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투자 혹한기…JPM 2023서 찾은 K-바이오 생존 전략
투자 시장에 한파가 몰아닥쳤다. 특히 바이오 분야가 직격탄을 맞았다. 하지만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찾는 움직임은 활발하다. 코로나19 이후 처음 오프라인으로 재개된 세계 최대 제약·바이오 투자 행사인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는 응집된 인수합병(M&A)과 빅딜 수요가 폭발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이번 행사에는 8000여명의 투자자와 550여개 바이오 기업이 참여했다.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면 참석자 수가 반절 가까이 줄었다. 세계 경기 둔화와 투자 위축에 대비한 긴축 기조를 엿볼 수 있었다.
◇자금줄 마른 바이오…줄도산 위기 현실화
'제2의 셀트리온'을 노렸던 1세대 바이오시밀러 개발사 폴루스가 지난해 말 파산했다.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며 한때 기업가치 3000억원에 달했던 유망 바이오벤처 파산은 바이오 투자 위축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제 지난해 벤처캐피털(VC)의 바이오 투자는 급감했다. VC 업종별 신규 투자 비중을 보면 바이오는 16.3%로 5년 만에 20% 밑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국내 증시에 상장한 제약·바이오 기업은 12개로 전년 대비 절반 가까이 줄었다. 상장을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고 금리 인상 여파로 투자 유치도 어려워졌다. 바이오 벤처들은 인력을 줄이고 파이프라인 연구를 중단하며 생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 바이오벤처 대표는 “VC들도 더욱 신중하게 투자를 집행하면서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기업가치가 고점 대비 80% 떨어진 기업들도 있다”면서 “후속 투자 유치에 실패할 경우 문을 닫는 회사도 여럿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빅파마 파이프라인 확보 전쟁…M&A 큰 시장 열릴 것
기업공개(IPO)가 위축되고 투자 시장에도 한파가 몰아치고 있지만 올해 M&A 시장은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 자금난을 겪는 바이오벤처들이 매물로 나오고 기업가치도 대폭 할인되면서 코로나19 특수로 자금력을 갖춘 글로벌 빅파마들이 적극적인 M&A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마이크 가이토 JP모건 헬스케어 투자 글로벌 총괄은 개막연설에서 “올해도 경기침체 위험과 자본시장 변동성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규모를 갖추고 재무제표가 건전한 기업 가치가 부각되면서 빅파마를 중심으로 제약·바이오 분야 M&A가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딜로이트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상위 16개 다국적 제약사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 합계는 우리돈 250조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이를 바탕으로 M&A, 기술도입에 적극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콘퍼런스 발표 연사로 나선 글로벌 제약사 최고경영자(CEO)들도 M&A를 통해 성장동력을 찾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스테파 방셀 모더나 CEO는 “지난해 180억달러(약 22조원)가 넘는 현금성 자산을 확보했다”면서 “라이선스 계약 또는 M&A를 통한 사업 확장 기회를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태원 유한양행USA 대표는 “화이자, J&J 등 글로벌 빅파마 투자 여력이 역대 최대치이고 코로나19 이후 미국 내에서 조성된 바이오벤처 펀드 규모도 30조달러에 가까운데 이를 수 년내 소진해야하는 만큼 투자처를 모색하고 있다”면서 “미국 시장만 놓고 본다면 혁신적인 기술이 있는 기업은 투자를 받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자”…발로 뛰는 K-바이오
K-바이오 기업도 글로벌 제약사 M&A와 기술도입을 통해 활로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콘퍼런스 현장에서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한 바이오벤처 움직임이 활발했다. 특히 글로벌 제약사와 투자사를 대상으로 주력 파이프라인을 알리는 일대일 미팅 기회를 잡는데 주력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공식 초청을 받지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행사에 참여한 국내 바이오 기업이 어느 때보다 많고 현장에서 열정적으로 기회를 찾는 모습에 글로벌 투자자들도 놀랐다”면서 “이번 행사에 투자자 참여는 줄었지만, 글로벌 제약사 등 전략적투자자들과 협업 가능성을 모색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한국바이오협회는 콘퍼런스 기간 중 글로벌 IR 행사를 개최했다. 바이오스타트업 12개사가 참여해 회사를 소개하고 CBC그룹, J&J이노베이션, LYFE캐피탈, RM글로벌, KB인베스트먼트, 다올인베스트먼트 등 국내외 투자사들이 참여했다. 참여한 투자사들은 유사 기술과 차별성과 보유 기술에 대한 세부 설명, 진행 중인 연구결과 발표 시기 등 질문을 던지며 관심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임상을 통해 규제기관과 빅파마 눈높이를 맞추고 해외 시장에 직접 나가 기회를 찾을 것을 조언했다. 또 투자유치나 IPO를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만큼 사업개발(BD) 딜에 집중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양은영 차바이오그룹 BD본부장 “임상을 굳이 국내에서만 진행할 필요가 없고 글로벌 임상을 통해 제품을 스케일업하고 시장도 키울 수 있다”면서 “점점 국내 바이오텍들도 글로벌 임상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말했다.
천지웅 다올인베스트먼트 투자이사는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이 빅딜보다는 정말 필요한 기술에 대한 핀포인트 투자를 진행하고 있고, 초기 단계 라이선스인 계약을 통해 신뢰 관계를 쌓아 M&A로 이뤄지는 경우도 많아 작은 딜이라도 어떻게든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일단 살아남아야 다시 시장 상황이 회복됐을 때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만큼 초기 단계 협력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고 주력 파이프라인에 자원을 집중하고 나머지 파이프라인은 초기 라이선스아웃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샌프란시스코(미국)=정현정기자 ia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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