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만 쏙 빼 두 번 상장?… 새 주식 현물배당 ‘당근’ 내놓은 필옵틱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장비 제조업체 필옵틱스가 190억원 규모의 주주환원정책을 발표했다. 지난해 업황이 악화되면서 영업 손실이 발생했지만, 적자를 내고도 상당한 자금을 주주 권익 향상을 위해 쓰겠다는 것이다. 필옵틱스는 지난달 170억원 규모의 주주환원정책을 발표했는데 불과 한 달 만에 그 규모를 20억원 더 확대했다.
필옵틱스가 주주 달래기에 나선 것은 핵심 자회사 ‘필에너지’의 상장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필옵틱스는 지난 2020년 알짜 사업 부문인 2차 전지 사업을 분할해 필에너지를 새로 설립했다. 2020년까지만 해도 필옵틱스 매출에서 OLED 레이저장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85%이고 2차전지는 11%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2차전지 매출이 62%로 OLED 관련 사업을 크게 앞질렀다.
필옵틱스는 한양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삼성SDI에 입사해 반도체 제조용 기계를 연구하던 한기수 대표가 전문 장비(노광기)를 국산화해 설립한 업체다. 기술력을 인정받아 삼성으로부터 장비를 수주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사업 영역을 2차전지, 반도체 장비 분야로도 확대했다.
문제는 기존 주주도 신설 법인 지분을 받는 인적 분할이 아니라 물적분할 방식으로 필에너지를 떼어내 상장을 추진한다는 점이다. 한기수 필옵틱스 대표는 “2차 전지 사업 분야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는 가운데 고객사로부터 합작법인을 세우자는 요구가 있어 합작법인을 설립한 것”이라며 “물적분할이 핵심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주주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핵심 사업이 떨어져나간 필옵틱스의 기업 가치는 하락할 것이 뻔하고, 기존 주주는 신설 법인의 주식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대표는 “설비를 생산하려면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규모 투자를 위해서는 상장을 통한 자금 확보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필옵틱스 주주들의 반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LG화학이 배터리 사업부를 물적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을 설립해 상장하자 ‘물적분할 후 상장’은 업계 가장 큰 이슈가 됐다. 비판이 커지자 금융당국은 모회사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대책도 내놓았다. 앞으로 물적분할을 추진하는 기업은 구체적인 목적과 계획을 사전에 공시하고, 이에 반대하는 일반 주주에게는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또 물적분할한 자회사를 5년 내 상장하려는 경우, 모회사가 일반 주주의 권익을 제대로 보호했는지 한국거래소가 깐깐하게 심사하기로 했다.
미래에셋증권을 대표 주관사로 선정해 필에너지 상장을 추진하는 필옵틱스는 지난해 10월 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에 필에너지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한 상태다. 필옵틱스가 기존 주주의 권익을 충분히 보호했다는 거래소의 판단이 나와야 상장 절차가 이뤄질 수 있는 셈이다.
다행히 회사 안팎에서는 필옵틱스의 이번 방안이 주주를 달래기 부족하지 않은 수준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필옵틱스는 상장될 자회사의 주식 현물배당 약 96억원, 현금배당 약 44억원, 자사주 매입과 소각 약 40억원 등 총 140억~190억원 규모의 주주환원정책을 발표했다. 한 대표는 “필옵틱스의 시가총액을 고려하면 이번 주주 친화 정책 규모는 상당한 수준”이라고 자평했다.
우선 필옵틱스는 필에너지의 일반주주 배정 물량의 60% 수준인 약 42만주를 현물배당하기로 했다. 공모 물량의 15%로, 내년 초 주주들에게 주식을 배정할 예정이다. 상장 자회사의 주식을 현물 배당한 사례가 없어, 필옵틱스는 올해 말 한국예탁결제원의 현물배당 시스템이 구축되는 대로 현물배당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필옵틱스는 100% 무상증자를 통해 배당 주식 수도 늘리겠다고 했다. 주식 배당은 최대주주인 한기수 대표와 특수관계인을 제외한 일반주주로만 한정된다.
현금 배당 금액은 44억원 정도다. 필옵틱스 주가가 7000~8000원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시가배당률 3% 수준이다. 필옵틱스 주가 부양을 위한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도 발표됐다. 필옵틱스는 지금은 보유한 자사주가 없지만, 필에너지 상장이 완료되면 구주매출을 통해 유입된 자금의 20%를 투입해 자사주를 매입하고 곧 소각하겠다고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금융위가 물적분할 후 상장에 따른 주주 보호 정책 방안을 마련할 때 모회사 주주에게 신설 자회사 주식을 현물로 배당하거나 배당 확대, 자사주 취득 등을 주주 보호 방안의 예시로 들었는데, 필옵틱스는 금융위가 언급한 사례를 대부분 포함해 주주환원정책을 내놓았고 그 규모도 적지 않다”며 “주가가 상승 동력을 얻을 정도는 아니지만 기존 주주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금융 당국의 소액주주 보호 방안이 효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필옵틱스에 앞서 핵심 사업부의 물적분할 후 재상장을 결정한 자동차 부품사 삼기 역시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했다. 삼기는 전기차 부품 사업부를 물적분할해 삼기이브이를 설립한 뒤 재상장하기로 했는데, 회사가 보유한 삼기이브이 주식 30만~50만주를 일반주주에게 현물배당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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