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역사유적탐방] 조선의 다섯 번째 궁궐, 경희궁

2023. 1. 1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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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궁궐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경희궁은 광해군이 창건한 이래 숙종, 영조, 정조 등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왕들과 깊은 인연을 맺은 궁궐이다.

영조는 1760년(영조 36)에 궁궐 이름을 경덕궁에서 경희궁으로 개칭하였는데, 원종(元宗: 인조의 생부)의 시호에 '경덕'이 들어가 있어, 이를 피해 궁궐 이름을 고친 것이다.

그러나 고종 때인 1868년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경희궁은 궁궐로서 기능을 실질적으로 마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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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
새해가 되면 궁궐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은 물론이고 덕수궁을 찾는 경우는 많지만 경희궁은 늘 소외된 듯한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경희궁은 건물의 10분의 1도 복원되지 못해 궁궐의 위상을 잘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경희궁은 광해군이 창건한 이래 숙종, 영조, 정조 등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왕들과 깊은 인연을 맺은 궁궐이다. ‘궁궐지’의 기록에 의하면 창건 때 정전, 동궁, 침전, 별당 등 1500여 칸에 달하는 건물이 있었으며 1620년 완공을 보았다. 그러나 완공의 당사자 광해군은 1623년 인조반정으로 경희궁에 입궁하지 못한 채, 왕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인조 이후 경희궁에 거처한 왕은 현종이다. 현종은 재위 기간을 주로 경희궁에서 보냈는데, 1661년(현종 2) 현종과 명성왕후 사이에서 적장자 숙종이 회상전(會祥殿)에서 태어났다. 경희궁과 특히 인연이 깊은 왕은 숙종이다. 숙종은 1661년 회상전에서 탄생하였고, 재위 46년간 창덕궁과 경희궁을 오갔다. 1720년(숙종 46) 6월 숙종은 융복전(隆福殿)에서 승하하면서 경희궁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숙종의 승하 후 경종은 경희궁의 정문인 숭정문(崇政門)에서 즉위해, 경희궁에서 즉위식을 올린 최초의 왕이 되었다. 영조는 1760년(영조 36)에 궁궐 이름을 경덕궁에서 경희궁으로 개칭하였는데, 원종(元宗: 인조의 생부)의 시호에 ‘경덕’이 들어가 있어, 이를 피해 궁궐 이름을 고친 것이다. 1776년 영조가 경희궁에서 승하하자, 정조 역시 경희궁에서 즉위식을 올렸다. 정조가 세손 시절 암살 위협에 시달렸던 기록을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가 2014년 개봉한 ‘역린’이다. 정조 이후 순조, 헌종, 철종도 경희궁에 일정 기간 머물면서 경희궁을 키워갔다. 그러나 고종 때인 1868년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경희궁은 궁궐로서 기능을 실질적으로 마감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경희궁 자리에 일본인 학교인 경성중학교가 들어섰고, 경성중학교를 계승한 서울고등학교가 서초구로 이전한 후에는 이곳에 서울역사박물관이 건립되었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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