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목숨 걸고 합니다"…노동자가 직접 고발한 현장
<앵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이제 1년이 다 돼갑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일정 규모가 넘는 사업장에서 노동자 1명 이상이 숨지거나 또는 2명 이상이 다쳤을 경우에,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법입니다.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서 경영진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게 법의 취지입니다.
그렇다면 법이 시행되고 지난 1년 동안, 노동자들은 과연 일터에서 안전해졌을지, 정준호 기자, 제희원 기자가 차례로 살펴봤습니다.
<정준호 기자>
20년 경력 건설노동자 박종국 씨가 직접 촬영한 영상입니다.
노동자 2명이 철근 기둥들 위에 위태롭게 서 거푸집 설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추락을 막아줄 안전고리를 위쪽에 걸어둬야 하지만, 고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높은 건물 위, 노동자들이 걸어 다니는 발판 곳곳이 비어 있습니다.
[빠질 우려가 있죠 이렇게.]
공사가 한창인데도 천장을 지지하는 동바리는 이미 군데군데 해체돼 있습니다.
[시스템 거푸집을 이렇게 많이 미리 다 해체해놨어요.]
지난해 숨진 현장 노동자들을 분석해 보면 224명이 추락사, 기계와 설비에 끼인 노동자가 75명, 심하게 부딪혀 숨진 경우는 48명이었습니다.
안전 설비가 부족했거나, 현장을 같이 살펴봐 줄 동료가 곁에 없었습니다.
[박종국/20년 경력 건설노동자 : 감시 감독은 많이 늘었지만, 현장에 시설을 보강을 한다거나 충분한 공기를 줘서 작업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다 이런 것은 공사비가 들어가잖아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안전관리자들의 역할은 더욱 강화됐습니다.
하지만 형식적 서류 작업에 치중해 정작 현장 안전 점검은 소홀하다는 문제가 지적됩니다.
[이지훈/전국건설기업노조 안전위원장 : 안전관리비로 인건비를 부담하다 보니까 70% 이상이 (안전관리자)인건비로 소진되고 근로자한테 안전으로 돌아가는 비용이 많이 축소된 상태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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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희원 기자>
국내 도급순위 3위인 'DL이앤씨' 공사 현장입니다.
지난해 10월 이곳에서 크레인 연결작업을 하던 50대 노동자가 추락해 숨졌습니다.
여기뿐만 아니라 지난해 전국 DL이앤씨의 공사 현장에서 모두 5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 여전히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여전히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일하다 숨진 노동자, 지난 1년간 542명에 달합니다.
법 시행 이후에도 유사한 후진국형 안전사고는 계속 반복되는데, 책임 소재를 가리는 일은 지지부진합니다.
지난해 9월 배관 수리 작업 중 유증기가 폭발한 화일약품 화성 공장.
다른 작업자들이 폭발 경고를 듣고 대피하는 사이, 홀로 폐수 작업을 하던 고 김신영 씨는 현장을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사고 전 노동부 근로감독에서 대피 계획을 수립하라는 요구가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김익산/화일약품 고 김신영 씨 아버지 : 당신네들 이거 어떻게 책임질 거냐, 뭐라고 말을 못하더라고. 책임져야 하면 사장이 엄연히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구속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아들이 원하는 거예요. 미리 (하늘로) 갔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는 넉 달째 수사 중입니다.
지난해 3월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는 고 이동우 씨가 크레인 안전벨트에 몸이 감겨 숨졌습니다.
남편이 하늘나라로 간 지 10개월, 그사이 태어난 아기는 곧 100일이 됩니다.
아무도 법적 책임을 진 사람은 없습니다.
[권금희/동국제강 고 이동우 씨 아내 : 잘못된 사람을 법 앞에 세우고 거기에 대해 마땅한 벌을 내릴 수 있게 해야 되는 건데. (처벌) 완화한다는 거는 말이 안 되는 거죠. 본인 가족이 당했다고 하면 아무도 그 말 못 할 거예요.]
지난해 11월 말 현재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사건 211건 가운데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11건, 사망사고임에도 아직 판결로 유죄가 인정된 건 1건도 없습니다.
산재 예방이라는 입법 취지가 무색하게 사망사고는 되풀이되고, 책임 소재를 가리는 절차도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유족들은 법이 과연 제대로 작동하고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 김세경, 영상편집 : 이소영, CG : 이준호·서승현)
▷ [단독] 1년도 안 돼 중대재해법 개정?…공소장 분석해보니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7043802 ]
정준호, 제희원 기자junhoj@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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