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 대표 '밀실 선임' 현장 혼란 그 자체… "저는 가, 나, 다 후보입니다"

박재령 기자 2023. 1. 1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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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공개정책설명회
시민들 비밀유지 서약서 작성 "힘들게 왔는데 불쾌할 정도"
여당 우세 임추위가 진행하는 사장선임절차 '친오세훈' 방송 우려 그대로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기자 출입이 불허되고 생중계가 없어진 TBS차기대표 '밀실 심사' 현장은 혼란 그 자체였다. 공모 이후 줄곧 '비공개' 처리되고 있는 6명 대표후보들의 면면은 시민들에게도 '가 후보', '나 후보' 등 익명 처리됐다. 심사를 진행하고 있는 관계자들은 기자들의 사진 촬영을 막으며 기자 출입 불허 이유에 대해 '정관을 지킨 것'이라고 반복했고 후보들은 설명회장에 들어서며 고개를 숙였다. 이름을 묻는 기자들 질문이 쏟아졌지만 후보들은 침묵을 지켰다. 기자들 사이에선 탄식이 흘렀다.

▲ 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TBS 대표후보 공개정책설명회에는 평가를 위해 온 시민들과 피켓을 든 TBS 구성원들이 공존했다. 사진=박재령 기자.

13일 오후 2시 20분이 지나자 프레스센터에는 시민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현장 관계자에 따르면 100명 이상의 시민이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들의 줄 옆에는 TBS 양대노조 비상대책위원회가 'TBS 대표 선임과정을 시민들에 공개하라'는 피켓을 들었다. 시민의 방송 'TBS'의 차기대표를 뽑는 자리라고 생각하기에 분위기는 이상하리만큼 무거웠다. 시민들은 설명회장에 들어가려는 기자-관계자 간의 실랑이와 피켓을 들고 서 있는 TBS구성원들을 보며 의아하다는 듯 설명회장으로 향했다.

시민들 옆에 쌓여 있는 정책자료집조차 기자는 손을 댈 수 없었다. 처음 쌓여 있는 자료집에 문의했을 때 관계자는 “여분을 둔 것”이라고 했지만 기자임을 밝히자 다른 관계자가 나타나 “수량에 딱 맞도록 준비했다”며 자료집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렸다. 수차례 요구 끝에 설명회장에 들어갈 수 있었던 TBS 양대노조 위원장에게도 정책자료집은 주어지지 않았다.

▲ 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TBS 대표후보 공개정책설명회. 굳게 닫힌 문은 발표시작 이후 기자에게 열리지 않았다. 사진=박재령 기자.

공개정책설명회가 시작할 즈음 기자가 관계자에 다시 한 번 출입을 요구했지만 TBS 관계자는 정관상 '시민평가단'에 공개정책설명회를 진행하도록 돼 있다며 “규정을 지켰을 뿐”이라고 말했다. 다른 TBS 관계자는 상황이 곤란하다는 것을 이해해 달라며 민망한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현재 TBS 차기대표 공개정책설명회는 7명으로 구성된 TBS 임원추천위원회가 책임 운영하고 있다. 기자 출입 불허 방침도 임추위가 TBS에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추위는 서울시장 2명, TBS 이사회 2명, 서울시의회 3명 등 5대 2 여당 우세로 구성돼 있다. 최종 임명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한다. 임추위의 밀실 진행 속에서 '친오세훈' 대표가 뽑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흘러나오는 이유다.

▲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TBS 대표 후보는 침묵을 유지했다. 사진=박재령 기자.

오후 2시 55분, 기존에 출마 입장을 밝힌 강양구 TBS 기자가 들어섰다. 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대기하고 있던 강양구 기자는 기자들에 인사를 건네며 매화홀에서 설명회장으로 이어진 길을 걸었다. 강양구 기자 외에는 모두가 고개를 숙인 채 설명회장으로 이어진 길을 걸었다. 마스크를 쓴 모습을 보며 TBS 구성원들과 기자들은 TBS 대표후보자가 누군지 추측만 할 뿐이었다.

기자들은 설명회장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후보자들을 향해 질문을 쏟아냈다. “공영방송 TBS의 대표로 출마하면서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표가 된 후에도 성함과 얼굴을 공개하지 않을 생각입니까”, “이렇게 밀실로 뽑히면 추후에 공정성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다른 공영방송인 KBS, MBC 등은 후보와 절차를 모두 공개하는데 지금 이 상황이 웃기다고 생각되시지 않습니까” 등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후보자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지상파 간부로 추정되는 인물도 나타났지만 본인 확인을 묻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후보들은 자료집에 '가 후보', '나 후보' 등으로 기재됐을 뿐 아니라 시민평가단 앞에서 10분의 정책발표를 하는 중에도 익명을 유지했다. 한 후보는 본인이 기자 출신인 것을 밝혔지만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TBS 임추위는 정책발표집 등 서류를 제출할 때 후보들에 이름을 지우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 서울 상암동 TBS 사옥.

TBS 임추위의 대표선임 과정에 대한 비판이 안팎에서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결국 공개정책설명회는 이렇게 '밀실'에서 끝났다. 시민평가 비중까지 기존 40%에서 30%로 줄면서 TBS가 '친오세훈'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시민이 '들러리'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지속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TBS양대노조 비상대책위원회, 민주시민언론연합, 전국언론노동조합 등은 임추위 면접 일정이 시민평가 이후인 16일로 잡힌 것에 대해서도 임추위가 시민평가를 뒤집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시민평가를 마치고 나온 50대 여성 A씨는 “발표도 그렇고 자료집도 그렇고 정치색이 묻어나오는 분들이 있었다. 여기 오기 전에 기사를 보고 왔는데 이렇게 폐쇄적으로 하는 건 정말 문제라고 생각한다. 시민평가 비중이 10% 줄어든 것은 시민을 들러리로 세우겠다는 것 아니냐”며 “시민들에게 비밀 서약서까지 쓰게 했다. 자료집도 다른 사람에게 주지 못한다. 힘들게 왔는데 불쾌할 정도”라고 말했다.

70대 남성 B씨는 “왜 공개를 안 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TBS가 어용방송이 돼선 안 된다. 특정 정권에 편향된 방송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평가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정책발표 이후에는 1시간의 시민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기자들은 굳게 닫힌 문에 귀를 댈 뿐 하나의 질문도 후보들에게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논란의 TBS 공개정책설명회는 마무리됐다.

어렵게 공개정책설명회에 들어간 조정훈 언론노조 TBS지부장은 미디어오늘에 “후보자 발언들은 대체로 비슷하고 평이했다. 설명회의 생중계와 기자 출입을 불허한 비공개는 시민의방송, 지역공영방송 존재 이유에 부족함을 보여주게 됐다”며 “많은 시민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기자들의 다양한 시선이 차단되는 역행을 보여준거라 생각한다. 과정의 비공개와 불투명은 두고두고 나쁜 선례로 남는 것이 우려스럽다. 대표가 결정되면 임명 전이라도 내부 구성원과 소통의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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