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공동생활 유감
형제들 첫인상은 '그냥 싫다'
원수도 사랑하라 했거늘…
그 갈등 속에서 단련되는 것
그것이 공동생활의 본질
가톨릭교회의 전통에는 수도생활이라는 독특한 생활양식이 있다. 대개 수도회마다 그 추구하는 이상이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크게 공통인 것 하나는 공동생활을 통해 애덕 실천의 다양한 양상을 배우고 체험한다는 것이다. 기숙사와 같은 시설에서 각자 따로따로 사는 것이 아니라, 공동생활이란 그야말로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 공동으로 삶을 나누는 생활을 의미한다. 이렇기에 공동체에서는 크거나 작거나 아주 다양한 양상의 관계 속에서 여러 내적 체험을 겪게 되고, 참다운 애덕 실천이 어떻게 실천되는지 도움을 얻게 된다. 공동생활 자체가 내적 교육의 적나라한 현장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공동생활이 말처럼 그리 쉽지는 않다. 공동생활을 하는 수도자들은 물론 각자의 개인 영역이 있고 개인 소유의 필요한 물품을 가지고 있지만, 일정한 규칙에 따라 공동으로 시간이나 공간 혹은 사건이나 작업을 공유한다. 이런 공간이나 시간, 경험을 공유한다는 말은 공통의 관심과 정체성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함께 사는 이들과 공유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처럼 공동생활을 통해 함께 사는 이들이 공동의 비전과 삶에 대한 시각을 공유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 살기를 희망하고 추구하긴 하지만, 이렇게 함께 사는 행위에는 엄청난 자기희생과 양보, 노력이 필요하다. 공동생활은 자기 단련의 실질적인 현장이라는 말이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수도생활을 하겠다고 수도회에 입회하기 위해 출가 아닌 출가(?)를 해 수련소에 들어갔을 때, 내가 접한 첫 도전은 함께 살게 되는 이들에 대한 그야말로 그 첫인상이 수도생활 입문 첫 순간부터 나를 힘들게 했다. 함께 살 동료들을 만나는 첫 순간 그냥 '싫다'라는 인상이 계속 마음속에 지푸라기로 남아 수년간을 괴롭혔다.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조건 없이 섬기고, 모든 것을 양보하고 봉사하면서 살겠다고 결심한 첫걸음이었건만, 결국 이런 결심이 추상적이고 낭만적인 결심이었다는 자각이 따라왔다.
마음에 떠오르는 미움이나 싫음 그 작은 것 하나 어쩌지 못하는 가련하고 조잡하고 나약한 인간이라는 생각에 너무나 힘들어 한동안 실의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다. 누군가 훗날, '자석도 같은 극끼리는 서로 밀어낸다'라는 사실에 빗대어 인간관계에 대해 일깨워 줄 때까지 도무지 어쩌지 못했다.
그런 시각에서 주변 형제들을 바라보니 그제야 누구는 누구와 사이가 나쁘고, 누구는 누구와 원수처럼 지내는지 그런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심지어 내가 함께 살았던 10여 명 정도의 어느 공동체에선 동시에 3쌍의 심한 긴장이 진행되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저 허망한 초대였다.
하지만 이 비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도록 도움을 주는 '진리', 비록 과학적인 진리이긴 하지만 서로 밀어내는 자석의 성질! 이것이 설득력 있지 않은가. 작게는 10여 명, 크게는 100여 명이 함께 사는 공동체에서 살아보았고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단호한 초대이긴 하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엔 '서로 밀쳐내는 자석'의 진리가 더 현실적이었다.
"수도생활 30년이면 혼자 남몰래 흘린 눈물이 한 양동이는 될 거다!"라고 어느 선배가 나에게 조언해주기도 했다. 수도생활을 하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형태의 인간관계에서 때로는 좌절, 때로는 분노, 때로는 감격 등 너무나 다양한 체험을 많이 겪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어쩌면 부부 사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관계'의 양상을 체험하기 때문에 이런 영역에서 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조언을 나눌 수 있나 보다.
[심종혁 서강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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