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 아세트아미노펜에 빠진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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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없던 어린 시절 진로를 결정할 때 하고 싶은 일이 잘 떠오르지 않아 하기 싫은 일을 생각해 봤다.
판에 박힌 일, 이윤 추구가 첫째 목적인 일은 안할 수 있으면 하지 말자고 나름의 기준을 세웠다.
상당수 부처 공무원과 판사·검사·의사 등은 저마다 창의적인 방식으로 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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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없던 어린 시절 진로를 결정할 때 하고 싶은 일이 잘 떠오르지 않아 하기 싫은 일을 생각해 봤다. 판에 박힌 일, 이윤 추구가 첫째 목적인 일은 안할 수 있으면 하지 말자고 나름의 기준을 세웠다. 그랬더니 ‘커서 이 직업 가질래’라고 부모에게 말하면 격려를 받을 법한 교사, 공무원, 대기업 직원, 판사·검사·의사 등 소위 ‘사’자 들어가는 많은 직업이 리스트에서 사라졌다.
지난 15년 간 현업에 종사하면서 깨달은 것은 당시의 생각은 짧아도 너무 짧았다는 것이다. 기업인·직장인 등은 이윤 추구 외에도 다양한 사회적 또는 자신의 가치를 쫓고 있었다. 사회 기여로 이어지는 이윤 추구 자체를 ‘색 안경’ 끼고 볼 일도 아니었다. 상당수 부처 공무원과 판사·검사·의사 등은 저마다 창의적인 방식으로 일하고 있었다.
20년도 더 된, 그래서 잊혀졌던 옛날 생각을 불현듯 떠오르게 한 것은 한 제약 업계 직원의 얘기였다. “우리나라 처방약 시장은 의사 5명만 잡으면 됩니다. ‘서울대병원 아무개 교수 처방입니다’하면 그걸로 끝입니다. 대부분의 처방이 다 그 처방을 따라 가고 자연히 그 약의 매출은 크게 올라 갑니다.” 적지 않은 의사가 판에 박힌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한국은 유독 감기약 해열제로 아세트아미노펜 제제를 처방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보건 당국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처럼 아세트아미노펜 처방률이 높은 나라가 없다. 유럽은 물론, 가까운 일본만 해도 아세트아미노펜을 이렇게 많이 처방하지 않는다”며 “대체제 처방 협조 요청을 해도 아세트아미노펜 처방률은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자 일선 약국에서는 아세트아미노펜 품귀 현상을 빚기도 했다. 자기 약국을 찾은 환자를 도저히 빈 손으로 돌려 보낼 수 없었던 일부 약사는 손해를 감수하고도 일반약을 뜯어 처방약을 조제했다. 정부는 아세트아미노펜 대신 수급이 상대적으로 원활한 록소프로펜·덱시부프로펜·펠루비프루펜 처방을 독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당국 관계자는 “최근 재정 당국 관계자가 ‘아세트아미노펜을 지나치게 많이 써서 문제면 아예 못 쓰게 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을 줬는데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며 “그런 말도 안되는 방법까지도 생각해 볼 정도로 편향이 심하다는 의미”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물론 일부 의사는 말한다. 제제 별로 효과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아세트아미노펜의 완벽한 대체제는 있을 수가 없다고. 예컨데 이부프로펜 계열 의약품은 해열뿐만 아니라 소염 효과도 있기 때문에 소염 효과가 필요 없는 환자에게는 이부프로펜 계열 약을 처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촘촘하게 약효를 구분해 처방하는 의사도 있지만 적지 않은 의사는 큰 고민 없이 아세트아미노펜을 처방하고 있다는 게 의료계의 전언이다.
다행히 새해 들어 약국에서의 아세트아미노펜 수급은 점차 원활해지는 모습이다. 구매 개수를 제한하는 강제적인 감기약 사재기 대책이 오히려 사재기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는 당국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세트아미노펜 편향이 해결되지 않는 한 제2, 제3의 감기약·타이레놀 품귀 현상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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