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파리 왕자’ 음바페에 취해 이 우아한 술을 마셨다
카타르 월드컵 때의 일이다. 월드컵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월드컵을 안 본다고 말했다. 도무지 흥미를 가질 수 없다고. 그도 그럴 것이 한심할 정도로 운동 신경이 없는 데다가 경기의 규칙도 돌아서면 리셋이 되는 사람이 나인지라 운동 경기를 보려고 해도 재미를 붙일 수가 없었다. 그렇다. 재미. 재미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겠다. 딱 봐서 이해가 안 되는 장르에 재미를 붙이기는 상당히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호날두와 메시의 플레이 스타일을 비교하고, 손흥민이 어째서 그렇게나 위대한 선수인지를 역설하는 사람들의 말에 관심이 가지 않았다. 이해도 되지 않고, 그렇기에 점점 더 멀어지는 효과… 상대 팀의 골대에 발이나 머리를 이용해 골을 넣는 게 축구라고, 이해하는 게 뭐 어렵냐며 질타할 분들도 계시겠지만 나는 축구가 어렵다. 어떻게 저게 오프사이드고, 저렇게 온몸을 잡아끌거나 다리를 찢듯이 태클을 하는데 반칙이 아닌지 알 수가 없다.
이런 내가 아르헨티나와 프랑스가 붙은 결승전을 보고 달라졌다. 음바페 때문이다. 폭발할 것 같은 속도로 팍 치고 달려나가는 것도 놀라웠지만 갑자기 속도를 늦춰서 따라오던 수비수의 스텝을 꼬이게 한 후 다시 가속도를 폭발시키는 걸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드리블을 하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더니 다리를 컴퍼스처럼 360도 회전시키며 공을 사수하는 걸 보고서도.
그는 왕자였다. 탄력이라는 나라와 리듬이라는 나라의 왕자. 신체를 구부렸다가 뻗으면서 공을 조율하는 음바페의 몸짓을 보면서 나는 좀 놀랐다. 축구 선수의 몸짓이 저렇게 우아할 수 있나 싶어서. 또 저렇게 우아할 것까지 있나 싶어서. 우아함이란 사람들이 축구 경기에서 원하는 덕목이 아닐 텐데 말이다. 축구는 리듬체조가 아니지 않나? 축구라는 스포츠의 목적은 누구보다 빠르게 질주해서 골대에 공을 넣는 것일진대, 그는 공을 넣는 와중에 그런 기예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싱커페이션이란 저런 것이구나. 음바페를 보다가 생각했다. 대단한 리듬감으로 휘몰아치는데 어느새 센 박이 여린 박이 되고 여린 박이 센 박이 되고, 이런 게 자유자재로 일어나는 걸 보면서 나도 모르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재즈 클럽에 온 것도 아니면서. 흥이 그다지 있는 편이 아닌 자를 이렇게 만들다니 저분의 리듬이란! 왜 이렇게 신이 나는 걸까?
아, 그래. 음을 정확히 내는 것도 쉽지 않지만 능숙하기만 한 연주는 매력이 없지. 그런 건 평범하고 지루하지. 그의 질주와 돌파에는 지루한 데가 없었다. 막힐 만하면 예상할 수 없는 동작과 예상 밖의 리듬감으로 방금 전까지만 해도 축구에 관심이 없던 자를 텔레비전 안으로 끌어당겼다. 음바페를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내가 좋아하는 예술과 내가 좋아하는 플레이에 대해 생각했다. 어딘가 어긋나면서 뒤틀리는, 그 불협화음이 내는 이상한 에너지와 파열음. 그로부터의 열락.
그래서 생 제르맹(St-Germain)을 마셨다. 음바페는 파리 생 제르맹(PSG) 소속이고, 생 제르맹은 프랑스에서 만든 술이라서. 메시도 네이마르도 생 제르맹 소속이지만 나는 음바페를 생각하면서 생 제르맹을 꺼냈다. 몇 년 전 칵테일바에 갔다가 알게 된 술이었다. 벨에포크 시절의 램프처럼도 보이는 생 제르맹은 한눈에 들어왔다. 우아한 곡선이었다. 직선도 있었지만 절묘하게 이어지는 곡선의 완곡이 이 술에 끌리게 만들고 있었다. 삼분의 일 남은 생 제르맹을 꺼내니 그때의 흥분이 되살아났다.
“저건 뭐예요?”라고 나는 물었을 것이다. 생제르맹이라는 엘더플라워 리큐르라고 바텐더는 말했다. 저걸 타서 한잔 만들어달라고 했다. 엘더플라워는 외국 소설이나 요리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알랭 뒤카스가 낸 요리책에서 가장 처음 나오는 레시피가 엘더플라워 술이기도 하고. 이 술은 생각보다 역사가 짧다. 2007년에 만들어졌는데, 나오자마자 바와 클럽에서 새로운 술들을 찾는 분들께 화제가 되었다고 바텐더는 말했다. 생 제르맹의 라벨에는 자전거가 있는데 괜한 게 아니라고도. 프랑스 알프스 지방의 산에서 늦은 봄에 꽃을 수확해서 특별히 개조된 자전거로 운반하는 게 생 제르맹을 만들기 위한 첫 여정이라면서.
나는 지금 생 제르맹을 탄 술을 마시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생 제르맹에 탄산수를 타기도 하고 샴페인을 타기도 하는데 오늘은 진을 탔다. 순서대로 말하자면 진에 생 제르맹을 탔다고 해도 좋겠다. 이렇게 했습니다. 얼음을 가득 채운 후 진을 20cc, 생 제르맹을 30cc, 그 위에 탄산수를 콸콸. 레몬도 얇게 슬라이스해 넣어주고. 왜 이리 조화롭지? 너무나 만족스러워서 나는 이 자가 제조한 칵테일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음 제르맹. 음바페 때문에 처박혀 있던 생 제르맹을 꺼내 이렇게 마시고 있기에. 음 제르맹이 간지러우면 진 제르맹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음 제르맹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보니 한때의 야망이 떠올랐다. 새로운 칵테일을 만들고 이름을 지어주겠다고 생각했었다. 카이피리냐, 다이키리, 민트 쥴렙, 모스코 뮬 같은 귀여운 이름을 지어준 사람들처럼. 친구들을 초대해 내가 지은 이름들이 적힌 메뉴판을 내밀어 주문을 받고, 술 카트를 끌고 와 칵테일을 제조하겠다는 야무진 꿈이 있었다. 꿈과 현실은 달라서 칵테일은 거의 만들지 않고 있고, 술 카트도 사지 못했다. 친구를 초대해 일일 바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도 지금에야 떠올랐다. 음바페 덕에 음 제르맹을 만들어 마시다가 이 모든 게 기억났다.
공을 넣거나, 넣지 않거나. 나는 이게 축구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음바페를 보면서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필드 위를 뛰어다니면서 발생하는 근육의 폭발과 땀의 누수, 근손실, 고함소리, 그런 땀냄새 나는 힘의 발산이 축구의 본질이라고. 또 즐거움도. 음바페처럼 즐길 줄 아는 자가 휘저어서 공기의 흐름이 바뀌는 순간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축구를 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각자의 필드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들과 함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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