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행사장서 시위한 기후활동가들, 판사가 벌금 깎아준 까닭

김윤주 2023. 1. 1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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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녹색당 활동가들 벌금 감형
녹색당 기후정의위원회는 지난 11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포스코 등을 상대로 기후행동을 한 녹색당 활동가들이 이날 벌금을 감형받은 데 대해 “기후재판 승리”라고 평가했다. 녹색당 제공

“현재 전 세계는 기후위기라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산업화 이전 대비 2도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 즉 1.5도 정도 이내로 지구 온도의 상승을 막지 못한다면, 전 세계는 되돌릴 수 없는 기후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기후활동가의 말이 아니다. 최근 법원에서 나온 판결문에 적혀 있는 문장이다.

이 재판부는 또 판결문에서 인간의 산업활동이 기후위기에 영향을 미쳤고, 현재 기후위기로 전 세계가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언급했다. 재판부는 “지구 온난화에 인간의 산업활동 등이 영향을 끼쳤음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 지구의 표면의 온도가 그 이전에 비해 급속도로 상승했음이 이를 뒷받침한다”며 “인간의 활동에 의한 기후변화로 현재 전 세계 곳곳에서 폭염, 호우, 가뭄, 열대성 저기압, 광범위한 산불 등 이상 기후 내지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판시는 지난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 허정인 판사가 공동주거침입,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녹색당 활동가 총 4명 중 2명에게 각각 벌금 200만원, 150만원, 나머지 2명에게는 벌금 100만원을 선고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이 녹색당 기후정의위원회 활동가 4명은 지난 2021년 10월6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포스코 주최로 열리고 문승욱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참석한 ‘수소환원제철포럼’ 행사장에서 기후행동을 벌였다. 당시 이은호 기후정의위원회 공동위원장과 이상현 활동가는 갑자기 단상에 올라 1분간 산업계의 적극적인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발언을 한 뒤 직원에게 끌려 나왔다. 김영준, 문성웅 활동가는 현장에 동행해 이를 촬영하고 발언문을 배포했다. 이들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기로 한 목표(‘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적어도 50%까지는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3월 서울중앙지법은 이들에게 인당 300만원의 벌금을 내라고 약식명령한 바 있지만, 활동가들은 이에 불복하는 의미로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그 결과 이번에 선고 공판에서 벌금이 3분의1~3분의2만큼 줄었다.

재판부는 활동가들의 주장의 타당성과 기후행동을 한 목적의 정당성을 일부 인정했다. 재판부는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 보고서 등에 나타난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막기 위해 산출된 전 지구적 허용 온실가스 배출량에 국가별 인구 비율 등을 적용하면, 기후위기에 실질적으로 대비하자는 피고인들의 주장이 전혀 타당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기후위기가 티핑 포인트를 넘어서면 매우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도달하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산업계와 정부 차원에서 현재보다 더욱 높은 수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낸다는 측면에서 목적의 정당성 역시 없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러한 재판부의 판시에 대해 녹색당 활동가들을 대리한 이치선 법무법인 해우 변호사는 “사법부가 현재 상황이 기후위기 상황임을 인정하고 판시한 것으로,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판례가 될 것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이어 “나아가 재판부가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NDC)가 미흡하다고도 판단한 것”이라며 “현재 목표가 충분하다고 봤으면 피고인들의 행위를 정당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1일 판결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현정 정의당 부대표도 “판사가 기후위기 심각성을 이야기하는데 ‘법정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는 날이 드디어 왔구나’ 싶어 굉장히 감격했다”고 말했다.

다만 재판부는 △이들이 회의장 인근에서 집회·시위 신고를 한 후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었던 점 △이들이 사전에 회의 참석을 신청할 기회가 배제됐다고 보기 어려운데, 당일 등록·참석이 불가능함을 통지받고도 몰래 회의장에 진입한 점 △회의를 중단시켜 업무를 방해할 만큼 법익균형성, 긴급성의 요건을 갖췄다고 보기 어려운 점 △법치주의에서 결과의 실현도 중요하지만, 절차·과정의 적법성 역시 존중돼야 하는 점 등을 들어 벌금을 부과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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