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286] 환갑이면 뭘 입어도 예쁠 때야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책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에는 서류상 나이를 고쳐주지 않는다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건 69세 네덜란드인이 등장한다. 자신이 느끼는 나이는 49세인데 법적 나이 때문에 차별을 받는다는 이유였다. 올해부터 한국인의 법적, 사회적 나이는 ‘만 나이’로 통일된다. 사람들이 대체로 이 변화에 긍정적인 건 젊음에 대한 욕망 때문이다.
개인 차가 있지만 나이가 들면 체력도 기억력도 떨어진다. 하지만 노인의 기억이 반짝일 때가 있다. 바로 과거를 이야기할 때다. 72년간 하버드 입학생들의 생애를 추적한 ‘그랜트 연구’에 관한 글을 읽다가 “노인들은 젊은 사람들이 미래를 대하는 것처럼 과거를 대한다”는 문장을 발견했다. 미래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젊은이처럼 노인은 과거의 불가피성을 밝혀내려 애쓰며 새롭게 만들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많은 심리학자는 과거를 곱씹는 ‘반추’를 경계하라고 말한다. 제인 오스틴은 자신에게 기쁨이 될 때만 과거를 생각하라고 충고한다. ‘회고적’이 된다는 건 멈춰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인의 시간에 이르면 과거는 미래처럼 역동적인 그 무엇이 되기도 한다. 특히 후회 없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경우 과거의 시행착오와 통찰을 보존해 젊은이의 성장에 기여하고 싶다는 미래적 욕구를 느낀다. 50대에 급격히 낮아졌던 행복도가 70대에 높아지는 것도 이런 맥락 안에 있다.
일본에는 적추(赤秋)라는 말이 있다. 붉은 가을이라는 말로, 푸른 봄을 뜻하는 청춘과 비교해 노년의 청춘을 뜻한다. 꽃이 아름다운 건 화려함 때문이 아니라 일찍 지기 때문이라는 지혜는 적추의 시절에 찾아온다. 황인숙의 ‘송년회’는 이때, 곁에 두고 보면 좋을 시다.
‘칠순 여인네가 환갑내기 여인네한테 말했다지/”환갑이면 뭘 입어도 예쁠 때야!”/나는 왜 항상/ 늙은 기분으로 살았을까/마흔에도 그랬고 서른에도 그랬다/그게 내가 살아본/가장 많은 나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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