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미래] 회귀물이 유행하는 이유

2023. 1. 1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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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드라마나 소설에서는 '회귀물'이 인기다. 인생을 되감아서 과거의 한 시점으로 돌아간 후, 예전 삶에서 겪었던 실패를 극복하거나 자기 인생을 망친 원수에게 복수하는 등 필생의 소원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인생을 한 번 더 산다는 점에서는 타인의 몸을 빌리는 '빙의'나 두 번째 태어나는 '환생'도 비슷한 이야기 구조를 띤다.

'이번 생은 망했다'는 사회적 좌절감이 회귀물을 그럴듯하게 받아들이는 심리적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인생 2회 차'라도 되지 않으면, 바라는 삶을 도저히 살 수 없을 듯한 절망적 세계 인식이 사회 저변에 퍼져 있는 것이다. 대부분 흙수저로 태어난 주인공은 어떻게든 행복하려 애쓰지만, 괴물들로 가득한 종말의 세상은 그들에게 나락의 삶을 강요한다.

첫 번째 생에서 주인공 꿈을 빼앗는 인물 또는 세력은 재벌이나 권력이고, 이들은 두 번째 생에서 철저한 복수의 대상이다. 작품에 나타난 한국은 양극화가 심해지고 능력주의가 판치는 신귀족주의 국가다. 강자들이 돈과 폭력을 동원해 법률을 무시하고 약자를 괴롭히면서 노예처럼 부린다. 이야기는 현실을 전복해서 이들을 파멸로 몰아넣는다.

스티븐 파인먼 영국 배스대 교수의 '복수의 심리학'(반니 펴냄)에 따르면 복수는 개인과 공동체의 궁극적 자기 진술이다. 복수를 통해 부당 행위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는 무너진 질서를 회복하고 깨어진 정의를 되살린다. 복수의 존재는 개인과 사회의 안녕, 긍지, 명예, 자존감 등을 위협하는 힘들을 억제한다.

정상 사회에서 복수의 집행은 법률과 공권력에 위임된다. 그러나 법의 운동장이 기울어져 질서 회복이 어려울 때, 우리는 복수 이야기에 열광한다. 규칙을 어겨서라도 보복을 실행함으로써 죄악을 응징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복수자에게 기꺼이 박수를 보낸다. 복수는 끈질기고 집요하다. 아무리 힘센 권력도 꿈까지 막지는 못한다. 수많은 원귀 이야기는 복수가 죽음 너머에서 계속됨을 보여준다. 원한을 못 이긴 이들은 회귀나 환생을 해서라도 기어이 복수를 이루려 한다.

복수 판타지가 유행하는 사회는 위험하다. 권력자의 행패에 따른 사회 갈등이 현실의 둑을 무너뜨리고, 다른 삶을 꿈꾸어야 할 정도로까지 치솟았다는 뜻인 까닭이다. 복수 감정이 넘실대는 세상은 범죄 억제와 단죄 기능을 상실한 사회를 반영한다. 동시에 이는 정의와 화해의 회복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보여준다. 불의를 유발하는 사회 요인을 없애서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 다리를 놓으며, 우리를 하나로 묶는 이상을 회복하는 일이 무척 시급하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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