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귀여운 토끼의 무서운 반란, 이정현 “토끼띠 해에 주인공이 되고 싶어요”
[점프볼=최서진 기자] 올해는 60간지의 40번째인 계묘년 ‘검은 토끼’의 해다. 토끼띠의 해를 맞아 가장 잘 나가는 토끼띠 이정현을 만났다. 이정현은 귀여운 토끼처럼 해맑게 코트를 뛰어다니지만, 올 시즌 무서울 정도로 가파르게 성장했다. 토끼도 좋아하고 당근도 잘 먹는다는 토끼띠 이정현의 농구인생을 들어봤다.
※본 기사는 점프볼 1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지난해 6월 ‘구해줘 홈즈’ 프로그램(MBC)에 출연해 집을 구했었죠. 그때 선택한 집에 살고 있나요?
아니요. 그 집을 하지는 않았는데, 그 집을 통해 더 마음에 드는 집을 구했어요. 제가 차가 없다 보니 집에서 최대한 가까운 거리에서 걸어갈 수 있는 곳으로 구했어요. 체육관까지 딱 도보로 10분 걸려요.
첫 자취인데 집 꾸미기에도 관심 있나요?
처음에는 꾸미기에 관심이 없었어요. 근데 혼자 생활하다 보니 조금씩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집이 예쁘게 채워지는 것도 만족스럽고, 팬분들이 인형이나 액자도 선물해주셔서 그런 것들로 집을 꾸미고 있어요.
직접 음식을 해먹기도 하나요?
아니요(웃음). 무조건 시켜서 먹거나 나와서 먹어요. 해먹고 싶기도 한데 엄두가 안 나요. 먹기 전 준비나 먹은 후 정리가 걱정스럽거든요.
집들이 온 선수들도 있나요?
많지는 않고 몇 명 초대했었어요. 이원석(삼성), 김한영(LG), 유기상(연세대)도 왔었고요. 종종 한 번씩 심심할 때 애들이 오기도 해요. (이)원석이가 나쁜 게 처음에 왔을 때 자기가 “뭐라도 사왔어야 했는데” 하면서 "다음에 올 때 사올게요"라고 말했거든요. 근데 다음에 올 때도 빈손으로 오더라고요. 아주 실망이 컸습니다(웃음). 1순위 통이 이렇게 작아서야.
이원석 선수와 자주 연락하시나요?
지난 시즌에도 그렇고 힘들다고 징징거려요. 원석이가 힘들다고 징징대면 저는 놀려요(웃음). 연세대에서 룸메이트를 오래 했어요. 그래서 편하게 서로 이야기해요. 우리 팀이 지면 한 번씩 연락해서 놀리더라고요.
시즌 초 경기 전에 장포 내기(하프라인 슛)를 하면 많이 걸렸었다면서요?
자주 하프라인 장포 내기를 하거든요. 지면 경기 전에 커피를 사야 해요. 근데 제가 팀에서 하위권이에요. 코치님들까지 하는데 손규완 코치님이 정말 잘해요(웃음). 시즌 초에 제가 꼴찌를 해서 커피를 샀는데 팀이 잘했고, 크게 이겼어요. 그 뒤에 또 걸려서 커피를 샀는데 팀이 또 이기니까 형들이 “네가 사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그 뒤로는 안 걸렸어요.
요즘 장포 내기에서 자주 꼴찌를 하는 선수는 누군가요?
(조)한진이 형이 정말 자주 걸려요. 그래서 약간 미안하기도 해요. 원정 경기는 인원이 적어서 부담이 덜한데 홈에서는 선수 전원이 다하거든요. 선수뿐만 아니라 관계자분들 것도 사고, 심지어 사이즈가 벤티예요(웃음). 제가 걸릴 수는 없으니 웬만하면 연봉 상위권 형들이 걸려줬으면 좋겠어요. 근데 (전)성현이 형은 정말 잘해요. 우리를 가지고 놀아요. 일부로 초반에는 안 들어가게 던지다가 사람 수가 줄면 얄밉게 넣어요.
경기 날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평일 경기는 7시에 시작하니 천천히 일어나서 오전에 가볍게 몸을 풀어요. 상대 패턴 공부나 슛을 쏘고 점심 먹고 쉬어요. 저는 그중 1시간 정도는 꼭 자야 해요. 잠이 필수예요. 자고 준비한 뒤 천천히 테이핑 받으러 가요. 항상 마지막에 테이핑 받고 바닐라라떼를 가면서 먹습니다.
테이핑을 마지막으로 받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휴식 시간에 스마트폰도 좀 하고 1시간 정도 잔 뒤 마지막으로 테이핑 받을 시간 정도에 일어나요. 그러다 보니 트레이너 형들이나 선배들이 외국선수 아니냐고 이야기하기도 해요(웃음).
경기 후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부모님이 자주 경기를 보러 오세요. 보통 9시쯤 경기가 끝나서 팬들이랑 사진 찍고 사인하다 보면 거의 10시가 되거든요. 그럼 밥을 먹기 힘든 상황이니까 부모님이 집에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 편하고 굉장히 좋습니다.
일찍 눕기는 하는데 막상 누우면 그 시간이 너무 아까운 거예요. 그래서 누워서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타고 영상 보다가 한 12시 30분쯤 자는 것 같아요. 그러고 다음 날 일어나서 후회하죠. 일찍 자야지 마음먹어도 재밌는 거 보면 또 늦게 자요(웃음).
쉬는 날에는 뭐하시나요?
영화를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최근에는 못 본 지 오래됐어요. 편한 친구들 만나서 노는 편이에요. 근데 제가 밖에 오래 못 있거든요. (이정현의 MBTI는 ISTP다) 밖에 오래 있으면 기가 빨려요. 최대한 쉬다가 저녁 시간에 맞춰서 간단하게 밥 먹고 커피 한잔하고 들어오는 정도예요.
경기 전 루틴이 많다고 알고 있는데 어떤 것들이 있나요?
경기 전날에는 사우나를 가요. 원정 룸메이트가 성현이 형인데 형은 이해를 못하더라고요. 아침은 잘 안 먹고 타이즈나 양말을 부드러운 걸로 왼쪽부터 신어요. 테이핑도 왼쪽부터 받고 신발도 왼쪽, 신발 끈도 왼쪽부터 묶어요. 오래 전부터 해오다 보니 습관이 됐어요.
전성현 선수와 원정 룸메이트면 조언을 많이 듣기도 하나요?
성현이 형이 영양제를 많이 챙겨 먹는데 저한테도 경기 전에 이거 먹어라. 후에는 이거 먹어라 많이 챙겨줘요. 형이 NBA나 KBL을 많이 보는데 기웃거리면서 같이 보고 이야기도 해요. 둘이 심야괴담회라는 프로그램도 보는데 저는 잘 못 보거든요. 무서운 장면이 나왔을 때 성현이 형이 깜짝 놀라게 해요. 제가 반대로 한번 해봤는데 형은 안 놀래더라고요(웃음).
크게 욕심은 없어요. 조금만 해도 금방 몸이 펌핑되는 편이에요. 그래도 하체는 중요하게 생각해서 하체 운동은 많이 해요. 하체에 힘이 약하게 들어갈 때 경기가 잘 안 풀리더라고요.
김승기 감독의 채찍과 당근 속 ‘즐거운 농구’
이정현은 올 시즌 고양 캐롯에 부임한 김승기 감독의 지도 아래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다. 김승기 감독은 오프시즌부터 ‘이정현, 탑가드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그 과정 중 김승기 감독의 입에서 빠지지 않았던 단어가 ‘나쁜 습관’이다. 나쁜 습관을 고쳐야 한다는 김승기 감독의 말은 빈도가 줄어들었을 뿐,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이정현은 프로 2년 차에 나쁜 습관 뛰어넘기를 노린다.
캐롯으로 김승기 감독이 온 뒤에 첫인상은 어땠나요?
감독님과 함께하는 시즌이 많이 기대됐어요. 앞으로가 걱정되는 무서운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주변에서 긴장하라며 걱정(?)하기도 했거든요.
김승기 감독이 ‘나쁜 버릇’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오프시즌에 나쁜 버릇은 몇 개 정도였나요?
100중에 100이었어요. 그중에서도 몇 개를 집어주셨는데, 기본적으로 말씀하신 것은 바운드패스였어요. 또 뺏는 수비에 맞는 스텝과 돌파할 때 스텝들을 많이 강조하셨어요. 오프시즌에 디테일하게 동작 하나하나 많이 연습했어요.
나쁜 버릇 중 얼마나 고쳐졌다고 생각하나요?
잘 모르겠어요. 정말 습관처럼 나오는 거라. 그래도 지금은 감독님이 100중 100을 다 집어주시지는 않아요. 이제 저도 조금씩 인식하면서 경기를 뛰고 있어요. 가끔 아차 싶을 때도 있고요.
과도기도 있었나요?
하지 말라는 말에 안 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제 플레이가 갇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어요. 제가 해왔던 것들과 다르니 자신감도 좀 떨어졌었고요. 올 시즌 초반 두 경기가 그랬어요. 바운드패스를 주문하신다고 해서 바운드패스만 하라는 뜻은 아니셨거든요. 근데 바운드패스만 생각하다 보니 실책이 나왔고, 혼란도 왔어요. 지금은 제 플레이와 감독님의 주문을 상황에 맞춰서 하고 있어요.
혼난 것에 주눅 들고 혼난 것에 빠져 있기보다는 인지하고 넘어가려고 해요. 제 플레이를 해보고 잘 안 되면 또 혼나면 되지 이런 생각도 해요. 스트레스를 거의 안 받는 성격이기도 하고, 스트레스 받을 일이 있나? 싶기도 해요(웃음).
출전 시간이 평균 34분 4초로 리그 1위인데 힘들지는 않나요? (12월 6일 기준)
이렇게 많이 뛰는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요. 대학 때도 이렇게 많이는 안 뛰었거든요. 오프시즌에 몸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 연습 경기에서 풀타임 가까이 뛰니 많이 힘들었어요. 다리를 끌고 다니게 되더라고요. 근데 마냥 뛰면 되는 게 아니라 수비도 해야 하고 슛도 던져야 하고 그러니 더 정신이 없었어요. 한 경기 하면서 슛을 10개 이상 던진 경기가 거의 없었거든요. “계속 슛 쏴라, 찬스 아니어도 던져라”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계속 뛰니까 어느 순간 몸이 좀 올라왔다고 느껴졌어요. 컵대회 때 한 35분 정도 뛰니까 하나도 안 힘들더라고요(웃음). 체력이 많이 올라와서 긴 출전 시간은 아직 괜찮아요. 경기 뛸 때 항상 재밌고 신나기 때문에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아요.
김승기 감독의 뺏는 농구가 재밌기도 한가요?
정말 재밌죠. 제가 스틸 같은 것도 좋아하고 가장 좋아하는 플레이가 속공이거든요. 공을 뺏게 되면 속공이 자연스럽게 나오는데, 감독님이 강조를 많이 하시는 부분이라 저한테 잘 맞는 것 같아요.
김승기 감독이 당근과 채찍을 나눠서 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본인이 느끼기에는 어떤가요?
맞아요. 어느 시기에는 한없이 혼만 내시고, 한때는 정말 잘해주셨어요.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은 혼나는 시기예요(웃음).
국내선수 공헌도가 2위(12월 6일 기준)예요. 기록으로도 나타나지만 지난 시즌과 다른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름을 나란히 하고 있는 선수들이 리그 탑 가드들이잖아요. 그런 가드들과 기록이나 공헌도를 비교했을 때 제가 뒤지지 않고 상위권에 있다는 게 정말 말이 안 되는 거죠. 다른 선수들에 비해 득점이나 어시스트가 특출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팬들이 공헌도를 알려주면 신기하고 뿌듯했어요.
지난 시즌에 좀 힘들었어요. (이)대성이 형, (이)승현이 형, 머피 할로웨이라는 주축 선수들 속에 제가 롤 플레이어였거든요. 출전 시간이 오락가락했을 때도 있어서 컨디션이 들쭉날쭉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신 있는 플레이가 잘 안 나올 때도 많았고, 아쉬운 점이 많았어요. 올 시즌은 많이 혼나지만 벤치에 들어가도 금방 나오거든요. 또 코트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기 때문에 힘들어도 즐겁게 농구하는 중이에요.
올 시즌 득점력(9.7점→15.8점) 또한 올랐고, 한 자리 득점 경기가 단 한 경기 뿐(1라운드 KGC전)이었어요.
KGC전 때도 두 자리를 넣었어야 했는데 너무 아쉬웠어요. 특히 2라운드 맞대결에서는 큰 점수 차로 이기다가 뒤집혀서 진거라 충격이 컸어요. 스트레스를 잘 안 받는 성격인데 이틀 정도 스트레스도 받고 힘들었어요. 아무래도 제가 이기고 있을 때 지키는 능력이나 위기 상황에 뒤집을 수 있는 힘은 아직 부족하다 보니 팀이 불안한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코트에서 다양한 상황을 경험하고 있기에 당연히 좋아질 거라 믿고 있어요.
코트 위에서 밝게 웃으며 뛰는데 어떻게 그렇게 뛸 수 있나요?
코트 위에 있는 게 즐겁고 스트레스 받을 일이 크게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관중의 함성과 응원 소리 들으면 더 웃음이 나는 것 같아요. 즐겁게 하다 보면 더 좋은 플레이가 나온다고 믿고 있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코치님이 실책을 해도 웃는다고 한마디 하시더라고요(웃음). 어제(5일)는 감독님이 화 한번 내보라고 하셨어요. 농담으로 테크니컬 파울 받을 정도로 화내보라고 하셨는데 저는 자신이 없어요(웃음). 웃지 말라고는 안 하시지만 독하게, 투지 있게 해라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제 성격과 감독님의 조언이 조화가 돼야 더 좋은 선수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시즌 전 최약체라는 평가를 들었을 때, 스스로도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는지 아니면 분명 잘 할 거야 라는 생각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오프시즌에 연습 경기를 하면 다 지는 거예요. 큰일 났다 싶었어요. 통영으로 전지훈련을 갔을 때는 가스공사 2군에게도 졌어요. 근데 컵대회에서 삼성도 이기고 SK도 이기고 하다 보니 조금씩 잘 맞는 느낌이 들었어요. 개막전 때 DB를 상대로 크게 이기다 마지막에 따라 잡혀서 힘든 경기를 했지만, 그때부터 희망을 얻은 것 같아요. "이게 되네"라는 생각이 점점 쌓이다 보니까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의 케미스트리가 더 좋아지고 이제는 어느 팀을 만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지고 있어도 결국에 질 것 같지 않은 느낌을 받기도 하나요?
크게 지고 있어도 기회는 한두 번쯤 온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3점슛을 주 옵션으로 삼기 때문에 분위기가 금방 넘어오거든요. 그래서 항상 기회만 엿보는 것 같아요. 스틸도 분위기를 확 가져오기에 딱 좋거든요.
정말 든든해요. 성현이 형이 볼을 오래 갖고 있지는 않지만 파생 효과가 매우 크거든요. 성현이 형이 자신에게 수비가 모임으로써 꼬이는 상황을 역이용하자는 말도 많이 하고요. 이제는 패턴을 불러도 성현이 형 찬스 잡기가 정말 어려워요. 그래서 첫 번째 옵션을 성현이 형으로 인지한 뒤 다른 옵션들을 보려고 생각해요. 저한테도 찬스가 많이 오기도 하고, 팀원들에게도 큰 도움이 돼요.
2023년 토끼띠 해에 소원이 있다면요?
제가 주인공인 해가 됐으면 좋겠어요. 지금처럼 좋은 모습을 꾸준히 한 시즌 내내 계속 보일 수 있다는 게 주인공이라고 생각해요. 잠깐의 업다운은 있겠지만, 큰 부상 없이 코트 위에 계속 있다면 그게 주인공이죠.
팀 목표는 무엇인가요?
감독님이 말하는 목표 20승 중 10승을 벌써 했잖아요. 아쉽게 진 경기도 많지만 지금 잘하고 있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어요. 처음에는 6강이 목표였거든요. 근데 팀이 정말 잘 맞아서 단기전으로 하면 우승할 수 있는 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팬들에게 한마디 남겨주세요.
올시즌 팬들이 많아졌다고 느껴요. 관중도 많아지다 보니 경기하는 게 더 재밌어요. LG전(4일)에서 성현이 형이 연속으로 3점슛 넣으니까 분위기가 오른다는 게 느껴졌어요. 처음이었어요. 지난 시즌 SK랑 4강 플레이오프를 치를 때 SK가 경기를 뒤집는 과정에서 함성이 지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팬들이 해주셨어요. 지금 생각해도 소름 돋아요. 저희 팬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10개 구단 중에 우리가 제일 재밌게 경기하는 것 같아요(웃음). 좋은 경기 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경기 후 팬서비스나 예능 유튜브 등 다방면에서도 발전하는 캐롯이 될게요.
# 사진_점프볼 DB(박상혁, 백승철 기자)
Copyright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