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오은선 "박영석, 엄홍길 앞지르려다 셰르파 희생"…朴의 유족 "死者 명예훼손, 산악계와 함께 강력 대응"

서현우 2023. 1. 13.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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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책에 쓴 건 10분의 1도 안 돼"…산악계 "출판금지 신청, 소송하겠다"

'10월 11일 셰르파 상게가 추락해 사망했다. (중략) 이치상 선배가 "바람이 심하게 불어 등반하기 어렵다"고 말했는데도 "무조건 강행하라"고 박 대장이 다그치는 바람에 루트작업 중 사고가 발생했다. 14좌 완등을 엄 대장보다 먼저 마치려는 박 대장의 조급증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72~73p

1월 9일 우이동 한국산악회 지하 강당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오은선 대장이 독자에게 사인해주고 있다.

오은선 대장이 지난 12월 8일 펴낸 자전적 에세이 <오은선의 한 걸음>이 산악계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책은 오 대장이 히말라야 14좌와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하는 여정을 담았다. 그런데 뭇 등반기와는 약간 결이 다르다. 일반적인 등반기들은 잔혹한 자연환경과 역경을 이겨내고 정상에 도달하는 인간 승리의 순간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이 책은 산악 환경에서 나약하고 허술했던 오 대장 자기 자신의 과거 모습과 등반 과정에서 다른 등반가들에게 상처 받았던 순간들을 적나라하게 담았다. 책에서 등장한 등반가들과 유족들은 "당황스럽고 명백한 명예훼손"이라는 반응이다.

오 대장은 책에서 자신의 시선으로 대학산악부 시절부터 고산등반에 입문하게 된 계기와 주요 고산 원정 기록을 살펴봤다. 그는 "등반 과정에서 미화되지 않은 진솔한 내면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전했다. 그래서 브로드피크 원정 중 캠프3에서 하산을 결심할 땐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발길을 돌렸다. 그것밖에 안 되는 내가 원망스럽고 한심하게 느껴졌다'고 쓰기도 했고, 등반 과정에서 겪은 생리적 현상들, 체력적인 한계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고백했다.

또한 남성지배적이고 권위적인 산악계 문화의 단면도 담았다. 여성에베레스트 원정대 훈련 도중 '빠따'를 맞고 목욕탕에 갔는데 사람들이 시퍼런 피멍 자국을 보고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는 일화가 대표적이다. 오은선 대장은 "산악계의 뿌리 깊은 '선배는 하늘, 후배는 노예'라는 문화의 영향이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2010년 안나푸르나를 마지막으로 14좌를 완등한 오은선 대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진솔하게 여성등반가의 고충을 담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동료 산악인들을 폄훼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는 일화와 표현들을 다수 담은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 박영석 대장과 고미영 대장, 김재수 대장, 동료 산악인 박경이, 안중국, 한필석 월간<山> 전 편집장 등이 대상이다. 책에서 문제시 되고 있는 내용들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박영석 대장은 이상돈 원정대장과 의견충돌이 있었다. 박 대장은 이 대장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모습을 후배 대원들 앞에서 보였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유명 산악인이라고 선배를 무시하는 태도는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 50p

'박 대장은 BC로 안 가고 ABC에서 환자를 기다렸다. 환자가 도착하자 그때부터 환자 뒤에서 천천히 따라가다 카메라가 기다리고 있는 베이스캠프에 도착할 때쯤에는 환자와 같이 들어갔다. 앞으로 박 대장과 등반하는 것은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 86p

'(오은선 대장이 에베레스트 등반 중 계명대 원정대 박무택 대장의 시신을 지나쳐 정상에 오른 것을 두고) 박영석 대장은 "어떻게 시신을 밟고 정상에 오를 수 있느냐"며 술자리에 모인 기자들 앞에서 나를 비난했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참고 넘기는 수밖에 없었다. 박 대장에게 따져봐야 나에게 알려준 사람만 곤경에 빠뜨릴 것이 불 보듯 뻔했다.' - 123p

'식사 후 홍보성 원정대장은 자신들이 가장 먼저 베이스캠프에 들어와 캠프2까지 거의 모든 루트 개척을 했다며 다른 외국팀들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경험한 우리나라 남자 산악인들의 특징 중 하나였다. 반면교사로 삼기로 했다. (중략) 자신들만 내세우는 게 무슨 실력일까? 겸손이라는 단어가 새삼 떠오르는 날이다. 그러면 나는 겸손한가?' - 170p

생전의 故 고미영 대장(왼쪽)과 오은선 대장.

'고미영이 화장까지 곱게 하고 앉아 있었다. 전날 밤엔 생일선물로 받은 거라며 나에게 루비반지도 자랑했었다.' - 219p

'(김재수 대장 원정대에서 사고로 대원 3명과 셰르파 2명이 죽자) 나는 사고 소식으로 심장이 오그라들어 철수했다. 김재수팀 셰르파 중 살아남은, 죽은 셰르파의 사촌이 내게 "우리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고미영을 올려야 했다"며 "사촌의 죽음이 분하고 억울하다"고 말했다.' - 222p

'한왕용은 1997년 가셔브룸 원정 때 고스톱 중 속임수를 쓰다가 나한테 들킨 동기다. (중략) 나의 등정을 의심한 김재수는 "나의 정상 사진과 오은선의 정상 사진이 달라 이상하다고 느꼈고 내가 제기한 문제는 확실히 매듭짓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며 처음에는 나의 등반에 대해 "사진이 이상하다", "시간이 이상하다" 하더니 정상에서 산소통을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를 가지고 결정적 증거인 것처럼 나를 몰아댔다.

증언한 대로 내가 올랐을 때는 정상에 산소통이 없었던 것이 밝혀지자 김재수는 "오은선이 떨어뜨린 교기를 정상 200미터 전 지점에서 내가 주워왔다"고 거짓말하면서 나의 등정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239p

'2010년 10월호 월간<山> 기사를 다시 읽어보았더니 다른 외국팀들이 본 깃발의 색깔과 모양은 내 것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기사에 실린 깃발은 노란색 삼각기였고 내가 잃어버린 수원대 산악부 깃발은 빨간색 사각기였다.

기사를 쓴 안중국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알려주었으나 그는 "어찌 됐든 박영석 대장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비공식 1차면담 때 오르지 못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는 말만 했다. 그때는 나도 참석했었다. 당시 나는 예전에 박 대장을 따라 다니며 억압적인 어투에 질려 말도 제대로 못했었는데 어이가 없었다.' - 240p

'박 대장과 이 회장은 동국대 산악부 선후배였다. 이 회장의 한마디에 박 대장은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린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었다. 그 일로 나의 칸첸중가 등반은 '논란 중'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 244p

오은선 대장과 스페인 여성 산악인 에두르네 파사반. 파사반은 오은선 대장의 칸첸중가 등정이 논란이 되자 자신이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최초의 여성으로 기록되기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3년 전 익명에서 이번엔 실명으로 폭로

일반 독자 입장에서는 모두 충격적인 일들이다. 사실 이 내용은 3년 전에도 한 번 발표돼 산악계에 소동을 일으킨 바 있다. 오은선 대장은 본인의 고려대학교 대학원 체육학과 박사학위논문 <여성 산악인의 고산등반 체험에 관한 자문화기술지>에서 이미 위의 일화들을 폭로한 적이 있다. (월간<山> 2020년 5월호 [단독] 오은선의 폭로, "고故 박영석 대장, 억압적이고 선배 무시하기도" 기사 참고)

당시에도 반발이 있었지만 본격화되지 않았던 건 논문에서 다른 등반가들을 다 익명으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가령 고미영 대장은 G, 박영석 대장은 P대장이라고 표기했다. 실제 성에 기반했기에 전후 문맥으로 어떤 인물을 지칭하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지만, 일단 형식적으로 익명인 것은 맞고 대중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논문이었기에 쉬쉬하고 넘어가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런데 이번 책에서는 실명이다. 오은선 대장은 "없던 사실을 쓴 것도 아니고 내 일기를 기반으로 솔직하게 쓴 것이기 때문에 실명으로 했다"며 "논문은 익명 처리해야 한다고 해서 익명으로 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당사자들에게 해당 내용을 책에 싣는 것에 대해 동의를 구했느냐는 질문에는 "쓰지 말라고 할 것이 뻔했다. 당시 내 창피하고 처참했던 심경을 솔직하게 밝히기 위해 필요했던 부분"이라고 했다.

또한 화려한 성공 대신 어두운 부분들을 드러내는 데 집중한 것에 대해서는 "서구 등반가들의 등반기들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들은 자신은 물론 타인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적는다"고 했다. 그래서 김영도 선생은 지난 1월 9일 한국산악회 강당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이 책은 피터 하벨러를 연상케 한다"고 했다. 피터 하벨러는 라인홀트 메스너와 함께 1978년 5월 당시로선 절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에 성공한 산악인이다. 하벨러는 등정 후 자신의 책 <외로운 승리>에서 '메스너가 설맹의 고통으로 울고불고 난리쳤다'고 고백해 자존심 강한 메스너와 관계가 틀어진 바 있다.

2009년 5월 6일 오은선 대장의 칸첸중가 등정에 이어 5월 18일 두 번째로 정상에 선 스웨덴 산악인 매티아스 칼손이 정상 직전 7~8m 지점에 서 있다. 칸첸중가 등정 논란 당시 이들의 동영상과 사진, 증언을 토대로 오은선 대장의 등정 여부를 따졌었던 바 있다.

노란색 깃발 논란은 오은선 대장도 착각 인정

당사자들은 공통적으로 "사실이 아닌 부분이 너무 많고, 비록 사실이더라도 명백한 명예훼손이므로 적극 대응할 것"이라는 입장을 본지에 밝혀 왔다. 박영석탐험문화재단 홍경희 이사장은 "재단 차원에서 출판금지 가처분신청을 내는 등 명예훼손 당한 다른 등반가들과 연대해서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책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된 등반가들 중 한 인물은 "당사자들 대부분 본인 확인 없이 사실과 다르게 왜곡된 부분에 대하여 분노하고 있다.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주관적인 글을 써서 출판하면 사실관계의 다툼이 있을 수 있다. 더군다나 고인이 된 분은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없으니 그 유족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참담할까. 유족뿐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도 가족이 있고 다 공인들이다"라며 분개했다.

김재수 대장은 "칸첸중가에서 내가 셰르파에게 거짓말을 했다거나 수원대 산악부 깃발을 직접 줍지 않았다는 등의 주장은 전부 사실이 아니다"라며 "누구나 내면에 일기장 하나쯤은 가지고 사는데 그때의 감정이 세월이 지나도 그대로란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2010년 10월호 월간<山> 기사에서 오보를 냈다고 지적당한 안중국 전 편집장은 "책에선 내가 기사에 '노란색 삼각기'라고 언급했다고 하는데, 실제 기사를 보면 '붉은 바탕에 노랑 글씨가 새겨진 깃발' 등 붉은 깃발이라 밝힌바 있다"고 항변했다. 오은선 대장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착각한 것이 맞다"고 인정했다.

"비주류 고산등반가의 비애를 담았을 뿐"

오은선 대장도 당사자들의 이러한 날선 반응을 인지하고 있다. 오 대장은 출판기념회에서 "본의 아니게 마음에 상처를 받은 분들이 계신데 그것 또한 내가 넘어야 할 사람의 산들인 것 같다. 앞으로 그런 부분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또한 본지와의 인터뷰에선 "사람이란 명과 암을 모두 가진 존재들이라 언급한 등반가들도 멋있는 모습이나 존경할 만한 부분이 있는데 어두운 부분들을 드러낸 것에 대해선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책에 적은 건 당시 내 비참했던 심정의 10분의 1조차 되지 않는다"며 "남성 주류로 형성된 산악계에서 여성이자 약자로서, 또 유명 대학산악부도 아닌 수원대 산악부 출신이라서 받았던 상처들과 치부를 솔직하게 드러내려 했을 뿐인데 그건 헤아려 주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했다. 또한 "나에게 가해진 처사들을 '애정 어린 조언'이라고 미화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에겐 사람을 발밑으로 보고 하는 '훈육'으로 다가왔었다"고도 했다.

과연 이 책은 한국 고산등반과 산악계의 민낯을 제대로 드러낸 문제작일까, 오은선 대장 개인의 일방적인 한풀이일까. 판단은 물론 독자의 몫이겠지만, 여기에 법의 몫도 있을 전망이다. 당사자들 일동이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 및 명예훼손 고소 등을 고려하고 있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오은선의 한 걸음'. 오은선. 허원북스. 1만 8,000원. 296쪽.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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