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당신이 가진 능력은 무엇입니까?

2023. 1. 1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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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영웅이 아닌 보통의 우리
중요한 건 꿈을 포기 않는 마음

찰스 유, <3등급 슈퍼 영웅>(‘3등급 슈퍼 영웅’에 수록, 최용준 옮김, 시공사)

아는 분이 새해에 초등학생 손녀가 그린 신년 카드를 보내주었다. 복주머니를 가운데 두고 커다란 토끼 두 마리가 있는 그림인데 한쪽에 이런 소망이 쓰여 있었다. 하늘을 날게 해주세요. 그 문장을 보다가 웃고 말았다. 하늘을 나는 것이 꿈이었던 적이 있긴 있었다. 지금은 더 현실적인 꿈을 가진 사람이 되었지만.
조경란 소설가
대만계 미국 작가 찰스 유가 쓴 SF 단편소설 ‘3등급 슈퍼 영웅’의 세계에서는 평범한 사람들과 슈퍼 영웅들이 존재하며 착한 카드, 나쁜 카드를 선택해 살 수 있다. 주인공인 마흔 살의 네이선은 여느 슈퍼 히어로들처럼 쫄쫄이 옷을 입고 한쪽 팔을 앞으로 쭉 뻗으며 하늘을 날고 싶어한다. 착한 카드를 지니고 사는 그는 일명 ‘습기맨’으로서 공기 중의 습기를 빨아들여 물줄기를 쏘거나 안개로 뿜어낼 수 있는 약간의 능력은 있지만 다른 친구들, 전자기파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황금 소년’이나 옆 사람들처럼 탁월하지는 않으며 매해 슈퍼 영웅이 되는 자격시험에서 낙방을 거듭하는 중이다. 네이선이 원하는 건 엄청난 능력이 아니라 정규직의 일감, 먹고살 만큼의 임금이고 그러려면 최소한 3등급 슈퍼 영웅 시험에는 붙어야 한다. 노력했는데 올해도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없다.

네이선은 싸구려 타코로 저녁을 해결하고 아파트 위층으로 올라가 여든 살이 넘은 헨리를 찾아가 시간을 보낸다. 헨리와 친구가 된 건 아들이라는 남자가 몇 달 동안 헨리를 때리는 학대 장면을 목격한 후부터였다. 네이선 생각에 “이 대도시에서 낙오자 슈퍼 영웅과 외로운 늙은이들은, 서로가 아니면 위아래 층에 살며 서로 보살펴줄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까.” 헨리는 다음번이 있다고, 내년에 합격하면 된다고 네이선을 위로하지만 그 앞에는 당장 또 다른 곤란함이 생겼다. 슈퍼 영웅이 되지 못한 채 지금의 일상만이라도 유지하려면 임시 면허 시험을 다시 치러야 한다는 것. 이 세계도 먹고사는 일은 간단치 않은 모양이다.

토요일 동네 고등학교로 시험을 보러 가자, 일상을 유지하고 싶은 수십 명의 응시자가 모여 있고 감독관은 규칙을 설명한다. 일단 아래 해당 사항들에 표시해야 한다. 질문은 “당신이 가진 능력은 무엇입니까?” 치타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지, 상대의 거짓말을 알아차릴 수 있는지, 투명 인간이 될 수 있는지, 미래를 볼 수 있는지 등등. 슈퍼 영웅도 아닌데 그럴 리가. 네이선은 표시할 게 하나도 없다. 마음과 몸은 더욱 위축되고 네이선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등급인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게 된다. 다른 이들이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사는 건 그들이 원래 더 잘났기 때문이고, 그들은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고, 힘도 세고 더 빠르고 똑똑하며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낫다고. 이런 비교는 결국 좌절감이나 자기 비하로 이어지고 만다. “내가 더 잘하는 게 뭐가 있겠어?”

헨리가 뇌졸중으로 쓰려져 병상을 지키다가 네이선은 유탄에 발을 맞아 피를 흘리는 아기를 보며 대체 영웅들은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회의를 느낀다. 이 단편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아마도 네이선이 헨리를 등에 태우고 하늘을 나는 장면일지 모른다. 네이선은 친구를 위해 어떤 일인가를 했고 그것은 스스로 자신이 평범한 영혼을 가진 착한 사람이라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일지도.

가끔 이 단편소설이 생각날 때가 있다. 나의 못 미치는 능력에 실망하고 좌절해 내가 ‘등급 외’인 걸 분명하게 느낄 때, 나만 제외하고 모두가 슈퍼 영웅들처럼 화려하고 굉장해 보일 때, 그게 너무 비교되어 가슴 아플 때. 그리고 병원에서 헨리와 아기 걱정을 하던 네이선의 머리 위로 떠오르던 이런 말풍선의 문장이 생각날 때. “포기하지 마. 경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자, 다시 질문하자. 슈퍼 영웅으로 태어나지 않은, 나아지길 원하는 보통의 우리가 가진 능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지금 하는 일에 더 성실하며 꿈을 포기하지 않는 강건한 마음. 인생이 경주라면 아직 끝나지 않았고 새해는 이제 막 시작되었으니까.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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