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패권 경쟁은 국가대항전, 한국 이대론 안 된다
반도체 전문가 양향자 의원
Q : 올해 CES는 어땠나.
A : “매년 참관하는데, 과거 어느 때보다 메타버스와 웹3.0 등 혁신 기술을 구현한 제품들이 실용화됐다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 만큼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제품이 늘어날 것이고,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이 커진 셈이다. 동시에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가 더욱 견고해졌다는 걸 느꼈다. 중국 기업들의 규모는 물론 참관인도 굉장히 줄어든 게 체감됐다. 현장에서 만난 업체들도 한 목소리로 고민을 전했다.”
Q : 어떤 고민인가.
A : “최근 반도체 업계 판도는 기업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난제가 산적한 상태다. 국가 패권이 걸린 산업이다 보니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런데 한국 정치권에선 최근 수년간 미국 정치권을 향한 소통 창구가 굉장히 좁아졌다. 한미 의원간 외교라인도 뒷걸음질 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신냉전이라고 불릴 만큼 미·중 갈등이 깊어지고, 반도체 패권을 차지하려는 주요국 정부 정책이 쏟아지는 상황이라 워싱턴과 접점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A : “미국이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반도체 기업에 손을 내미는 것은 미래 패권의 핵심 품목인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다. 더 구체적으론 생산 기지를 미국 안에 두고 싶어 한다. 각종 인센티브를 주며 미국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러나 공짜 점심은 없다. 미국 투자 규모가 커질수록 한국 기업의 반도체 제조 경쟁력도 함께 넘어갈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은 어느 순간 토사구팽 당하는 점을 가장 두려워 한다. 미국에 투자하더라도 우리가 현지 생산기지를 주도하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정부 차원에서는 물론 의회에서도 계속 협상할 필요가 있다. 한 목소리를 내야하는 행정부와는 달리 미 의회에서는 여야, 지역구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Q : 한국·미국·일본·대만의 ‘칩4 동맹’ 안에서도 경쟁이 치열하다.
A : “반도체 산업 육성을 일종의 국가 대항전처럼 여기며, 일본·대만 등 경쟁국들은 경쟁적으로 혜택을 뿌리고 있다. 대만에선 연구개발비의 25%를 세액공제하는 방안을 마련해 즉시 적용했다.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 속에 지난해 구마모토에 TSMC의 공장을 유치한 일본은 최근 소니와 도요타, 키옥시아 등 대기업 8곳이 힘을 합쳐 반도체 기업 라피두스를 설립하는 등 숨가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도 이대론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공감을 얻었다. 경쟁국들에 조금 뒤처진 감이 있지만, 나아질 것이다.”
Q : 한국의 반도체 지원은 여전히 더디다.
A : “윤석열 대통령의 질책으로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한도가 상향(최대 25%) 된 개편안을 마련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대기업은 15%로 묶었다. 대기업이라고 차등 적용하면 부작용이 만만찮다. 전 세계가 반도체 공장을 자국 영토 안에 확보하려는 경쟁을 벌이는 상황인데 오히려 투자를 줄이라고 하는 셈이다. 반도체 산업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대표적인 분야다. 막대한 설비투자 없이는 시장 진입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해외에선 대기업과 여기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을 연합체로 여기기 때문에 이런 구분이 드물다. 한배를 탔는데 덩치가 큰 선원을 차별하는 게 항해에 도움이 될 리가 없다.”
Q : 대기업 특혜란 지적이 나올 수 있는데.
A : “또다시 대기업 특혜 프레임으로 갈라치기에 나서는 건 나라의 미래를 파묻는 매국(埋國) 행위다. 오죽하면 중소기업 관계자들이 대기업의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율을 높이는 게 중소기업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하겠나. 지난해 1월 통과됐던 반도체 특별법(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법) 원안은 산업계와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모두 담아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반도체 산업 지원 경쟁에 뒤진 상황에서 절박하게 준비한 게 반도체산업 지원 특별법(K-칩스법)이다. 이조차 국회에서 통과가 안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쟁국과 비교할 때 여전히 부족한 부분은 앞으로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 예컨대 반도체 특화단지 인허가 신속처리기간을 준수하도록 강행 규정을 추가하는 방안이나 반도체 특화단지 설치 지역에 특별조정교부금을 우선 교부하는 방안 등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황건강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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