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사건의 지평선' 촬영 성공한 대사건의 기록

구은서 2023. 1. 13.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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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푸른 장미'는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꽃이었다.

책은 빛조차 빨려들어가는 블랙홀의 경계 '사건의 지평선'을 이렇게 설명한다.

절벽 너머 폭포로 빨려 들어간 빛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고, 그래서 그 안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지든 우리는 더 이상 관측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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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최초의 블랙홀 사진입니다
하이노 팔케·외르크 뢰머 지음
김용기·정경숙 옮김 / 에코리브르
376쪽│2만5000원
인류 최초 블랙홀 촬영기
빛조차 삼켜버리는 블랙홀의 경계는
더이상 관측 못해 '사건의 지평선' 불려
20여년 도전 끝에 2019년 촬영 성공
아인슈타인 이론도 쉬운 비유로 설명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푸른 장미’는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꽃이었다. 장미꽃에는 푸른빛을 띠게 하는 색소인 ‘델피니딘’을 생성하는 유전자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전공학자들은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이후 ‘불가능’이었던 푸른 장미의 꽃말은 ‘기적’으로 바뀌었다. 흔히 과학의 세계는 냉철하고 무미건조한 영역, 낭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과학자들의 이야기는 훌륭한 문학 작품만큼이나 큰 감동을 준다.

최근 출간된 <이것이 최초의 블랙홀 사진입니다>도 그렇다. 천문학자 하이노 팔케와 ‘슈피겔’의 과학기자 외르크 뢰머가 함께 쓴 책이다. 이 책의 부제는 ‘천문학의 역사와 블랙홀 관측 여정’. 팔케를 비롯한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 프로젝트 연구진이 20여 년의 분투 끝에 2019년 인류 최초로 블랙홀 사진을 찍은 과정을 다뤘다. 워낙 중력이 강해 빛조차 삼켜버린다는 ‘우주의 심연’을 촬영한 이야기다. 천문학 책이지만 실패와 도전을 주제로 한 드라마처럼 읽힌다.

책은 2019년 4월 10일, 벨기에 브뤼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서 인류 최초의 블랙홀 사진을 공개하는 기자회견 장면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총 4부로 구성됐다. 짤막한 프롤로그 다음 이어지는 1, 2부에서는 천문학의 역사와 현대 천문학의 성과를 소개한다. 3, 4부에서 EHT 프로젝트를 다룬다. 성질 급한 독자거나 블랙홀 사진을 찍은 과정에 집중하고 싶은 독자라면 프롤로그 이후 곧장 3부부터 읽어도 좋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과 이를 검증한 아서 에딩턴의 관측 등을 설명하는 1, 2부를 통과해야 3, 4부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다.

여러 비유와 친절한 서술 덕에 그 어렵다는 일반상대성이론을 완벽하게 이해한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든다. 천문학의 발자취를 따라 읽다 보면 블랙홀의 사진을 찍는 게 얼마나 어렵고 위대한 과업이었는지 실감하게 된다. 책은 빛조차 빨려들어가는 블랙홀의 경계 ‘사건의 지평선’을 이렇게 설명한다.

“절벽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강물의 흐름에 역행해 빠르게 수영할 수 있다. 폭포에 가까워지면 물살이 아주 강하므로 훨씬 더 빨리 헤엄쳐야 한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이르면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도 급류를 피하지 못하고 휩쓸려버린다. 절벽 끝에서 떨어지고 나면 너무 늦었다.”

여기서 수영 선수는 ‘빛’이다. 절벽 너머 폭포로 빨려 들어간 빛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고, 그래서 그 안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지든 우리는 더 이상 관측할 수 없다. 가수 윤하가 역주행 신화를 써낸 노래의 제목도 이 ‘사건의 지평선’에서 따왔다. 이런 사연을 알고 나면 ‘저기, 사라진 별의 자리/아스라이 하얀 빛’이라는 가사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우주의 원리를 담은 책 속 문장들은 때로는 잠언처럼 읽힌다. 예컨대 “내가 측정할 수 있는 것만이 내게 존재하는 것이다” 같은 문장이 그렇다. 팔케는 책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우리 인간은 헤아릴 수 없는 광대한 공간을 떠도는 먼지 알갱이 위에 앉은 먼지 알갱이일 뿐이다. 우리는 별을 폭발시킬 수 없고, 은하계의 수레바퀴를 돌리지 못한다. 그러나 우주에 감탄하고 질문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믿고, 희망하고, 사랑할 수 있다. 그것이 우리를 아주 특별한 별 먼지로 만든다.” 글솜씨 좋은 천문학자인 김용기 충북대 천문우주학과 교수와 정경숙 인천대 기초교양원 교수의 깔끔한 번역 덕분에 책을 신뢰하며 읽어나갈 수 있다.

정가는 2만5000원. 400쪽도 안 되는 문고본 책치고 제법 가격이 나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값어치를 충분히 해내는 책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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