물질의 소비를 줄이는 것 외에 별다른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는 게 나의 오랜 고민거리다. 그런데 사람들은 소비 감소를 하나의 선택지로서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광고들은 더 많은 소비를 재촉하고, 정치인들은 과소비가 현대 경제를 지탱한다고 말한다. 이대로라면 언젠가 선택지 자체가 사라지는 날이 올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살 수 있는 지구를 물려주고자 한다면 포장재의 낭비를 멈춰야 한다. 의미 없이 사고 버릴 선물이라면 사지 말아야 한다. 물질 낭비가 심각한 문제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지해야만 한다. 환경 위기를 생각하면 ‘블랙 프라이데이’가 떠오른다. 정말이지 충격적인 행사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어차피 버릴 물건들을 구입하게 하고 낭비와 환경오염을 조장하는 행사가 바로 블랙 프라이데이다. 소비가 마치 전 지구적 축제인 양 격려하는 비슷한 성격의 다른 행사들도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인들이 용기를 내어 사람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에게 깨끗한 환경을 물려주기 위해 불필요한 물건을 구매하지 않도록 납득시켜야 한다.”
A : “이 이론을 확인하고 싶다면 먼저 고양이 집사가 되어야 한다. 추천한다!”
Q :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고양이 백과사전』을 보면 왠지 개보다 고양이가 한 수 위인 것 같아 반려견주라면 속상할 것 같다.
A : “개는 무조건적인 사랑, 고양이는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신비한 영감을 원한다면 고양이를, 사랑을 원한다면 개를 키우라고 말하고 싶다. 개만큼 극진한 사랑을 나눠 줄 수 있는 고양이는 드물다. 나도 도미노를 고양이별로 보낸 뒤에는 개를 한 마리 키우기 시작했다. 덕분에 무척 행복하지만, 아파트에서 키우기는 쉽지 않더라.”
Q : 오전에는 글을 쓰고, 오후에 사람들을 만나는 ‘하루 루틴’으로 유명하다.
A : “글쓰기는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이다. 꾸준히 그리고 규칙적으로 써야만 써진다. 그렇게 해야 쓸 수 있으며, 멈추지 않고 계속 쓸 수 있다. 작가라는 직업의 핵심이 바로 규칙성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라면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글을 잘 쓰는 요령을 절로 깨닫게 된다. 그러려면 반드시 규칙적으로 써야 한다. 이건 평범한 이들의 일상에도 필요한 규칙이다. 이상적인 하루를 산다는 것은 예술 작품 한 편을 만드는 일과 같다. 내 하루가 이상적이려면 어때야 할지 고민해 보고, 이상적인 날들을 반복할 수 있게 해주는 나만의 질리지 않는 공식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나의 글쓰기에 최적화된 공식을 찾아냈듯, 각자 자신에게 맞는 공식을 찾아야 한다. 벽돌을 하루에 하나씩 쌓아서 집 한 채를 만들어 올리는 일과 비슷하다.”
영화만 보고 책 안 보면 창의성 속박
Q : 고양이의 눈으로 볼 때 인간들의 세상은 참으로 지겹다. 그럼에도 우리 인간이 또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뭔가?
A : “돌이켜보면 과거의 세상은 더 지겨웠다. 한국은 고통스러운 역사를 겪은 나라다. 이전 세대의 고통과 용맹이 없었다면 지금의 어린 세대가 누리는 삶도 없었을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을 사는 한국인들이 20세기를 살던 한국인들보다 더 나은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험이 없지 않지만, 우리 조상들보다 객관적으로 나은 삶이다. 프랑스인이라고 다르지 않다.”
Q : 영화광이라고 들었다. 바쁜 현대인에게 ‘영화’와 ‘문학’은 개와 고양이 중 한 쪽을 선택하는 문제와 같다.
A : “책은 영화와 달리 연출의 시각화를 독자에게 맡기기 때문에 그만큼 더 강렬한 경험을 선사한다고 본다. 영화는 즐기는 데 들어가는 노력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책보다 훨씬 대중적이라는 게 장점이다. 하지만 선택하라면 책이 우선순위인 것 같다. 책으로 충분한 교양을 쌓고 나면 영화에서 훨씬 많은 것이 보인다. 영화만 보고 책은 보지 않는다면 창의성이 속박당한다. 어릴 때 책을 읽어야 창의성이 풍부해진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
「 프랑스의 베스트셀러 소설가.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과학잡지에 개미에 관한 글을 쓰다가 1991년 데뷔작 『개미』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의 작품은 35개 언어로 번역되어 총 3000만 부 이상이 판매됐는데, 한국에서만 절반 이상 팔렸을 정도로 유독 한국인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2016년 교보문고의 ‘10년간 국내외 작가별 소설 누적 판매량 집계’에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개미』 3부작과 『타나토노트』 3부작 외에도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신』 『나무』 『파피용』등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썼다.
」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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