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 사진 작가, 하와이서 발견한 130개 무덤..."'아부지' 새겨진 묘비석의 비밀

이은지 2023. 1. 1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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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3년 1월 13일 (금요일)

□ 진행 : 이현웅 아나운서

□ 출연: 김동우 사진작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현웅 아나운서(이하 이현웅): 우리 일상에서 보훈 문화가 자리잡을 때까지! 국가보훈처와 함께 하는 특별기획 <슬기로운 보훈생활> 7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한인 이민 120주년을 맞아 첫 이민지인 하와이의 독립운동 현장을 담은 사진전을 열고 있는 김동우 사진작가와 함께 합니다. 어서 오십시오.

◆ 김동우 사진작가(이하 김동우): 안녕하세요.

◇ 이현웅: 아마 작가님을 '유퀴즈'라는 프로그램 통해서 또 기억하시는 분들도 상당히 많으실 것 같은데. 지금 하고 계신 활동들, 간략하게 우리 청취자분들을 위해서도 소개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김동우: 저는 다큐멘터리 사진을 하는 작가고요. 그동안 우리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그러니까 나라 밖에 있는 독립운동 사적지를 기록했고 거기에 또 후손분들도 많이 살고 계시거든요. 그 후손들 만나서 인터뷰도 하고 또 사진으로 기록하는 그런 작업들을 해왔습니다.

◇ 이현웅: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타 프로그램을 홍보해 주는 거는 금지돼 있는 게 불문율인데. 너무 좋은 내용들이 인터뷰에 많이 담겨 있어서, 그 내용은 그 프로그램이나 클립 통해서 확인해 보시면 될 것 같고요. 오늘은 좀 다른 얘기를 해보려고 해요. 우선 인도를 여행하던 중에 인도 델리 레드포트가 우리 광복군의 훈련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런 활동을 시작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해외 운동 독립지 어디 어디를 다녀오신 겁니까?

◆ 김동우: 미국, 멕시코, 쿠바, 러시아, 중앙아시아 쪽, 그다음에 중국, 일본 해서 국외는 한 10개국 정도 됐고요. 우리 국내도 일부 촬영을 했고요. 그래서 촬영지는 11개국 정도 됩니다.

◇ 이현웅: 저는 국내 혹은 해봤자 중국이나 만주 이런 데를 쉽게 떠올리게 되는데, 그렇게나 많나요?

◆ 김동우: 학교 다닐 때 그 정도 저도 배웠거든요. 그래서 상식적으로 갖고 있는 생각을 하다가, 인도가 전혀 우리나라 독립운동하고는 매치가 안 되는 나라잖아요. 그런데 연관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깜짝 놀라서 이걸 다시 들여다봤죠, 조금 자세히. 그랬더니 우리 조상들이 독립운동을 생각보다 전 세계적으로 하셨더라고요. 너무 깜짝 놀랐어요, 저도.

◇ 이현웅: 그렇군요. 10개 나라 이상을 지금 확인하시고 다녀오신 곳만, 기록한 곳만 그렇게 된다고 하셨고 그보다 더 많은 곳에서 독립운동이 이루어졌던 건데. 올해가 우리 민족의 공식 이민이 시작된 지 120년 되는 해고요. 앞서서 제가 소개를 잠깐 드렸습니다만 1월 13일이 '미주 한인의 날'이에요. 아주 특별한 날 오신 것 같습니다.

◆ 김동우: 맞습니다. 12월 22일에 제물포에서 배를 타고 조상님들이 하와이로 가시죠. 그래서 도착한 날이 1월 13일이에요. 그래서 우리 기준으로 보면 지난해 12월이 120주년이 되는 거고요. 출발하는 기준으로. 그런데 미국 기준으로 보면 올해가 120주년이 되는 해고요.

◇ 이현웅: 그렇군요. 그래서 작년 9월에는 하와이에서 한 달 살이를 하셨다고 했는데, 방금 얘기한 것과 관련이 있는 이유입니까?

◆ 김동우: 네. 그래서 120주년 맞이해서, 하와이가 사실 우리 미주 지역 디아스포라의 시작이면서 우리 독립운동의 시작이거든요. 그래서 하와이에는 어떤 장소들이 남아 있고 또 현재가 어떤 모습으로 남겨져 있는지 기록을 하려고 한 달 정도 촬영을 다녀왔습니다.

◇ 이현웅: 하와이하면 와이키키 해변이나 맛있는 거, 이렇게 놀 것만 생각했던 제가 부끄러워지네요.

◆ 김동우: 제가 수영복을 챙겨 갔거든요. 근데 물에 한 번도 못 들어갔어요. 정말 촬영하다 보니까 시간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해변을 그냥 눈으로 감상했고요. 거기에 우리와 관련된 것들이 아주 아주 많이 남아 있는데, 방치된 채로 남겨져 있어서 그런 곳들을 좀 많이 다녀왔죠.

◇ 이현웅: 제가 이 방송국에 들어오기 전에 항공사에서 일을 했었어요. 그래서 하와이를 서너 번 정도는 왔다 갔다 했는데 그때 이런 곳을 가보겠다는 생각을 전혀 못 했거든요. 있는 줄도 몰랐고요. 그때 알았으면 저도 한번 가보면 좋았을 텐데, 어떤 곳들이 있나요?

◆ 김동우: 많이들 가시는 곳이 오아후 섬, 호놀롤루가 있는 오아후 섬 많이 가시잖아요. 비행기 타고 도착하는 딱 오아후. 그런데 호놀롤루에도 오아후 공동묘지라는 곳이 있거든요. 거기에 우리 조상들이 몇백 분이 거기에 잠들어 계세요. 아주 많은 분들이 거기 있습니다. 그리고 오아후 섬 서쪽으로 가면 서핑으로 되게 유명한 노스쇼어라는 해변이 있는데요. 거기에 가면 푸우이키라는 아주 작은 공동묘지가 하나 있어요. 거기에 가면 아이들 무덤이 많아요. 한인 아이들 무덤. 그러니까 이민을 갔어요. 아니면 거기서 태어났거나. 그런데 당시에 우리가 되게 못 살았잖아요. 그리고 의료 혜택이라는 것도 많지 않았을 거고. 그래서 3개월, 한 살 이런 아이들의 무덤이 되게 가슴 아프게 많이 남겨져 있죠.

◇ 이현웅: 무덤이 있는 게, 이 표현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다행이라면 다행일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 김동우: 다행인데, 후손이 없는 무덤이 또 많아요. 관리가 되지 않는 무덤들이죠. 그래서 비석이 쓰러져 있거나 아니면 망실됐거나, 깨져 나가고, 이런 것들이 되게 많죠. 그래서 그런 것들을 앞으로 어떻게 우리가 관리해 나가는지도 또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 이현웅: 이런 곳들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 김동우: 가기 전에 항상 자료 조사를 많이 하죠. 책도 읽고, 논문도 찾아보고, 먼저 다녀온 분들한테 여쭤보기도 하고. 그래서 그렇게 촬영지를 셋업을 해서 촬영을 가니까요. 그래서 일단 공부를 좀 많이 했죠.

◇ 이현웅: 막상 그곳에 딱 가보면 머릿속에서 그리던 모습 그대로입니까, 아니면 어때요?

◆ 김동우: 훨씬 더 좀 짠하죠. 상상하는 거나 현실로 보는 건 너무 다른 거거든요. 그런데 제가 짠했던 것은 비석 하나하나에 한글이 쓰여 있는 것들도 많아요. 한자도 물론 많지만. 그런데 하와이에 있는 섬 중에 제일 큰 섬이 빅아일랜드라는 섬이거든요. 거기에 코나 커피라고 되게 유명한 커피 있잖아요. 코나 커피의 산지이기도 한데. 그 빅아일랜드에 있는 힐로라는 곳이 있거든요. 거기에 가면 알라의 공동묘지라고 또 있어요. 거기에 130개 정도의 한인 무덤이 남아 있는데, 거기에서 제가 찾은 무덤 중에 이렇게 쓰여 있더라고요. 비문에, 우리 보통 '아버지'라고 쓰잖아요. '아부지'라고 쓰여 있더라고요. 그 세 글자를 딱 보는데 너무 마음이 좀 짠하고. 이분들이 고향을 이렇게 아빠 얼굴 그리면서 떠올린 건 아닌가.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죠.

◇ 이현웅: 그렇군요. 그러면 지금 말씀해 주신 공동 묘지만 해도 몇 개가 되고요. 그러면은 수백 분 이상이 되겠네요?

◆ 김동우: 네. 1902년에 첫 배가 출발할 때, 오늘 도착이잖아요. 하와이에. 그때 출발을 120분 정도가 했는데, 하와이에서 처음 정착 생활을 하신 분들은 90분 정도예요. 중간에 일본을 경유했고 또 하와이에 왔을 때 신체 검사들이 있었어요. 거기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돌려보내셨거든요. 눈병이 있다거나 아니면 신체검사를 해서 불합격 판정이 나오면 하와이에서 거주를 못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그분들은 돌려보내줬고 그래서 90분 정도가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제 90분으로 시작했지만 이분들이 1905년까지 이민이 이어지면서 7,300명~7,400명 정도가 넘어가거든요. 그래서 아주 많은 무덤들이 곳곳에 남아 있죠. 그런데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무덤들이 많을 거예요.

◇ 이현웅: 5901님은 우리 작가님 팬이신가 봅니다. "김동우 작가 만세 만세 만만세". 좋은 일 하시니까 아마 이렇게 응원을 해 주시는 것 같고요. 또 6990님은 "한 번도 못 가봤는데 언젠가는 가게 될 날이 올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런 곳도 꼭 둘러봐야겠어요" 하시는데. 진짜 하와이 하면 다들 신혼여행지, 서핑, 맛있는 거, 먹을 것, 놀 것만 생각하는데. 좀 추천드릴 만한 코스인 것 같기도 하고요?

◆ 김동우: 네,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데 도시 여행보다는 자연 풍경을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빅아일랜드 꼭 가 보시라고 추천드리고 싶어요. 코나 커피도 맛보시고. 코나에 가면 또 한인 무덤 터가 또 있어요. 그런 곳도 둘러보시고요. 힐로도 좋으니까 빅아일랜드 꼭 한번 가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이현웅: 알겠습니다. <슬기로운 보훈생활> 시간에 왜 이민 얘기를 하게 되느냐. 지금부터 더 잘 들으시면 좋을 것 같은데. 이분들이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어떤 일을 했던 건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독립운동을 했던 흔적을 하와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요?

◆ 김동우: 네. 이승만 대통령이 하와이가 거의 본거지나 마찬가지였죠. 거기에서 오래 생활하셨고 기반을 많이 닦으셨는데요. 1920년대 중반쯤에 이승만 대통령이 그 빅아일랜드라는 섬, 힐로 인근에다가 숯가마를 만듭니다. 큰 땅을 사요. 그런데 거기가 산림이 우거진 지역이거든요. 나무가 많으니까 그 나무를 벌목해서 숯을 만들어서 이걸 판매해서 독립 자금으로 쓰겠다 해서 '동지촌'이라는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하시는데, 그 숯을 구워서 미군에 납품을 해요. 이게 화약의 원료가 되거든요. 그런데 이게 품질이 안 좋아서 채택은 안 되거든요. 사업은 되지 않아요. 그래서 '동지촌'이라는 프로젝트가 사실은 실패합니다.

◇ 이현웅: 뭔가 여기서 돈을 모아서 독립운동 자금이 되고 이런 스토리를 생각했는데.

◆ 김동우: 구상을 했죠. 그래서 시도는 했는데, 그게 땅도 사고 숯가마도 만들고 했는데, 그게 그렇게 썩 좋은 성과는 거두지 못하죠. 결과적으로. 근데 그 숯가마터가 남아 있어요. 힐로에 가면 있습니다.

◇ 이현웅: 여기도 실제로 가보고 사진 기록 다 하셨을 것 같아요.

◆ 김동우: 네. 그런데 숯가마터가 지금 거의 100년째 방치되는 상황이라서 그 가마터 안에 들어가 보면 이렇게 레일도 깔려 있고 이렇거든요. 근데 그런 것들이 너무 오래돼서 부식이 돼서 이제 밟으면 부러질 것 같은 그런 상황까지 왔거든요. 그래서 이런 것들이 우리한테는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잖아요. 좀 이런 것들을 우리가 땅을 매입한다든가 이렇게 해서 사람들이 왔을 때 볼 수 있게끔 이렇게 잘 단장이 되면 좋은데, 아직 그런 상황까지는 못 가고 있는 거죠.

◇ 이현웅: 그러면 지금은 누구나 그냥 들어가고 훼손이 될 수도 있고, 이런 상황인 건가요?

◆ 김동우: 그렇죠. 그런데 이제 거기가 말씀드렸다시피 산림이 우거진 지역이잖아요. 그래서 도시 외곽이란 말이에요. 집이 한 채 있어요, 숯가마 앞에.

◇ 이현웅: 관리해 주시는 분인가요?

◆ 김동우: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그냥 현지인이에요. 그래서 거기를 가려면 길이 없어요. 그래서 그 집 사유지를 이렇게 둘러서 가야 하니까, 항상 그 집주인한테 허락 맡아야 하고 그런 또 불편함이 있거든요.

◇ 이현웅: 그러네요. 관련해서 안내 표지판 같은 것도 없나요?

◆ 김동우: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돌아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게 그런 겁니다. 우리 땅이 아니잖아요. 우리 정부가 어떻게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곳이니까 표지판 하나 세우기도 상당히 어렵거든요. 그래서 우리 신흥무관학교터 이런 데 가보면 표지판 없어요.

◇ 이현웅: 그런가요? 아마 관련해서 노력을 하셨을 것 같기는 한데?

◆ 김동우: 지속적으로 계속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 이현웅: 계속하면 좋겠고, 또 해외에서도 이런 취지를 잘 공감해서 마음을 열어주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듭니다. 앞서서 말씀해 주신 하와이 오하우 섬. 사탕수수 농장에서 이민 노동자로서의 삶을 시작한 분들이 많잖아요. 그러면 당시에 월급이라고 해야 되나요. 돈은 제대로 받고 일을 하셨던 건가요?

◆ 김동우: 월급은 받긴 받았죠. 1902년부터 5년까지 넘어가신 분들이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느냐면, 새벽 5시 이상 그리고 6시부터 노동에 투입. 그래서 낮 12시까지 일. 점심시간 30분, 그리고 다시 일. 그래서 오후 4시에 끝. 이런 식이에요.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 휴식, 일요일날. 거기 덥잖아요. 햇볕도 세고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사탕수수밭 안에 들어가면 모기도 많고 그렇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한 달 일해서 번 월급이 18달러 정도.

◇ 이현웅: 그러면 그 당시 가치로 하면 많은 건가요, 적은 건가요?

◆ 김동우: 그렇게 썩 많은 돈은 아니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분들이 그 돈을 또 아끼세요. 아껴서 독립 자금을 납부를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이 하와이에서 있었던 스토리 중에 하나가, 안중근 의사 의거가 1909년 하얼빈에서 10월 26일에 있었잖아요. 그러고 나서 하와이에 있던 우리 동포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읍니다. 그래서 제가 아까 언급했던 빅아일랜드에 알라의 공동묘지에 계신 분들 한 50분이 의연금을 냈던 분들이에요. 명단이, 딱 해보니까 매치가 돼요.

◇ 이현웅: 그 소식을 멀리서 듣고 또 돈을 건네주신 거네요?

◆ 김동우: 그런데 낸 돈이 많은 돈이 아니라 75센트, 1불 이런 식이에요. 그러니까 많은 분들이 동참을 했다는 거, 이게 중요한 거죠. 그 멀리서도.

◇ 이현웅: 그 마음만큼은 충분히 다 전달이 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임시정부를 세운 자금도 됐나요, 이게?

◆ 김동우: 네. 임시정부를 세운 자금은, 하와이에서 미주 한인의 이민이 시작됐잖아요. 그래서 나중에 이분들이 선택을 해야 했어요. 고향에 돌아가거나 하와이에 남거나 아니면 미국으로 나가거나 본토로 나가거나. 근데 일본 사람들하고 중국 사람들이 먼저 하와이에 왔었거든요. 근데 이 사람들의 귀향 비율을 보면 한 50% 정도 되거든요. 근데 우리는 30%로 떨어집니다. 왜 그러냐, 나라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많은 분들이 남는 결정을 많이 내리죠. 그래서 이분들이 이제 미국에 나가가지고 임정 수립 자금에 많은 분들이 부담을 하게 되는 거죠.

◇ 이현웅: 그 대를 이어온 경우에는 지금도 현지에서 계실 텐데. 실제로 바깥에 나가서 기록을 하시면서 만나보시기도 하셨죠?

◆ 김동우: 후손분들 많이 만났죠. 이번 하와이 같은 경우에는 정월라-정원명 부부 독립운동가가 계세요. 그분의 후손을 만났는데. 이렇게 댁에 가서 사진도 찍고 이제 얘기도 듣는데 너무 재밌는 얘기를 해 주시더라고요. 정월라, 정원명 선생님이 낳은 딸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분의 딸이 제가 만난 분이거든요. 그러니까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는 거죠. 그런데 어머니는 하와이에서 태어났거든요. 그러니까 결혼을 할 때 일본 사람하고 하겠다고 일본 사람을 데고 온 거예요. 그러니까 그 일본인 후손도 하와이에서 태어난 일본인인 거예요. 그런데 그럴 수 있잖아요. 할머니가 딸을 2년 동안 안 봤대요. 이게 완전히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더라고요.

◇ 이현웅: 그러네요. 참 운명도 가혹하지, 어떻게 또 그렇게 만나서.

◆ 김동우: 독립운동가 집안인데. 어머니, 아버지 다 독립 운동가인데. 그런데 일본 사람을 데리고 왔어, 결혼하겠다고? 이거는 나는 못 받아들이겠다. 너 안 봐. 그러니까 그분을 낳기 전까지, 그러니까 자식을 낳기 전까지 안 보셨대요.

◇ 이현웅: 그러면 허락도 구하지 않고 결혼하시고 딸도 낳으시고 그리고 이제 집에 들어가신 거네요?

◆ 김동우: 네.

◇ 이현웅: 사랑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 김동우: 사랑이 먼저죠.

◇ 이현웅: 기록을 많이 남기셨다고 하는데. 그러면 그 사진전, 어디서 어떻게 볼 수 있는 거죠?

◆ 김동우: 우리 조상들이 떠난 게 인천이잖아요. 그래서 그걸 기념해서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지금 전시가 열리고 있고요. 2월 5일까지 개최가 됩니다.

◇ 이현웅: 인천시립박물관에 가면은 쭉 볼 수 있고. 하와이에서 찍은 사진들만 있는 겁니까, 이번 전시는?

◆ 김동우: 아닙니다. 중앙아시아에서 찍은 사진도 있고요, 일부. 그다음에 중국에서 찍은 사진도 일부 있는데요. 주 테마가 이번에 하와이 공식 이민이니까요. 120주년을 맞이해서 제가 그 비석에 박힌 사진 120명으로 추렸어요. 120주년에 맞춰서. 그래서 1902년 전에 태어나신 분들, 그러니까 고향이 우리 집 땅이신 분들만 120명을 추려서 그분들의 얼굴을 120장을 거기다 걸어놨죠. 그러니까 우리는 머릿속은 알고 있지만 이분들의 모습은 잘 모르잖아요. 그래서 이런 얼굴들이 배를 타고 넘어갔다, 이걸 느껴보시라고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 이현웅: 2448님께서는 "예전에 하와이 여행 가려고 여행 자료 뒤져본 적이 있는데 한 번도 이런 얘기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하와이 여행 정보나 관광지도에 이런 내용도 포함되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하시는데요.

◆ 김동우: 너무 좋죠. 그러니까 LA도 많이 가시고 뉴욕도 많이 가시잖아요. 거기에 우리 독립운동 사적지가 되게 많아요. 샌프란시스코도 그렇고요. 그러니까 조금만 신경 쓰시면, 찾아보시면 분명히 있거든요.

◇ 이현웅: 물론 우리 작가님처럼 그것만 위해서 가지는 않으시겠지만, 보통은. 그래도 이왕 간 김에 그런 것도 한번 둘러보고 오시면 의미도 있고요.

◆ 김동우: 그러면 여행의 가치가 확 올라가죠.

◇ 이현웅: 거기의 자료에는 또 우리 작가님이 찍은 사진이 설명이 딱 돼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 김동우: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 이현웅: 9772님 "일제강점기 하와이로 이주했던 분들의 얘기를 책에서 보다가 가슴이 먹먹해졌던 기억이 있는데요. 이런 기록들을 남기는 일에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좋겠습니다" 하셨고요. 0438님도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하와이 더 가 보고 싶어집니다. 전 세계적으로 독립운동이라니 엄청 감동입니다. 대한독립 만세" 이렇게 보내주셨습니다. 우리 작가님의 앞으로 활동 계획 들으면서 좀 마무리하면 어떨까 싶은데요.

◆ 김동우: 중국에 너무너무 많은 우리 사적지가 남아 있잖아요. 너무 넓고. 또 그래서 제가 아직 몇 차례 다녀왔지만 아직 가보지 못한 곳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계속 기록해 나가야겠죠.

◇ 이현웅: 알겠습니다. 중국과의 관계가 또 좋아져야 될 것 같기도 하고요. 김동우 사진작가와는 여기서 말 줄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이은지 (yinzhi@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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