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업 정보 수집에 신원조사 부활, 거꾸로 가는 국정원
국가정보원이 민간 영역인 경제계를 담당하는 조직을 신설하고, 고위공직자 인사검증을 위한 별도 기구를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을 금지한 국정원법 취지를 훼손하고 국정원 개혁에 역행하는 반역사적인 처사다. 민간인 사찰에 대한 우려를 낳고, 국내 정치 개입으로 변질될 수 있는 시도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국정원은 최근 경제안보국 산하에 50여명 규모의 경제협력단을 만들었다. 해외 기술 유출을 감시하는 경제방첩단과는 별개의 조직으로, 정보담당관(IO)과 비슷한 역할이 부여됐다고 한다. 정부 부처·기관이나 단체·언론 등을 출입하는 정보담당관제는 문재인 정부 때 국내 정보 수집 전담조직 폐지와 함께 없어졌는데 현 정부에서 유사한 조직을 되살린 것이다. 국정원은 또 이달 초 2차장 산하에 신원검증센터도 설치했다. 신원조사 대상은 3급 이상 고위공무원 임용 예정자로, 가족관계와 학력·경력·재산·친교인물, 인품·소행 등을 알아보도록 했다. 대통령 하명을 받은 국정원이 신원조사를 명분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할 길을 터놓은 것이다. 민정수석실을 없앤 윤석열 정부가 공직자 검증을 위해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을 설치할 때는 정부조직법이 아닌 법무부 시행령 개정이라는 꼼수를 썼다. 그러더니 이번 국정원 인사검증도 국정원법이 아닌 보안업무규정 시행규칙 개정을 활용했다.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은 국내 정치 개입으로 연결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은 민간인 사찰과 댓글부대 등을 통한 여론조작 등으로 불법을 저질렀다. 2021년 국정원법 개정으로 국내 정보 수집을 금지한 것은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 자체를 원천 차단하자는 취지였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 국정원의 정보담당관제와 인사검증 부활은 이런 국정원법 개정 취지를 무력화해 역사의 시곗바늘을 과거로 돌리는 것이다. 국정원은 “국정원 업무는 관련 법령에 따라 적법하게 수행하고 있다”고 했다. 민간 정보 수집 등 제기된 의혹을 적극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지금 경제와 안보 모두 위기를 맞고 있다. 국정원은 북한의 위협, 미·중 패권 경쟁, 글로벌 공급망 문제 등 국가적 도전 과제에 대응하도록 그 역할과 기능이 맞춰져야 한다. 윤 대통령이나 국정원 모두 나중에 법적으로 추궁당하지 않으려면 의심받을 일을 애초에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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