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큰 기쁨, 작은 기쁨
보이지 않는 위험에 위기 맞기도
삶을 견뎌내려면 작은 기쁨 중요
새해엔 작은 기쁨이 넘쳐나기를
“올리브는 생이 그녀가 ‘큰 기쁨’과 ‘작은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큰 기쁨은 결혼이나 아이처럼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일이지만 여기에는 위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가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작은 기쁨도 필요한 것이다. 브래들리스의 친절한 점원이나,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있는 던킨 도너츠의 여종업원처럼. 정말 어려운 게 삶이다.”
잘 손질된 나무들과 햇살이 비스듬히 비치는 뒷마당 잔디.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과 부. 어느 누가 올리브의 삶 속에 이런 어이없는 진실이 숨어 있다고 상상할 수 있을까. 물론 아들이 그녀로 인해 어린 시절 마음의 상처를 입었고 그것이 그런 말을 내뱉는 데 영향을 미쳤다 한들 그녀로서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삼십구 년 전 그와 유사한 말을 남기고 세상을 버린 아버지에게 똑같은 상처를 받은 적이 있는 그녀는 아들에게만은 그런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일념으로 살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녀는 항변한다. 난 아들을 사랑한다고. 늘 사랑해왔다고.
이제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이 어마어마한 진실로 돌변해 일상을 침범해올 때 우리는 어떻게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가. 이 소설이 대단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실로 놀라운 생의 연금술을 선보인다. 그녀에 따르면 인생은 느닷없는 사건들의 연속이다. 다시 한번, 정말 어려운 게 삶이다. 이 어려움을 견디기 위해서 우리는 ‘작은 기쁨’을 필요로 한다. 작은 기쁨이 없다면 우리는 ‘큰 기쁨’ 속에 숨겨진 급격한 ‘해류’에 휘말려 증발해 버릴지도 모른다.
마치 남편과 시어머니의 모든 것을 안다는 듯이 떠벌리는 수잔의 말은 사실일까. 크리스토퍼가 힘든 시간을 겪었다고 말했다고 해서 그가 마냥 불행하기만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이야기는 애인에게 바치는 사랑의 내밀한 언어를 대신하는 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유전적으로 예민한 우울증의 소유자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우리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함부로 이야기하고 판단할 수 없다. “뭐든 다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사람은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니까.”
그런 의미에서 올리브가 며느리의 화사한 브래지어를 훔쳐 핸드백에 구겨 넣고, 자주 신는 로퍼 한 짝을 숨기며, 잘 개어진 스웨터에 매직 칠을 해서 망가뜨리는 소설의 말미는 강렬하고 통쾌하다. 작가는 이 장면 다음에 올리브가 자신에게 작은 기쁨을 선사했다고 덧붙이고 있다.
나는 이 대목이 우리의 올리브가 ‘모든 걸 끝내버리는 생각’을 끝내버리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세간의 평에 조금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갚아주는 올리브의 심술궂은 모습은 삶의 어떤 타격도 흡수하고 튕겨내는 작은 기쁨으로 반짝인다. 이런 작은 기쁨들에 힘입어 우리는 살아왔고 또 살아갈 것이다. 부디 새해엔 생의 해류들에 휘말리지 않는 작은 기쁨들이 넘쳐나는 나날이 되기를 기원한다. 여러분 모두에게.
신수정 명지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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