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브릿지> 휴먼 다큐멘터리의 힘…다큐 '어른 김장하'
[EBS 뉴스]
서현아 앵커
새해부터 SNS를 중심으로 조용히 그러나 뜨겁게 회자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반 대중들에겐 좀 낯설지만 경남 진주에선 이미 유명 인사라고 하는데요.
인간 '김장하'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만나봅니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에 조희정 교수 자리했습니다.
어서 오세요.
조희정 교수 /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콘텐츠스쿨
안녕하세요.
서현아 앵커
오늘 이야기해 볼 <어른 김장하>, 보신 분들 사이에서는 굉장히 큰 호평이 나오고 있더라고요.
어떤 내용입니까?
조희정 교수 /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콘텐츠스쿨
이 <어른 김장하>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MBC 경남에서 방송을 한 TV 다큐멘터리입니다.
작년 12월 31일 그리고 새해 1월 1일 이렇게 2부작으로 공개가 됐는데요.
곧 OTT 서비스 전환할 거다, 이렇게 예고는 되어 있는데 지금도 유튜브에서는 시청을 하실 수가 있습니다.
처음에 다큐가 시작되는 부분이 좀 흥미로워요.
다양한 사람들의 증언이 나오고 걸음걸이가 상당히 독특하신 한 노인의 뒷모습을 따라가면서 시작이 됩니다.
언젠가 거리에서 본 것 같은 우리 이웃들, 아버지 모습 혹은 할아버지 같은 그런 모습인데요.
굉장히 평범해 보여요.
근데 사람들은 이 글을 일컬어서 훌륭하신 분 혹은 채우고 비우기 위해서 돈을 버는 사람 그리고 한약업이 잘 된 것은 양심적으로 좋은 약을 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약방을 운영한다는 정보도 나오기도 하고요.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그분에 대한 어떤 빙산의 일각이다, 이렇게 그분에 대한 몇 가지 단서를 말을 합니다.
처음 굉장히 평범한 그런 시민들의 증언에 이어서 조금 낯익은 얼굴도 등장을 하는데요.
헌법재판소의 문형배 재판관입니다.
2019년도에 김장환 선생님의 깜짝 생일 잔치에서 김장환 선생과의 그런 일화를 소개를 하는데요.
선생님께 고맙다고 인사를 갔더니 "나한테 고마워하지 말고 고마워할 부분이 있다면 이것을 사회에 다가 다시 환원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고 굉장히 울먹이면서 말을 하는 그런 장면도 등장을 하게 됩니다.
서현아 앵커
문형배 헌법재판관은 2019년 4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김장하 선생의 이름을 거론한 적이 있다고요?
조희정 교수 /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콘텐츠스쿨
네, 저도 찾아보니까 있더라고요.
문형배 헌법재판관은 당시에 재산 형성 과정의 흠결을 찾을 수 없다라는 그런 할 말이 있냐라는 표창원 당시 위원의 질문에 대해서 김장하 선생님의 이름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저는 사실 김장하 선생이 안 계셨다면 판사가 못 됐을 거예요. 그래서 제가 살아가는 것은 그분 말씀을 실천하는 것.
그것을 유일한 잣대로 살아왔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렇게 다큐는 굉장히 폭넓게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그런 김장하 선생의 삶으로 시청자들을 서서히 이렇게 초대를 합니다.
서현아 앵커
많은 분들에게 울림을 주었지만 또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는 않았던 분이었습니다.
이분을 꼭 알리고 싶었던 누군가의 절실함에서 어른 김장아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김장환 선생님을 재조명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조희정 교수 /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콘텐츠스쿨
네, 다큐멘터리는 사실 말씀하신 것처럼 기록자의 시선이 상당히 중요한데요.
또 다른 어떤 초로의 남성입니다.
그의 입에서는 마산의 6.10 민주항쟁 아니면 경남 정신대 문제 대책을 위한 시민연대 아니면 마산 민간인 학살, 부마민주항쟁 등 이렇게 굵직한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사건들이 호명이 됩니다.
누구시냐면요. 30여 년을 경남도민일보라는 지역 신문에서 몸담았다가 은퇴하신 김주환 기자입니다.
1991년도에 이분이 처음으로 김장하 선생이 명문사학으로 본인이 스스로 키웠던 명신고등학교를 국가에 헌납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고 이 선생님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고 해요.
단순히 좋은 일하는 돈 많은 사람, 이렇게 생각을 했다가 이른바 부자라고 생각되는 그가 평생 차도 없이 걸어다니고 버는 족족 이렇게 남을 위해서 퍼주면서, 절대 그렇다고 그래서 인터뷰는 하지 않고 사진 찍히는 것도 싫어하시고 또 이렇게 미스터리한 어떤 한약방의 주인이다. 이런 여러 가지 요소들이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의 진짜 삶을 탐구하기 시작하는데요.
이 다큐멘터리의 또 다른 시선의 주인공은 경남 MBC의 김현지 PD라는 분이, 김현지 PD는 2019년도 초에 이 다큐를 처음
기획을 했다고 해요.
그러면서 김주환 기자를 다큐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이런 키맨으로 꼽았다고 합니다.
사실 이 두 기록자 모두 수십 년 전 혹은 수년 전부터 김장환 선생님한테 계속 삶을 주목하면서 인터뷰 좀 해 주세요. 이런 식으로 섭외했지만 섭외를 거절당했다고 해요.
그래서 이번 다큐 촬영에 대해서도 김장환 선생은 딱히 화는 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허락도 안 했다, 이런 대목도 그 다큐에서 나옵니다.
김현지 PD가 그저 계속해서 찾아뵈었다라고 이야기를 해요.
어떻게 보면 진짜를 알아본 두 기록자의 근성이 좀 돋보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서현아 앵커
삼고초려 정도가 아니라 길게는 10년, 수십 년 전부터 섭외하려고 했는데 거절을 당했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그만큼 그렇다면 김장환 선생의 삶이 의미가 있었다는 얘기인데 어떤 분이었습니까?
조희정 교수 /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콘텐츠스쿨
네, 저도 굉장히 감명을 받았는데요.
김장환 선생님이 1944년생이시더라고요.
19세에 한약사 시험을 통과해서 진주와 사천 등지에서 한 60년 동안 남성당이라는 한약방이라는 개원을 해서 운영을 하셨습니다.
스물 서너살 무렵부터 그분이 이미 20대부터 주변에 이런 어려운 학생들을 돕기 시작해서요.
공식적으로 기록에 남은 학생들만 한 1천여 명이 넘는다고 해요.
그런데 보통 장학금은 일회성으로 주거나 특정 기간을 이렇게 정해 두기 마련인데 선생님은 이 학생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 기숙사비, 생활비까지도 다 지원을 했다고 합니다.
김주환 기자에 따르면 1천 명이 넘는 장학생에게 지급된 그런 장학금만 30-40억 원 정도가 될 거고 또 장학금만이 아니라 이 학생이나 청년이 자택에서 숙식을 한 그런 경우도 있었더라고요.
그래서 김장하 선생이 사회에 환원한 어떤 재산 규모도 굉장히 큰데요.
김주환 기자가 돈으로 환산해 보니 선생이 사재로 설립해서 국가에 헌납한 어떤 고등학교라든지 이런 것들이 당시 시세로 한 110억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서현아 앵커
굉장하네요.
조희정 교수 /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콘텐츠스쿨
그리고 남명학 연구 후원 그리고 남명학관 건립에 한 13억, 이게 남성문화재단을 해산하면서 경상국립대에 또 기부를 하셨다고 그래요.
그래서 그때 기부한 자녀 재산이 34억여 원, 이렇게 굵직한 것만 계산을 해도 200억 원이 넘는 그런 규모인데 계산에 잡히지 않고 드러난 것만 하면 더 훨씬 더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현아 앵커
요즘 같은 세상에 정말 그런 분이 계실까도 싶은데요.
우리가 흔히 보는 어떤 소설 속의 주인공 같기도 하네요.
조희정 교수 /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콘텐츠스쿨
맞습니다.
어떻게 보면은 굉장히 히어로물을 보는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요.
다큐를 보다 보면 조금 우스갯소리로 "선생님은 왜 또 거기서 나오세요"라는 그런 식의 어떤 우스갯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문화예술, 시민사회 운동, 환경운동, 노동·농민운동 그리고 여성운동에 이르기까지 동해 번쩍 서해번쩍 정말 수많은 단체와 사람들을 지원하셨더라고요.
그래서 실제로 호주제 철폐가 됐었던 그런 어떤 운동에도 참여를 하셨고 그리고 이분이 직접 형평운동 기념사업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우리 사회 안에서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차별의 문제 이런 부분에도 앞장서서 목소리를 내시기도 했습니다.
일생을 정말 이렇게 깨알같이 이타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면서 보내신 건데요.
다큐를 보다 보면 여러 가지 유혹에 인간이 굉장히 나약하잖아요.
흔들리기 마련인데 이 80이라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긴 생애를 저렇게도 사실 수 있겠구나, 저렇게 하신다면 정말 많은 일을 우리가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아가서 내 삶은 어떤가 이런 부분들을 반출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서현아 앵커
이쯤 되면 긴 시간 동안 이분의 삶을 따라온 그 기록자들의 노력에 더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데 이 OTT시대, 지상파 TV 다큐멘터리 어떤 새로운 역할을 제시한 것 같기도 합니다.
조희정 교수 /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콘텐츠스쿨
맞습니다.
지금까지 사실 선생님의 이런 삶이 수천 명의 삶에 어떤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면 사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수천 명 수만 명이 영향을 받으실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십수년 전에 '울지마 톤즈'라는 이태석 신부님의 KBS 다큐멘터리 방영을 시작으로 해서 일파만파 우리 사회의 굉장히 선한 영향력이 많이 이렇게 펼쳐졌잖아요.
가장 확실한 영향은 또 이 다큐의 기록자였던 제작진들이 회고하는 데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김주환 기자는 이런 말씀을 하더라고요.
"나쁜 사람을 찾아내서 고발하는 게 보통 기자의 역할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이번 취재를 통해서 기자로서 정말 가지게 되는 그런 효능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봤다"라고 회고를 하고요.
또 김현지 PD 같은 경우에는 "이 사람이 돈을 얼마나 썼냐, 얼마나 다양한 분야를 지원했냐, 이런 부분보다는 삶의 태도가 어떠했냐, 이런 부분들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 연출자로서의 목표였다"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서현아 앵커
네,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 가운데 이렇게 인물 다큐가 선전한다는 거는 이 삶의 진정성이 전하는 어떤 또 다른 재미와 울림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조희정 교수 /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콘텐츠스쿨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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