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나경원 저출산위 부위원장·기후환경대사직 동시 해임…‘징계성’
윤 대통령 여당 ‘전대 개입’ 논란 커질 전망
윤석열 대통령은 13일 나경원 전 의원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출산위) 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직에서 해임했다. 여당 차기 당대표 유력 주자로 꼽히는 나 전 의원과 대통령실 간의 갈등이 징계성 ‘해임’으로 정리됐다. 당대표 출마를 고심 중인 나 전 의원과 ‘관계 회복’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이 먼저 입장을 정리한 만큼 나 전 의원의 선택만 남은 상태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오늘 나 전 의원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직에서 해임했다”고 밝혔다. 나 전 의원이 김대기 비서실장에게 문자 등으로 사의를 표명한 지 사흘만이다.
나 전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대통령님의 뜻을 존중한다”면서 “어느 자리에 있든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대한민국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나 전 의원은 자녀 수에 따른 대출금 탕감 구상을 밝힌 뒤 대통령실과 갈등을 빚다 지난 10일 사의를 표명했다. 사의 표명 뒤에도 해촉 결정이 공식화하지 않자 이날 서면으로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대통령실은 사표 수리나 해촉 대신 징계성 표현인 해임을 발표했다. 나 전 의원이 사의를 밝히지 않은 기후환경대사직에서도 동시에 해임을 결정했다. 나 전 의원이 ‘정책 혼선’을 초래한데 대한 징계성으로 직을 박탈한다는 뜻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당초 나 전 의원 거취에 대한 윤 대통령의 결정이 아랍에미리트연합(UAE)·스위스 순방 뒤로 미뤄질 거란 관측이 많았다. 전날 밤까지도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순방 전 결정이 나오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예상과 달리 출국을 하루 앞둔 이날 결정이 나온 데는 순방 전 논란을 정리하려는 뜻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나 전 의원 거취 정리는 어차피 시간 문제였다”면서 “이번 순방이 경제외교 차원에서 중요도가 높은데 순방 뒤 바로 설 연휴라 논란이 3주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날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나 전 의원이 이날 오전 10시쯤 올린 페이스북 글이 기류 변화의 원인이 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나 전 의원은 이 글에서 “결코 당신들이 ‘진정으로’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의 당대표 불출마를 종용하고 불출마설을 제기하는 당내 강성 친윤계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대통령실은 정치적 해석에 선을 긋고 있지만, 나 전 의원이 오는 3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유력한 당 대표 주자로 꼽히는 만큼 윤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전대 개입’ 논란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두 개 직책에서 동시에 해임하면서 윤 대통령이 여권과 지지자들에게 ‘나 전 의원은 친윤 후보가 아니다’는 신호를 준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전 의원은 지난 5일 간담회에서 저출산 대책 일환으로 다자녀 출산시 주택대출 탕감·면제를 골자로 한 이른바 ‘헝가리식 정책 구상’을 밝힌 뒤 대통령실과 갈등을 빚어왔다. 대통령실은 다음날 곧바로 윤석열 정부 정책 기조와 차이가 있다고 공개 비판했고, 이를 시작으로 친윤계 의원의 공세가 이어졌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에는 나 전 의원의 정책 발표를 “행정부 일원임을 망각한 처사”, “공직자로서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당시에도 “대통령실은 일련의 처사에 대단히 실망스러워하고 있다”고 해촉을 시사했다.
윤 대통령은 나 전 의원 빈자리를 즉각 다른 인물로 채웠다. 윤 대통령은 이날 신임 저출산위 부위원장에는 저출산위 상임위원을 맡고 있는 김영미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내정했다. 대통령실은 “저출산위 상임위원으로서의 경험과 사회복지분야 전문성을 바탕으로 저출산 문제 해결과 100세 시대 일자리, 건강, 돌봄 지원 등 윤석열 정부의 핵심국정과제를 충실히 뒷받침할 적임자로 판단한다”고 내정 사유를 밝혔다.
기후환경대사직에는 조홍식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내정했다. 대통령실은 “내정자는 법학자이자 변호사로서 환경법·환경규제법 등을 연구해 온 환경법학 분야 전문가”라며 “기후변화·환경 이슈 대응을 위한 국제사회와의 소통 강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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