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스트] "판은 깔려있었다"…사기에 사기를 치는 이야기

SBS 경제부 전세사기 취재팀 기자 2023. 1. 1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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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게 전셋집은 다리 쭉 뻗고 편히 쉴 수 있는 보금자리가 아닙니다.

세입자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은 전세사기 범죄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시작합니다.

보이스피싱, 사기, 도박 같은 민생범죄를 저질렀던 이들이 전세사기 범죄에 다시 등장해서 피해자를 만든 셈이죠.

검찰의 늑장수사가 전세사기 이후에도 공인중개사 활동을 이어가도록 면죄부를 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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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진/전세사기 피해자 : 압류 걸리고, 가압류도 걸리고, 최근에는 압류가 하나 더 걸렸어요. ]

[ A 씨 / 전세사기 피해자 : 임신 초기여서 가면서 넘어지고. 다리 풀려 가지고. 이거 매일 생각이 나서 두통약 먹으면서 잠자고… ]

이들에게 전셋집은 다리 쭉 뻗고 편히 쉴 수 있는 보금자리가 아닙니다.

세입자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은 전세사기 범죄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시작합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4년 전 이곳엔 부동산이 하나 있었습니다. 부동산 대표는 바로 화곡동 일대에서 이름을 날리던 공인중개사 조 모 씨입니다.

2015년부터 부동산을 운영해 왔는데요, 조 씨는 평범한 공인중개사가 아니었습니다.

[ 인근 가게 사장 : 처음에는 계약 한 건도 못 했어요, 없었어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빌라 전세한다고 하면서 사람들이 북적거리기 시작하더라고. 강서에서 자기가 제일 잘나간다고. ]

파리 날리던 부동산이 어떻게, 그것도 갑자기 잘된 걸까요? 조 씨는 바지사장 강 모 씨를 앞세워서 화곡동 빌라 수십 채의 전세 거래를 주선했습니다.

부동산 임대사업을 하고 싶은데 돈이 없다는 일용직 노동자 강 씨에게 조 씨는 의도적으로 접근했습니다. 

자본금이 없어도 부동산 여러 채를 소유할 수 있고, 건축주에게 받는 리베이트를 빌라 한 채당 150~200만 원씩 지급하겠다고 말하며 범죄 속으로 끌고 온 겁니다.

[ B 씨/전세사기 피해자 : 조 씨가 다 계획한 것처럼 느껴졌고, 사실 저는 강 씨 목소리가 기억이 나지 않아요. 조 씨가 아예 판을 깔아놨다고 생각을 해요. ]

그런데 취재 과정에서 최근 사망한 40대 바지사장 김 모 씨가 이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숨진 김 씨가 과거 조 씨가 운영하는 부동산에서 중개보조원으로 일했다는 자료가 확인됐습니다.

정리하면 조 씨를 중심으로 동업자인 바지사장인 강 씨가 있고, 조 씨 밑에는 중개보조원으로 김 씨가 활동했던 셈인데, 숨진 김 씨는 이곳에서 일하며 사기 수법을 배웠을 걸로 추정됩니다.

김 씨는 훗날 적극적으로 전세사기 범죄에 가담해 천 채 넘는 빌라의 주인이 됐고, 전세사기 2세대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가 됩니다.

그렇다면 강 씨나 숨진 김 씨와 같은 바지사장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취재진은 먼저 김 씨의 행적을 찾아 나섰습니다.

[ 김 씨 지인 : 어떻게 하다가 지금 그 부동산을 한다고 해서. 부동산을, 걔가 어떻게 부동산을 하지? ]

관련 기록들을 하나씩 살펴봤더니, 숨진 김 씨가 과거 보이스피싱 일당의 중간책으로 활동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김 씨는 사기 방조 혐의로 징역형까지 선고받았었습니다.

일당과 함께 주택 3,400여 채의 명의를 이전받은 뒤에 잠적한 또 다른 바지사장 권 모 씨도 전세사기 이전에 확인된 전과만 모두 3건. 

이 가운데엔 바다이야기 불법게임장을 운영한 것도 있었습니다. 

보이스피싱, 사기, 도박 같은 민생범죄를 저질렀던 이들이 전세사기 범죄에 다시 등장해서 피해자를 만든 셈이죠. 

심지어 자신도 모르는 새 명의를 도용당해서 바지사장이 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 명의도용 피해자 A 씨 동생 : 아무것도, 빈손으로 갖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재산세가 날아오는가. 그래서 나는 '사기꾼한테 사기당한 것 같다' 이런 생각을 가진 거죠. ]

[ 명의도용 피해자 A 씨 : 그럼 선생님은 그 집에 가보신 적은 없으세요? 없어요. 가봤으면 다 알지… ]

이렇게 수많은 피해가 이어질 동안 수사당국은 대체 뭘 하고 있던 걸까요.

초기 피해자들이 공인중개사 조 씨와 바지사장 강 씨를 고소한 뒤 검찰 기소까지 무려 3년 5개월이 걸렸습니다.

지난달 청구된 조 씨의 구속영장은 기각됐고, 조 씨의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는 지난해 5월 공소시효가 지나 따져볼 수도 없게 됐습니다.

그 이유가 뭔지 묻자, 검찰은 리베이트를 받은 게 '중개 대가 초과 보수'는 아니라고 봤다고 답했습니다. 이 말, 여러분은 이해가 되십니까.

[ 신중권 변호사 / 전세사기 피해자 대리인 : 법에는 명확하게 명목 여하 불문하고 돈을 법정 수수료 이상 받으면 불법으로 돼 있거든요. 공소시효 지난 다음 이제 와서 '어차피 혐의없음 할거였어', 이게 말입니까? ]

문제는 공인중개사법 위반이 아니면 공인중개사 자격을 제재할 방법이 없단 겁니다. 검찰의 늑장수사가 전세사기 이후에도 공인중개사 활동을 이어가도록 면죄부를 준 셈입니다. 

[ 신중권 변호사 / 전세사기 피해자 대리인 : 공인중개사법 위반이 돼야 자격의 정지가 되든 뭐든 간에 행정 처분이…. 리베이트 그렇게 많이 받았는데 공인중개사 그냥 그대로 하는 거예요. ]

SBS 경제부 전세사기 취재팀은 이어지는 보도를 통해 정부는 전세사기 대란을 왜 막지 못했는지, 그리고 그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 끝까지 규명해 나가겠습니다.

( 취재 : 이혜미, 안상우, 정반석, 조윤하 / 영상취재 : 이재영 / 편집 : 한만길 / 담당 : 김도균 / 제작 : D콘텐츠기획부 ) 

SBS 경제부 전세사기 취재팀 기자hah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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