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넘긴 尹대통령, 나경원 저출산위·기후대사직 둘다 '해임'
[곽재훈 기자(nowhere@pressian.com)]
3.8 국민의힘 전당대회 정국의 핵이었던 나경원 전 의원의 공직 거취 문제가 일단락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나 전 의원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직에서 모두 해임하는 인사 결정을 함에 따라서다. 대통령실의 기류가 결코 나 전 의원에게 호의적인 것은 아니지만, 나 전 의원으로서는 전당대회 출마의 현실적 장애 요인은 일단 제거됐다. 그러나 정권 초반에 윤 대통령과 친윤계를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출마를 감행할 것인지 정치적 선택에 대한 판단이 남게 됐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13일 오후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오늘 나 전 의원을 저출산고령화사회 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 직에서 해임했다"며 "신임 저출산위원회 부위원장에는 김영미 동 위원회 상임위원, 신임 기후환경대사에는 조홍식 서울대 로스쿨 교수를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나 전 의원은 앞서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이진복 정무수석에게 인편으로 저출산위 부위원장직에 대한 사의를 전달한 데 이어, 이날 오전에는 공식적으로 서면 사직서를 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나 전 의원의 사의를 수용했다'는 표현 대신 '해임했다'는 표현을 썼다. 특히 저출산위 부위원장직이 아닌 기후환경대사직은 나 전 의원이 공식·비공식 사의 표명을 한 바가 없다.
이는 나 전 의원이 당권에 도전하도록 길을 열어 주거나 격려하는 차원에서 이번 인사조치가 이뤄진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당초 대통령실이 나 전 의원으로부터 사직 의사를 전달받은 바 없다거나, 서면 사직서 제출이 이뤄지지 않아 절차를 진행할 것이 없다는 답변을 내놓은 것과 관련해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나 전 의원을 공직에 묶어둠으로써 사실상 전대 출마를 막으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온 바 있다.
대통령실은 사의를 수락하면 당권 도전을 격려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고, 사의를 만류하면 전대 출마를 막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딜레마 속에서 고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결국 나 전 의원을 두 직위에서 모두 '해임'한다고 발표함으로써, 윤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를 간접 전달하는 한편 전당대회 도전은 온전히 나 전 의원의 선택이 되도록 공을 다시 넘긴 것으로 보인다.
친윤계의 태도도 출마 만류를 설득하는 회유 차원에서 벗어나, 노골적 적대감을 드러내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친윤 주자인 김기현 의원을 측면 지원해온 윤 대통령의 복심 장제원 의원은 이날 대통령실의 '해임' 발표와 거의 동시에 SNS에 올린 글에서 나 전 의원을 맹비난했다.
장 의원은 "국익을 위해 세일즈 외교를 나가시는 대통령의 등뒤에다 대고 사직서를 던지는 행동이 나 전 의원이 말하는 윤 대통령과 윤석열 정부를 위하는 길인가"라며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다루는 공직자가 그 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행태가 도를 넘었다"고 했다.
장 의원은 "대통령을 가장 위하는 척하는 위선적 태도", "약자 코스프레" 등의 비난에 이어 "친윤을 위장한 비겁한 반윤"이라고 나 전 의원을 규정했다. 그는 "허구한 날 윤핵관, 윤핵관 하는 유승민 이준석과 뭐가 다른가"라며 "우리 당에 분탕질을 는 사람은 이준석, 유승민으로 족하다. (나 전 의원은) 대통령을 위하는 척하며 반윤의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친윤계 핵심 중 하나인 박수영 의원도 이날 오후 "대통령의 성공이 대한민국의 성공"이라며 "그래서 제2의 유승민은 당원들이 거부할 것"이라고 사실상 나 전 의원을 겨냥했다.
대통령실과 친윤계의 태도가 적대적으로 돌아선 것은 부담이지만, 나 전 의원으로서도 더 이상 출마를 망설이기는 어렵게 됐다는 관측이 많다. 특히 당 지지층 여론조사 1위를 기록하고도 이들의 공세에 밀려 주저앉을 경우 정치인으로서의 미래가 불투명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 부담이다. 친윤계와 대통령실이 역설적으로 그의 불출마라는 퇴로를 닫아 버린 셈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나 전 의원은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나는 결코 당신들이 '진정으로' 윤 대통령,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친윤계를 저격한 데 이어 "바위가 강줄기를 막아도 강물은 바다로 흘러간다"는 말로 자신의 마음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다만 "고민이 길어지는 점에 대해 국민, 당원, 언론인들께 무척이나 송구하다"고 해 출마를 놓고 장고 중임을 시사했다. (☞관련 기사 : 나경원, 친윤계에 일침 "진정 尹 성공위한다 생각지 않아")
이와 관련,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기독교방송(CBS)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나 전 의원이 지금 코너에 몰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치인으로서는 최고의 기회"라며 "100% 출마할 것이라 본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차기 전당대회에서 ‘윤심’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지만, 당원들 사고도 그렇고 규모 면에서도 특정 세력이 의도한 대로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는 지난 11일 쿠키뉴스-한길리서치가 이달 7~9일 전국 성인남녀 1020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것이다. 조사 관련 상세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곽재훈 기자(nowhere@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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